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 (트라우마 치유 안내서)

나는 범죄 피해자입니다 (트라우마 치유 안내서)

$15.80
Description
정신과 의사와 심리학자는
어떻게 범죄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다루는가
단계별 일상 회복 매뉴얼

압도적인 상처, 영원할 듯한 고통
그리고 그것을 완결짓는 사람들
누군가의 악의가 한바탕 뒤흔들고 갔을 때, 삶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방편들은 사실 불충분하다. 경찰에 신고하자니 보복이나 2차 가해가 두려워진다. 심지어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것조차 녹록지 않다. 가해자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마련된 국가 기관이 바로 ‘스마일센터’다. 범죄 피해자의 회복 및 치유를 돕기 위해 운영되는 이곳에선 다양한 방법으로 트라우마를 완화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치료한다. 심리 상태의 진단 및 상담은 물론 범죄 사건을 끝맺기 위한 수사 및 법률 지원, 피해자들과의 자조自助 프로그램 지원 등을 제공한다. 거주지에 돌아가기 어려운 피해자라면 임시 주거지(쉼터)도 주어진다. 그렇게 센터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2024년 한 해에만 2000명가량 되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지역 스마일센터의 센터장으로, 정신적인 치료에서 각자 20년간 경력을 쌓아왔다. 배승민 선생은 정신과 의사로서 오래도록 아동 피해자들을 도와왔다. 아이들의 고통과 회복을 가까이서 지켜봐온 그는 글을 마무리하면서도 한 아이의 말을 인용했다. 백명재 선생은 국군수도병원에서 수많은 PTSD 환자를 진료했다. 그 경험은 군에서의 사망 사고, 총기 상해 등 트라우마를 다루는 사례들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한편 유성은 선생은 자살, 트라우마 연구에 정통한 심리학자이자 임상심리전문가다. 그는 직접 연구한 ‘복잡성애도척도’를 이 책에 수록하기도 했다.

책에는 저자들이 센터에서 만난 범죄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친오빠로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한 채린씨, 범죄 피해로 딸을 잃은 진배씨, 디지털 성착취물 유포를 겪은 도연까지…… 피해자들의 나이와 성별, 트라우마 사건과 그 이후의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남의 일’로만 여기는 태도는 금물이다. 누가 트라우마를 겪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판단보단 공감을, 감상보단 이입을 밑에 깔아놓은 채 트라우마 치료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저자

배승민,백명재,유성은

저자:배승민
가천대의과대학정신과학교실교수.인천스마일센터장을맡고있다.이화여대의과대학을졸업한후동대학원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고,강북삼성병원에서전공의수련과정과아동청소년전임의과정을밟았다.오랜기간아동성폭력피해자지원기관인인천해바라기아동센터에서일했으며지금도자문의사로활동중이다.지은책으로『내아이가보내는SOS』『내게위로가되는것들』이있고,공저로『행동과학』『청소년발달과정신의학』등이있다.또『성폭력피해아동치유를위한게임기반인지행동치료』『우리는저마다의속도로슬픔을통과한다』등의책을옮겼다.

저자:백명재
경희대학교병원정신건강의학과교수.스마일센터총괄지원단장이자서울서부스마일센터센터장을맡고있다.서울대학교병원정신건강의학과에서전공의수련을받고전임의과정을밟았다.정신과전문의로서는최초로국군수도병원에채용돼PTSD클리닉,성폭력클리닉을개설했으며트라우마및성폭력개입매뉴얼을개발했다.진료실에서후유증이심한트라우마환자들을마주하며,트라우마초기에개입해후유증을예방하는활동에큰관심을갖게되었다.공저로『재난정신건강』『그대의마음에닿았습니다』가있다.

저자:유성은
충북대심리학과교수.임상심리전문가이자미국뉴욕주공인심리학자로,범죄피해트라우마통합지원기관인청주스마일센터센터장을맡고있다.퍼듀대학심리학과에서임상심리학박사학위를취득하고로체스터대학병원정신건강의학과자살예방연구센터에서박사후연구원으로재직했다.트라우마이후심리적응급처치프로그램의공동개발자이기도하다.사람들이왜자살을생각하는지,무엇이생각을실제자살로이어지게하는지를연구하고있다.

목차


머리말

1장불이났어요―범죄피해자가되다
01트라우마반응은몸에서부터나타난다
02눌러놓은상처와불안,해리를겪는사람들
03마음에도응급처치가필요하다

2장잔불―트라우마에압도되다
01집중력부족,뇌도위장처럼체한다
02재경험,트라우마장면에압도되다
03가해자혐오에서자기혐오로
04불면,악몽과의사투
05무너진일상
06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대한오해들

3장화마가지나간자리―마음과뇌,몸에남겨진흔적
01몸에새겨진기억
02가해자아닌피해자를비난하는사람들
03자살하지않는이유
04트라우마가일으키는뇌의변화
05애도를미루는사람들
06자기파괴적인행동:중독과자해에서벗어나다
07수치심에서연결로가는길

4장새순이돋는자리―어떻게회복할것인가
01기억꺼내보기
02트라우마를대물림하지않는첫번째세대
03긍정적인기억의힘

부록

출판사 서평

트라우마의불길은
단번에진화되지않는다

트라우마의영향력은실로끈질기며광범위하다.급한불만끈다고해서사라지지도않고,정서반응만다룬다고해서해결되지도않는다.저자들이차용한‘화마’의비유가꼭맞는다.산전체를집어삼킨불은단번에진화되지않는다.큰불길을잡아도나뭇가지나낙엽깔린바닥에서계속타오른다.PTSD또한급성반응뒤에도지속적인후유증을남기며마음뿐아니라신체,사고,대인관계에이르기까지온갖곳에상처를입힌다.

책은PTSD의진화과정을시간순으로살피고있다.1장‘불이났어요’에서는급성반응을다룬다.과각성과저각성,해리,불면,우울등이포함된다.이때과각성보다저각성증상을보이는환자의후유증이더오래간다는점에주목할만하다.저각성은과각성에비해알아보기도더어려운데다심해지면‘해리’를일으킬수있다.‘해리’라는단어는‘해리성정체감장애’로널리알려져극단적인증상을연상시킬수있다.그러나실상은뇌가스스로를보호하기위해자극을차단하는증상으로,불안과초조보다도눈에덜띈다.

가까운지인의강도미수및방화를겪은보경씨도해리증상을보였다.대로변에있는센터를찾지못해길을헤맸고,무슨말을해도대답이한박자씩늦었다.이외에는일상생활을잘했으나어느날가족의전화를받고는폭력적으로돌변했다.사실보경씨의증상은범죄피해보다더이전의가정폭력에서비롯된것이었다.자주멍해졌고,대화에집중하지못했다.무슨일에든시간이더걸려불편했지만감정에휩쓸리지않으니좋다고생각했다.그러나해리는상처를회복한게아니라억지로눌러둔상태다.관련된자극이주어지면몇배는더강하게튀어오른다.저자가강조하듯,‘영원한마취는존재하지않는다’.
2장‘잔불’에서는급성반응이후의후유증을다룬다.트라우마재경험,자기혐오,불면과악몽등이다.급성반응보다야약하다지만그점이치료에방해가된다.별것아니라며지나치거나사건과연관짓지못할수있기때문이다.그러나치료를결심하기만한다면도움을줄방법은많다.예컨대악몽은약물로개선할수있다.원래전립선비대증으로인한배뇨장애에썼던‘프라조신’이이제는PTSD치료가이드라인에소개되고있다.어떻게할수없다는생각에무력감을불러일으키는악몽조차조절이가능하다는사실은놀랍다.

약물을쓰기전다른치료기법을활용해볼수도있다.국군장병정태씨는군부대에서가혹행위를당한뒤밤마다악몽을꿨다.칼을든괴한이막다른길까지쫓아오는꿈이었다.저자는이를다루기위해‘악몽바꾸기’기법을소개했다.종이두장과상상력을필요로하는기법이다.한장에는악몽의장면을간단하게그린다.다른한장에는그장면과유사하지만긍정적인장면을구체적으로상상해그린다.정태씨는괴한대신좋아하는아이돌이흉기대신꽃다발을들고오는장면을그렸고,이후실제로악몽을훨씬덜꾸게됐다.같은내용의악몽이PTSD환자들가운데흔하다.센터를찾는다면위기법으로,또는약물로도움을받을수있을것이다.

아주오랜시간이지난뒤까지이어지는증상도있다.3장‘화마가지나간자리’에서다루는기념일반응,깊은비애,중독과자해등이다.이쯤되면사건이일단락된건물론1장과2장의증상들도크게두드러지지않는다.그러나상처가제대로아물지않은탓에더심각한증상으로이어진다.특히‘기념일반응AnniversayReaction’은매년사건이일어났던시기만되면증상이악화되는것인데,사건으로부터수년,혹은수십년이지날때까지증상이계속된다는점에서그고통을짐작할수있다.

이책에소개된사례중몇에서도기념일반응을찾아볼수있다.방실아주머니는불면증으로병원을찾은환자였다.워낙성실한그는치료를거른적이없었다.그럼에도특정달만되면약이안듣는다는것이었다.사실아주머니는30여년전그시기에첫아이를잃었다.이미오랜시간이지났고,평소에는생각이나지도않아증상과전혀연관짓지못했지만치료과정에서발견됐다.진료실에서저자는억울해하는환자의마음에공감하며,힘들더라도천천히소화해보자고권했다.때로가장복잡한문제를해결하는것은가장단순한마음이다.

트라우마의발생부터치료까지
모든단계를관통하는이야기들

PTSD와그증상,치료법까지를차근히다룬이책은그러나그곳에머물지않는다.4장‘새순이돋는자리’는후유증보다회복에방점을둔다.외면해온상처를들여다보는것,피해자끼리서로보듬어주는것,긍정적인기억을떠올리는것모두치유의효과를낸다.하지만가장중요한것은치료를받을결심이다.늦었다며자포자기하지말자.치유는언제라도이루어질수있다.그렇지만저자들은치료시작을‘최대한빨리’하는게좋다며,사건1개월내에는정신건강에대한평가를받아보길권한다.

내가아닌다른사람이트라우마사건을겪은때라면어떻게해야할까.PTSD에서는정서적지지의효용보다부적절한반응의악영향이훨씬더크다는연구결과가있다.그러니위로되는말을해주는것보다상처되는말을하지않는게우선이다.그래도뭔가말을해주고싶다면,두가지를꼭기억해두자.초기에는사건에대해자세히묻지말고,당사자가먼저이야기를꺼냈을때들어주는정도로하자.또한과거나미래보다는현재에대해얘기하는게좋다.‘다끝났으니잊어라’라든지‘이제괜찮아질거다’라는말은큰위로가되어주지못한다.사실말보다곁에있어주는것,현실적으로안전을확보해주는것등이훨씬더도움이된다.

그러니이책은단지범죄피해자들만을위한것이아니다.범죄피해자의주변인을위한책이고,공통의트라우마를겪은세대를위한책이고,크든작든트라우마사건을겪었을수밖에없는우리모두를위한책이다.‘내일’이될지도모르는고통으로부터치유되는길을함께따라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