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은조선최고의문장가이자시대를앞서간자유주의자였다.과거시험부정에연루되어졸지에파직되고유배를떠난곳에서쓴『도문대작屠門大嚼』은단순히귀양지의허기를달래기위해끄적거린음식목록이아니었다.자신이누렸던풍요로운기억을소환해현실의고통을견뎌내려는처절한기록이자음식에담겨있는삶의온정을되새김하는과정이었다.또한김풍기교수가읽어내는그행간의이모저모속에는인간의욕망과시대의아픔이고스란히박제되어있다.『허균의맛』을통해저자의상상력의궤적을따라가다보면,식재료하나하나에담긴이땅의삶과풍류를만나게된다.
저자김풍기강원대교수는대표적인허균연구자다.허균의산문을모아번역한『누추한내방』(2003)을비롯해『독서광허균』(2013)을지었으며이번에는『허균의맛』을내놓았다.이책은허균의『도문대작屠門大嚼』을번역하고해설하며저자자신의음식추억과결부시켜풀어낸기록이다.허균을시작점으로하여조선시대전반으로퍼지는동심원물결처럼이땅의수백년음식문화가펼쳐진다.
피란길의고단함을씻어준방풍죽의향기로움
‘도문대작’이란푸줏간앞을지나면서입맛을쩍쩍크게다신다는뜻이다.이는한나라환담桓譚이지은『신론新論』에나온말로,실제로먹을수없는처지이나먹는것을흉내냄으로써만족을느껴보려는심정의표현이다.김풍기교수는삼십대중반에『도문대작』을처음만났지만,내용이너무간략해큰관심을느끼지못했다.그러다가세월이지난뒤허균의강릉에서의행적을보기위해책을펼쳐보게되었고우연히‘방풍죽’항목에빠져들었다.
나의외가는강릉인데그곳에는방풍이많이난다.2월이면강릉사람들은
이슬을맞으며새벽같이나가막돋아난방풍싹을뜯어햇볕에노출되지않도록한다.
곱게찧은쌀로죽을끓이는데,반쯤익었을때방풍싹을넣는다.
다끓기를기다려서차가운사기그릇에옮겨담아반쯤식었을때이것을먹는다.
달콤한향기가입에가득하여사흘이지나도가시지않는다.세상에서만날수있는
최고의음식이다._30~31쪽
허균에게임진왜란은지울수없는생의트라우마였다.스물네살의그는왜군이들이닥치자연로한어머니와만삭의아내를이끌고피란길에올랐다.한양을떠나험준한태백산맥을넘는여정은가혹했다.함경도단천에이르러아내가아들을순산했지만,쉴틈도없이왜군이뒤를쫓았다.산후조리도못한아내는갓난아기를품에안고마천령의험한고개를넘어야했다.결국기력이다한아내는머나먼타향의민가에서눈을감았고,엄마의젖을한번도물어보지못한아기마저며칠뒤세상을떠났다.허균은슬픔을추스를새도없이뒷산언덕에가족을묻고강릉외갓집으로향했다.
천신만고끝에도착한강릉사천의외가는폐허나다름없었지만,죽음의고비를넘긴그에게는유일한안식처였다.허균은이곳에서텅빈마음을달래려주변의풍광을감상하며시를지었다.그때그의상처받은영혼을어루만져준음식이바로방풍죽이다.향기가입안에사흘이나머물정도였다.허균에게그향기는가족을잃은고통을달래준유일한위로였다.
황해도수안군수로부임했을때그는문득그맛이그리워죽을끓이게했다.하지만12년전강릉에서맛보았던향긋함은어디에도없었다.토양이달랐을수도있고조리법이미숙했을수도있지만,무엇보다인생의밑바닥에서절실하게마주했던그‘위로의맛’이재현될리없었다.
화려함과궁벽함이공존하는허균의맛
『허균의맛』에서저자는『도문대작』본문을번역해원문과함께책뒤에싣고,본문에서는이를바탕으로음식문화사를써내려갔다.모든음식,식재료항목마다출처를살피고지명고地名考,물명고物名考등의고증작업을거치고자료가부족할경우관찬지지와개인문집등을적극적으로활용해풍성하게내용을되살려냈다.“그저한시대를살아가면서허균이경험한음식문화와내가경험한음식문화,그리고지금우리시대가보여주는음식문화를다양하게비교하면서여러가지문화코드를읽어보고싶었다”는게저자의변이다.
이책의1부는모두65개의글로이뤄져있다.『도문대작』의항목을재구성하여예순다섯가지의맛을제시했다고할수있다.앞부분은배,귤,감,참외,수박,복숭아,대추,포도등과채류가주를이루고,곰·사슴·꿩등심심산중의특산물을거쳐드넓은바다로나간다.가자미,석화,젓갈,문어,도루묵,청어,고등어,오징어,해파리,전복,방어,살조개,대게등을섭렵한다.바다의해초류도풍성하게다뤄올미역,감태,김,다시마,청각과황각등을언급한다.열목어,금린어,숭어,은어,웅어,붕어,새우등민물식재료도그에버금가는양이다.죽순,표고,원추리,들쭉,황각,삼포,여뀌등우리가쉽게접하는것부터전혀알지못하는식물식재료들의세계도만만치않게구성지게다뤄지고있다.
내자시정,조선팔도의진귀함을맛보다
『도문대작』은허균이유배지에서지은글이다.쌀겨도귀하고밥상에상한생선과들미나리가겨우올라올정도였던헐벗은상황에서과거맛있게먹었던음식을떠올리며품평을한기록인셈이다.기억에의존했다고는하지만,허균은조선팔도의특산물과어떤음식은어디가가장맛있다는음식족보가명확하게서있었다.가령붕어는“전국어디나모두있지만강릉경포는바닷물과통하기때문에맛이가장좋으며흙냄새가나지않는다”고적는식이다.
허균은불교를숭상했다는혐의로삼척부사에임명된지2개월만에(실제로는삼척에도착한지13일만에)탄핵되었고,그로부터2개월뒤인1607년(선조40)7월에복직되어내자시정內資寺正으로약5개월가량근무한적이있다.이벼슬은궁궐에소용되는각종쌀,곡식가루,기름,술,꿀,채소,과일등을관리하는책임자로궁중의연회를총괄한다.이러한직책의특성상허균은조선에서생산되는혹은공물로올라오는각종진귀한음식을두루맛보았을것이다.허균이각지역별로무엇이맛있는지소상히알게된것은이런직책을맡은것과무관할수없다.또하나눈길을끄는것은앵두다.허균은이렇게기록했다.“앵두[櫻桃].저자도楮子島에서나는것이작은밤만큼이나크고맛이달다.흰앵두는영동지방에서많이나는데,맛이붉은앵두만은못하다.”저자도는서울의압구정동과옥수동사이한강에있던섬이다.근대화바람에사라진것은허균이칭송한앵두만이아니었다.그것을길러내던저자도역시사라진것이다.그나마다행인것은『도문대작』을통해그곳의앵두를상상할수있다.저자는“앵두가아무리크다해도작은밤정도의크기라니,생각만해도흐뭇하다.게다가맛이달다고했으니그앵두를먹으려고봄이지나가기를기다리는마음은오죽했을까”라고안타까움을표현했다.
허균이국고를헐어서서얼들을돕는데썼다는죄로공주목사에서파직된후,은거하던그에게지리산에서수행중이던고승부휴선수浮休善修(1543~1615)가죽실을보내왔다.“죽실竹實.지리산에서많이난다.(…)감과밤의가루와섞어서만든것이었다.몇숟갈을먹었는데종일든든했다.참으로신선들이먹는음식이다.”대나무가꽃을피우고나면보리처럼달리는열매다.수확하여말린뒤죽을끓여먹기도하고숟가락으로떠먹기도했는데,맛이상상이가질않는다.
꿩고기는북쪽이제맛이지
중국사신을마중하러자주북방지역으로갔던허균은험한산골의음식도익숙했다.이곳의백성들은높으신관리양반들에게곰발바닥이나사슴꼬리같은귀한음식을대접했다.허균은특히곰발바닥과사슴꼬리를많이먹었던듯하다.곰발바닥에대하여허균은“산간지역에는모두있다.삶아서익히는것을적절히하지못하면제맛이나지않는다.회양淮陽의요리가가장좋고,의주·희천熙川이그다음이다”라고했다.
야생사슴을포획하기란결코쉽지않은일로,전문사냥꾼여럿이작전을짜고몰이를해야성공할수있었다.사슴을잡기가쉽지않은만큼사슴의혀와꼬리로만든요리는무척귀할수밖에없고,그러다보니공물을취합하는관리중에서녹미와녹설로이익을취하는자들이있었다.책에는사슴꼬리를절인엄록미醃鹿尾라는요리를만드는법이나온다.“사슴꼬리의털을깨끗이깎아내고뼈를발라낸공간에소금을넣고동전을넣은뒤그구멍에막대기를끼워바람에건조시킨다.”
요즘은꿩을거의먹지않지만조선시대에꿩은닭만큼많이먹는식재료였다.허균은꿩은북방의것이맛있다고기록했다.“고치膏雉.황해도산간지역에서나지만,양덕陽德과맹산孟山의것이가장좋다.”성현成俔의『용재총화慵齋叢話』에서는꿩에대해이렇게소개하고있다.“꿩이아름답기로는북쪽지방이최고다.지금은평안도강변江邊의꿩을진상한다.그크기가집오리만하고기름엉긴것이호박琥珀과같다.겨울이되면이것을잡아서진상하는데,이를고치膏雉라한다.그맛이매우좋다.북쪽으로부터남쪽으로갈수록꿩이점점비쩍마르는데,호남·영남의남쪽끝으로가면고기비린내때문에먹을수가없다.”
동수어(얼린숭어)의인기,백성의고혈을짜다
숭어는한강과평양의냉동숭어를으뜸으로쳤다.겨울철별미였던‘동수어(얼린숭어)’는선비들사이에서귀한선물이었으나,이를진상하기위해얼음을채워나르던백성들의고혈이서린생선이기도했다.고소한봄의전령인웅어는갈대숲에산다하여‘위어葦魚’라불렸다.뼈째씹는고소한맛이일품이나성질이급해금방죽기에,조선시대에는이를궁에신선하게배달하기위해얼음을실은전용배인‘빙어선’까지운영했다.허균은한때풍성했던청어가자신의시대에는잡히지않음을탄식했다.이순신장군이청어7000마리를곡식과바꾸려했다는기록으로보건대,청어가많이날때는식량인곡식과교환할정도로용도가다양했지만허균이글을쓰던때는청어의씨가말랐던듯하다.그런데조선후기청어는다시풍성해졌다.값이저렴해가난한유생들이배를불릴수있다하여‘유어儒魚’혹은‘비유어肥儒魚’라는별칭까지얻었다.
허균의기록에는또한미스터리한부분도많다.모과에대한기록이그렇다.“모과[木瓜].예천醴泉에서나는것이가장좋다.맛이배같고물기가있다.”이는상식에위배되는말이다.저자김풍기교수는자신이시도해본모과는모두물기가없고시고써서먹을수가없었기에더더욱이를믿을수없었다.그런데명자나무열매도목과木瓜라고했다.이규보도“모과는반쪽뺨이불그레한데,조각조각칼끝에떨어진다”라는시를썼다.이로보건대붉게물드는명자나무열매와유사하다.과연허균이언급한모과는우리가아는모과일까명자나무열매일까.기록은짧고세월은지나저자로서도끝까지고증해내지는못했다.
촌철살인의품평속에압축된조선의맛
허균은한강에서잡히는복어를최고로쳤다.독이있다는사실을알면서도그맛을포기못했던조선사람들의사건사고를전하기도했다.게는서해의꽃게와동해의대게를모두언급했는데,특히삼척에서나는대게는“크기가강아지만하다”고묘사할정도로인상깊게기록했어.연어는동해지역에서잡히는연어알을젓갈로담가먹는맛을귀하게여겼다.
밤다식은함주(함흥)지역에서나는밤으로만든다식을추천했고꿀떡은궁중이나명문가연회에서나오던꿀과기름이듬뿍들어간떡들의맛을회상하며기록했다.복숭아는허균의글에서가장다채로운이미지를형상화한다.그는춘천과홍천의황도,안양천변의반도,전주의승도(천도복숭아)를각각언급하며그특징을상세히기록했다.특히납작한모양의반도를두고“지금은구할수없으니안타깝다”고술회하는대목에서미식가로서의진한아쉬움이느껴진다.
이책엔홍시를먹다가돌아가신것으로추정되는허균모친의에피소드,잉어회를쳐놓고기다린다며친구를부르는익살맞은편지,조선시대선비들의입길에오른고급포도품종‘마유포도’에대한이야기,허균이유일하게설화까지섞어서비중있게소개한,우리가쏘가리로알고있는금린어,요즘처럼구워먹는것보다내장젓갈로훨씬더주목받았던조선시대고등어등다양한이야기들이소개되고있다.
허균의『도문대작』에등장하는수많은식재료는결국‘사람’과‘기억’으로귀결된다.그는먹을것만을위해살았다고자처했지만,사실은그음식을함께나누던벗들,그식재료가자라던고향의풍경,그리고그것을공물로바쳐야했던백성들의고단함을사랑했다.유배지라는극한의결핍속에서그가써내려간맛의목록은,현실의벽에부딪혀좌절했던천재지식인이자신을지켜내기위해차려낸마지막성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