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 재난 트라우마의 현장에서 사회적 지지와 연결을 생각하다

고통의 곁에 우리가 있다면 : 재난 트라우마의 현장에서 사회적 지지와 연결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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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코로나19, 이태원 참사, 재난 …
고통은 우리를 어떻게 바꿔놓는가
“트라우마는 일상의 모든 연결을 끊어놓는다.”
최근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트라우마는 어원이 ‘뚫다’ ‘뚫리다’의 의미로 마음에 구멍이 뚫릴 만큼 극심한 고통을 말한다. 흔히 죽음이나 죽을 뻔한 위협, 심한 부상, 성폭행 등을 겪으며 트라우마를 경험한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창립회장인 채정호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는 힘들어도 원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많지만, 트라우마는 여기에 너무 압도되기 때문에 사건 이후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정신건강 분야의 유명한 역학연구 '미국공존질환조사'에 따르면, 미국 남성의 60.7%, 여성의 51.2%가 살면서 한 번 이상의 트라우마를 겪는다. 이제는 누구라도 트라우마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채정호 교수는 지난 37년간 성수대교 붕괴, 천안함 피격,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등 숱한 사회적 재난을 지켜보며 트라우마의 고통이 우리사회에 번져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유행 시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에 노출될 수 있으며, 따라서 심리방역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연구를 통해 감염병이 정신적 문제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한다. 메르스 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 63명을 2년간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이 병을 앓고 나서 만성피로를 느꼈던 사람은 자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채정호 교수는 코로나19가 트라우마로 다가온 이유를 ‘안전감의 상실’에서 찾는다. 실제로 코로나19 동안 대부분의 사람은 안전감이 크게 위축되면서 모든 것을 의심하고 주의해야 했다.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긴장 수준을 높이며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렸다. 즉, 언제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일상생활을 제한하고, 사람과의 만남도 꺼리면서 사회에서 자신을 고립시켰다. 채정호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고립은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증)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확산시키며 개인의 인지, 행동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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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채정호

가톨릭대학교의과대학을졸업하고,강남성모병원(현서울성모병원)에서정신과전문의를,가톨릭대학교대학원에서의학박사를취득했다.미국사우스캐롤라이나의과대학두뇌자극연구실펠로우를이수했으며현재서울성모병원교수로재직중이다.잘치유되지않는환자들을위한새로운치료법도입에관심이많아국내최초로경두개자기자극술을도입하는등난치성트라우마및정서장애를주로치료,연구하고있다.20년전외...

목차

프롤로그살아있으면살아집니다

1장혼자만의아픔,소외되는우리
우리는혼자라서더아프다
한번도경험해보지못한아픔
코로나19,이것은트라우마상황이다
힘들때,누가내곁에있어줄것인가
갈수록커지는정신건강의격차
사회가아프니까나도아프다
마스크에갇히면서잃어버린것
이것은타인의고통이아니다
정서폭력이난무하는사회
억울해서병난다,울분넘치는사람들
고통에는소멸시효가없다
아픔을대하는태도가그사회의수준
사람의생명에도값이있을까?
고통의곁에선다는것

2장존중받지못한아픔들
고통이몸과마음에남긴흔적
트라우마,마음의화상을입다
고통을기억하는몸
즐거움과친밀감을잃어버리면
상처를부추기는것들:편견,혐오,무지,막말
고통에서의미를찾지못하면
나쁜기억은더강화된다
현재를살아가지못하는사람들
참혹한현장을가장먼저만나야하는고통:소방관의트라우마
수치심과맞닥뜨려야하는고통:성매매경험자의트라우마
끔찍한순간을혼자감당해야하는고통:지하철기관사의트라우마
목숨을걸고위험과마주해야하는고통:산업재해와트라우마
우리가꼭기억해야할사회적트라우마
내가안전하지않다는항시적불안감:성수대교붕괴참사
전쟁이후가장많은생명을잃은날:삼풍백화점붕괴참사
한번의방어막이라도작동했더라면:대구지하철화재참사
두려움과죄책감속에사는고통:천안함피격참사
우리모두가집단트라우마에빠진날:세월호침몰참사

3장‘우리’라는빛을찾아서

-과거에서빠져나와현재를살아가려면
-고립은병을부른다
-몸이움직이면마음도움직인다
-죽었던마음이다시살아날때
-애착,모든것의원인이자해결점
-이제는심리자본을쌓아야할때
-우리가함께울면아픔도힘이된다
-아픔이아픔을위로한다
-돌봄이란서로를의지하며사는것
-외상후성장이아니라성숙이다
-건강은개인적이면서사회적인것
-우리가연결될때,삶은더단단해진다
-고통의곁에우리로살기위하여

에필로그‘빛’은어둠을살린다
특별대담함께의삶은쉽게무너지지않는다

출판사 서평

우리에게울분이많은이유
“자신의고통이존중받지못할때,인간은무너진다”

1960년대베트남전참전을놓고한국군인과미국군인의처지는극명하게달랐다.미국은참전이후,삶이나락으로떨어진군인들이많았다.알코올이나마약중독에빠지거나자살하는사례도속출했다.우리도트라우마에시달리는군인들이있었지만,그정도가미국과사뭇다르게약했다.왜이런차이가났을까?채정호교수는트라우마는사회적맥락의차이에따라'같은사건'도'다른결과'를가져올수있다고말한다.우리는파병군인에게국가차원에서장려하며애국자로추켜세웠다.그러나미국은반전분위기가확산되는가운데군인들은죄책감과수치심에시달려야했다.채정호교수는자신이겪는고통이의미를갖지못하면트라우마는더깊어진다고말한다.즉주변사람들과그사회가공감하지못하면트라우마의고통은더악화된다.

그렇다면우리는트라우마경험자들의고통에어떻게다가갔을까?트라우마전문가로서채정호교수가바라본우리사회는정서적으로아직후진국에머물러있다.가정과학교,직장등사회곳곳에서트라우마유발요인이너무많고,또트라우마에대한감수성도낮기때문이다.우리는매일뉴스를통해수많은트라우마의고통을접한다.지난참사를비롯하여산업재해생존자,소방공무원,지하철기관사,성매매종사자등이겪는고통,그리고온오프상에서횡행하는정서폭력등은우리사회의어두운그림자를잘보여준다.채정호교수는이렇게존중받지못한고통은울분으로드러날수있다고경고한다.사실울분은우리에게낯선정서가아니다.부당함이나불공정함으로인해울분을겪는모습을우리주변에서심심치않게찾아볼수있다.채정호교수는“울분은단순한화나분노가아니며,대개인격이송두리째부정당하는사건,너무부당한일을겪으면외상후울분장애(PTED)가발생한다”고말한다.

이책에서채정호교수는세월호유가족에게나타난특이점으로울분의정서를꼽는다.보통의트라우마사건은공포나두려움이선명하게부상하는데,세월호유가족에게는'울분'이라는정서가뚜렷하게나타났다.갑작스런죽음을두고왜이런울분을느끼게되었을까?채정호교수는세월호참사당시,마땅히함께슬퍼하고아파하면되는데,우리사회는그아픔을품어주지못했다고말한다.세월호참사이후생존자와유가족의상태를모니터링하는코호트연구에따르면,트라우마자체도힘들지만이들을더힘들게한것은무지와편견에사로잡혀서내뱉는'막말'과'혐오'였다.일부정치인이생각없이하는한마디,언론의왜곡된보도,무차별적으로유포되는유언비어등은간신히버티고있는세월호생존자와유가족의상처를후벼파며울분을자극했다.트라우마는그사회가고통을어떻게대하는지를보여주는거울이다.채정호교수는이책에서우리사회가외면했던트라우마를살펴보고,그고통이얼마나깊고오래가는지를연구결과와함께보여주며자성을촉구한다.

우리는고통의곁에있는가
재난코호트연구가전하는사회적고통의해법
“트라우마치유의최종종착지는사회적지지와연결이다.”

세월호참사가일어난지3개월후,네덜란드에예기치못한참사가일어났다.암스테르담을떠나말레이시아쿠알라룸푸르로향하던여객기MH17편이미사일에격추당하면서승객과승무원등298명이숨졌고,이가운데네덜란드국적을가진사람이193명으로가장많았다.네덜란드정부의대응은신속했다.희생자시신을수습한첫비행기가네덜란드에도착했을당시,공항에는최고통치자를비롯하여국왕내외와정부의모든부처각료가마중을나가서유가족과함께슬픔을애도했다.네덜란드정부와국민이전심으로애도하는모습을보며채정호교수는우리사회가그동안사회적고통에어떻게대했는지를묻는다.

트라우마는전염성이높다.치유되지못한트라우마의고통은개인과사회전체를병들게하는요인으로작용한다.한사람의트라우마는집안전체,나아가그가속한모든사회에영향을미치기때문이다.트라우마의대물림은확인된사실이다.채정호교수의연구실이캄보디아킬링필드경험자를대상으로진행한연구에따르면,이끔찍한사건에서40년이지났지만아직도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우울,불안등의증상이심하게나타났다.심지어킬링필드를경험하지못한청년층에도간접효과가남아있었다.채정호교수는트라우마의대물림을끊기위해서고통의기억을강조한다.고통을기억하지않으면고통에서배울수없다.이책에서그는독일사회가고통을기억하는모습을전한다.독일베를린거리곳곳에는‘걸려넘어지는돌’(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e)이라는뜻을가진작은동판을볼수있다.동판의이름은걸림돌이지만지난고통을되새기며다시는그런참사가일어나게않아야한다는성찰의의미를담고있다.채정호교수는과거의고통이독일사회의디딤돌이되어서외상후성장을이루었다고말한다.?

트라우마는혼자서극복할수없는심리적재난상태다.즉외부의자원없이트라우마의회복과치유를기대할수없다.세월호재난코호트연구는이를증명한다.세월호생존학생48명을대상으로'고통의시간을잘견디게해준요인'에대해조사한결과,가장큰요인으로사회적지지(socialsupport)를받고있다는느낌이었다.사회에서누군가나를돕고지지한다는감각이있으면,어떤끔찍한사건을경험하고도견딜수있다.채정호교수는‘고통의곁’을강조한다.너무나아프고힘들때,손내밀어잡을수있는곁이있다는것은그자체로큰위로로다가온다.따라서이책에서‘곁’은사회적지지와연결이며,또한‘우리’라는정서공동체의회복을의미한다.

책속에서

스트레스와트라우마는확연히다릅니다.스트레스는자신의자원으로얼마든지이겨낼수있습니다.하지만트라우마는자신을둘러싼모든보호막이깨진상태로혼자의힘으로는벗어나기매우어렵습니다.이전에는조심스레잘담아두었던아픔도트라우마이후에는불쑥터져나올정도로사소한자극에도예민해집니다.몸을보호하는피부가화상을입으면보호막이깨져서아픔이몰려옵니다.
---p.120

저희연구실은세월호참사이후,생존자들과유가족들의상태를모니터링하는코호트연구(대상자를선정하여일정기간동안시간경과에따라추적·관찰하는연구)를지속하면서중요한사실을발견했습니다.트라우마자체도힘들지만생존자들을더힘들게하는것은무지와편견에사로잡혀서내뱉는‘막말’과‘혐오’였습니다.일부정치인이생각없이하는말한마디,언론의왜곡된보도는간신히버티고있는트라우마생존자와유가족의상처를후벼팠습니다.참사희생자들을물고기밥취급했던이른바‘어묵사건’,4월이면온라인등을통해쏟아지는“시체팔이그만해라”“돈받았으면적당히해라”등과같은악랄한혐오표현들,유가족들이광화문광장에서단식투쟁을벌였을때그앞에서피자,치킨등을폭식한패륜행위,4·16생명안전공원과기억교실을만드는것에대한지역사회의반대등이트라우마의고통을더부추겼습니다.
---p.139쪽

트라우마는시간이지난다고그냥나아지지않습니다.참사가일어난지4년이지난1999년10월,참사당시아내와아들을잃은40대남성이삼풍백화점희생자위령비근처에서스스로목숨을끊었습니다.성수대교붕괴로사망한딸의위령비앞에서목숨을끊은아버지와판박이였습니다.재난과재해는그자체로끝나지않습니다.유가족중에는스스로목숨을끊을정도로심각한아픔을겪는사람들이많습니다.재난은경험자뿐아니라주변사람에게도큰영향을끼칩니다.유가족에대한지속적인관리가이루어진다면,이러한고통과아픔도조금누그러질수있습니다.우리는늘재난을겪은분들과그주변에있는사람들의고통에예민해야합니다.당장이라도내가겪을수있기때문입니다.

당시를떠올리면지금도잊을수없는한장면이있습니다.휴대폰에있는아들사진을보며눈물을펑펑흘리던어느어머님이있었습니다.허망하게자식을잃은유가족을어떻게든도와주고싶었습니다.30년넘게정신과의사로살면서정신적고통으로힘든분들을수없이만나치료했지만,그순간만큼은저자신이참무력하다는사실을절실히깨달았습니다.그렇지만이것하나만큼은잊지않고싶었습니다,‘유가족곁에끝까지함께있겠다!’고통의현장에서그분들의피눈물을지켜본사람들이라면누구라도그런다짐을했으리라생각합니다.그만큼모두가힘들고아팠습니다.
---p.215

극심한고통을겪고있는트라우마경험자를살게하는핵심은바로사회적지지(socialsupport)입니다.고통은소외될수록치유와멀어집니다.저희연구실이세월호생존학생48명을대상으로‘고통의시간을잘견디게해준주요요인’에대해조사한결과,가장큰요인으로‘사회적지지를받고있다는느낌’이었습니다.36사회에서누군가나를돕고지지한다는감각이있으면,어떤끔찍한사건을경험하고도견딜수있습니다.사회적지지유무에따라사람은살거나아니면나락으로빠집니다.따라서이름모를누군가의고통이소외되지않도록,혼자만의고통으로끝나지않도록서로의곁을내주어야합니다.‘곁’은물리적인공간인‘옆’과다릅니다.서로의마음을허락하고열어주는연결의끈입니다.너무나아프고힘들때,손내밀어잡을수있는곁이있다는것은그자체로큰위로로다가옵니다.
---p.221

트라우마치유의최종종착지는사회적으로재연결되는것입니다.니키는예술과사랑을통해고통스러운과거대신에현재를살아갈수있는이유와의미를찾았습니다.자신이겪은고통과트라우마를자신만의방식으로이야기하면서사람과삶,그리고세상안으로들어갔습니다.이때내가안전하다는느낌이매우중요합니다.안전은인간으로살아갈수있는기본조건입니다.아기는곁에보호자가보이지않으면울음을터뜨리다가다시보호자가나타나면울음을그칩니다.안전하다는감각이작동하기때문입니다.니키는장을만나서자신이안전하다는감각을회복하고,자신과사람들과그리고사회와다시연결되었습니다.이는니키에게만해당하는것이아닙니다.사람,그리고사회와연결될때,트라우마로죽었던마음이다시살아날수있습니다.
---p.250

트라우마는‘나’를지독하게괴롭히지만,‘우리’앞에서는작아집니다.고통은누구에게나두렵습니다.두려움은쉽게나를집어삼킬수있습니다.우리는다릅니다.고통의곁에우리가있다면달라집니다.고통앞에서힘들고무서운것은당연하지만,우리가함께있을때,두려움은넘어설수있습니다.참사는끊이지않고일어나고있습니다.국가나사회,공권력에대한불신은계속되고있습니다.끊임없이스며드는환멸은각자도생을부추깁니다.하지만나혼자살아야하는각자도생은약하고,오래가지못합니다.모두가함께하는힘에서우리는불행도환멸도건널수있습니다.나의고통곁에네가있다면,너의고통곁에내가있다면,그리고모든고통의곁에우리가있다면,우리는지난참사를잊지않고,트라우마를치유하면서다음세대에새로운세상을넘겨줄수있습니다.
---p.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