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한 사람의 생애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것은 큰 사건보다 사소한 장면들이다. 새벽 부엌에서 밥을 짓던 어머니의 모습, 산길을 걸어오던 낡은 고무신, 신문지에 싸인 들기름 한 병, 병실에서 건네받은 한 숟가락의 밥에는 오랜 시간이 스며 있다. 김기순의 산문집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 순간』은 삶의 순간마다 마음에 남은 작은 장면들을 불러내어 한 사람의 생애를 되돌아보는 책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밤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이 책을 평범한 사람들의 기다림과 그리움에 관한 기록이라고 밝힌다.
이 산문집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의 자리에는 어머니가 있다. 「고무신과 송편」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옷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집집마다 다니며 옷을 팔고, 돈 대신 곡식을 받아 산길을 걸어 돌아온다. 어린 화자는 도랑물에 어머니의 고무신을 씻으며 닳아버린 밑바닥을 바라본다. 세월이 흐른 뒤 자신도 어머니만큼 늙은 나이가 되어서야, 작가는 그 고무신에 자식들의 숨소리와 한 여자의 고단한 생애가 담겨 있었음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꾹꾹 자국을 내며 빚던 송편도 가난한 시절의 음식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가족을 먹이고 지켜온 손의 기억이며, 작가 자신의 삶을 이루어온 가장 깊은 근원이다.
이 책에는 한평생 함께 살아온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도 깊게 배어 있다. 밤꽃 향기, 빈 마당, 낡은 침대, 구절초와 밤나무를 마주할 때마다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온다. 말보다 행동으로 가족을 지키던 남편의 사랑은 그가 떠난 뒤에 더욱 선명해진다. 작가는 “밤꽃은 향기로 기억되고, 사람은 사랑으로 기억된다”고 쓴다. 상실은 삶의 빈자리를 만들지만, 함께 견뎌낸 시간의 온기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김기순의 산문은 그 빈자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움을 품고 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을 보여준다.
슬픔과 함께 이 책을 이루는 또 하나의 정서는 사람 사이의 따뜻한 유대다. 봄부터 가을까지 들깨를 가꾸어 짠 들기름 한 병에는 한 사람의 땀과 기다림이 들어있다. 투박한 신문지에 싸인 들기름을 건네받으며 작가는 “크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손끝으로 사랑을 건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매들이 나누는 음식과 여행, 이웃에게 건네는 농작물, 가족의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도 모두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행복은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순간에 가까이 있다.
이러한 유대는 세대를 건너 이어진다. 한때 딸을 보호하던 어머니는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면서 딸의 손에 기대게 된다. 작가는 의지한다는 것이 약해졌다는 뜻보다 관계가 깊어졌다는 증거임을 깨닫는다. 어머니에게서 자신에게로, 다시 자신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진 돌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누군가를 붙잡아주고, 어느 순간에는 다른 사람의 손에 붙들리며 살아간다.
작가가 요양과 돌봄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도 이 산문집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술과 가난, 질병과 외로움에 지친 사람을 대할 때 작가는 먼저 그들의 손을 잡는다. 비난보다 그들이 견뎌온 고통을 바라보고, 떨리는 손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랑의 온기를 믿으려 한다. 자신의 상처를 통과해 온 사람만이 타인의 외로움 곁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 순간』에서의 ‘손’은 여러 사람의 생애를 이어주는 상징이다. 그 손은 산길을 걸어온 어머니의 손이고, 가족을 지켜온 남편의 손이며, 음식을 나누는 자매와 늙은 어머니를 붙잡아주는 딸의 손이다. 작가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 순간은 결국 내 손을 잡으며”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했다고 고백한다. 이 산문집은 그 소박한 고백을 따뜻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 산문집에서 가장 오래된 기억의 자리에는 어머니가 있다. 「고무신과 송편」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옷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집집마다 다니며 옷을 팔고, 돈 대신 곡식을 받아 산길을 걸어 돌아온다. 어린 화자는 도랑물에 어머니의 고무신을 씻으며 닳아버린 밑바닥을 바라본다. 세월이 흐른 뒤 자신도 어머니만큼 늙은 나이가 되어서야, 작가는 그 고무신에 자식들의 숨소리와 한 여자의 고단한 생애가 담겨 있었음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꾹꾹 자국을 내며 빚던 송편도 가난한 시절의 음식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가족을 먹이고 지켜온 손의 기억이며, 작가 자신의 삶을 이루어온 가장 깊은 근원이다.
이 책에는 한평생 함께 살아온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도 깊게 배어 있다. 밤꽃 향기, 빈 마당, 낡은 침대, 구절초와 밤나무를 마주할 때마다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온다. 말보다 행동으로 가족을 지키던 남편의 사랑은 그가 떠난 뒤에 더욱 선명해진다. 작가는 “밤꽃은 향기로 기억되고, 사람은 사랑으로 기억된다”고 쓴다. 상실은 삶의 빈자리를 만들지만, 함께 견뎌낸 시간의 온기까지 지우지는 못한다. 김기순의 산문은 그 빈자리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움을 품고 다시 하루를 살아가는 마음을 보여준다.
슬픔과 함께 이 책을 이루는 또 하나의 정서는 사람 사이의 따뜻한 유대다. 봄부터 가을까지 들깨를 가꾸어 짠 들기름 한 병에는 한 사람의 땀과 기다림이 들어있다. 투박한 신문지에 싸인 들기름을 건네받으며 작가는 “크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손끝으로 사랑을 건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매들이 나누는 음식과 여행, 이웃에게 건네는 농작물, 가족의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도 모두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행복은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순간에 가까이 있다.
이러한 유대는 세대를 건너 이어진다. 한때 딸을 보호하던 어머니는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해지면서 딸의 손에 기대게 된다. 작가는 의지한다는 것이 약해졌다는 뜻보다 관계가 깊어졌다는 증거임을 깨닫는다. 어머니에게서 자신에게로, 다시 자신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진 돌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누군가를 붙잡아주고, 어느 순간에는 다른 사람의 손에 붙들리며 살아간다.
작가가 요양과 돌봄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도 이 산문집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술과 가난, 질병과 외로움에 지친 사람을 대할 때 작가는 먼저 그들의 손을 잡는다. 비난보다 그들이 견뎌온 고통을 바라보고, 떨리는 손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랑의 온기를 믿으려 한다. 자신의 상처를 통과해 온 사람만이 타인의 외로움 곁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 순간』에서의 ‘손’은 여러 사람의 생애를 이어주는 상징이다. 그 손은 산길을 걸어온 어머니의 손이고, 가족을 지켜온 남편의 손이며, 음식을 나누는 자매와 늙은 어머니를 붙잡아주는 딸의 손이다. 작가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 순간은 결국 내 손을 잡으며”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했다고 고백한다. 이 산문집은 그 소박한 고백을 따뜻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준 순간 (김기순 산문집)
$1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