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눈송이

단 하나의 눈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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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사이토 마리코의 시집은 한국문학이 외국인에게 처음으로 발급한 ‘비자’다. 모국어는 우리만의 것이라며 모국어의 가장 안쪽에서 그 결과 무늬를 다듬어온 한국 시인들에게 그의 ‘입국’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녀의 시집은 경계에 선 자가 바라본 한국과 한국인이다. 동해도 아니고 일본해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바다를 바라보려고 하는 ‘무국적’의 시각이다. ‘문의 입장은 중립적이다’라고 그녀가 썼듯이, 출구도 아니고 입구도 아닌 문과 같은 자리, 즉 ‘사이(間)’에 시인은 서 있다(이문재 시인).
저자

사이토마리코

저자_사이토마리코(齋藤眞理子)
시인,번역가.1960년일본니가타에서태어나메이지대역사학과에서고고학을전공하고재학중한일학생모임에서한국어공부를시작하였다.1983년부터시를발표하였으며1990년첫시집『울림날개침눈보라』를출간하였다.1991년한국으로유학을와서연세대와이화여대어학당에다녔고1993년한국어시집『입국』을상재하였다.2014년부터『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조세희),『카스테라』,『핑퐁』,『삼미슈퍼스타즈의마지막팬클럽』(박민규),『희랍어시간』(한강),『아무도아닌』,『야만적인앨리스씨』(황정은)등한국문학작품들을번역하였다.특히『카스테라』는제1회일본번역대상을수상하였다.


목차

서시
입국
미열
비오는날의인사
이렌즈는푸름을지나치게통과시킨다
지뢰
여행
한걸음
하구(河口)
토장(土葬)
시야
오르막길
지열
서울
소식
서울사람1
서울사람2
광합성
난류
20세기
바람개비1
바람개비2
도시
살아계세요
신촌부근
굴절률
태백
등심(燈心)
그림자줍기
해명
생명
첫눈
거울
구름다리위에서
눈보라
손톱
청량리
날개
억재된존재
사이
비밀
나비
지금외출중이오니
그지하도에서
고향의봄
유리조각
달램
신음소리
섬으로가는길
2011.6후쿠시마에서
2015.5-1
2015.5-2
自序
시인의말|오로지무언가를보는일
해설|단하나의눈송이|임선기(시인)

출판사 서평

일본작가가한국어로쓴시집,『단하나의눈송이』
어쨌든,피할수없는대목일듯하다.시의보편성,시집이담아낸개성넘치는세계,시어가얼마나생동한가보다,일본시인이‘한국어’로쓴시집이라는지점이어쩔수없이흥미로운화제가될만하다.
“눈으로본것,마음에떠오른것을말하고싶어도제대로못했던답답함이시를쓰게만들었던것이아닌가싶다.(…)시니까외국어로쓰다는것이가능했던것이다.”―「시인의말」에서

*
한국어로시를쓴다는일에대하여
“여기에실린시를처음에썼을때는먼저일본어로쓰고나중에한국어로고쳤다.그러다,쓰면서번역하기어려운말이나오자다른말로바꾸어쓰고또한국어로번역하기쉬운말을골라서쓰게되었다.그다음에는처음부터한국어로생각하고한국어로쓰는것이오히려편하다는결론에이르렀다.”―「시인의말」에서
수록시들중「소식」부터는한국어로생각하고바로한국어로쓴것들이다.

*
서투른언어,교배된언어의소산
시인은비모어를배우는과정을열달이아닌십년동안공들여키워야가능한태교의과정으로묘사하고있다.

나무를일본말로KI라고하며한국말로는NAMU라고한다.십년전에처음한국말을배웠을때‘나무’란낱말이나의가슴속으로뿌리를내렸다.한국에온지두달동안줄곧아래만보면서돌아다녔는데유월이되고처음으로눈을들어봤더니그들이잎사귀를살랑거리며서있었다.그들을‘나무’라고부르면내속에서‘나무’가답례했다.십년공들여간신히푸르게자란잎사귀들이눈부시게펄럭이면서.
―「광합성」에서

*
시인에게90년대초,서울은‘보고느끼는’시간이었다
사이토마리코의이시집은생각의산물이아니라,보고느낀것,다시말해감정의소산이었다.

이나라에서꽃은속삭이지않는다
이나라에서꽃은외친다
그외침속에서
사람들의모음(母音)은한덩어리되고
자음(子音)은산산이흩어져갔다
모음덩어리는한번증발해
싸락눈이되어다시내려온다마치
고생많아버림받은엄마의비탄처럼
이나라에서꽃은속삭이지않고
딸들은언제나싸락눈을맞으며
출발했다언제나멀리
흘음(吃音)의벼락맞아떨리면서
―「서울사람2」전문

*
사이토마리코에게시인이란‘하루’라는새를쉬게하고싶어긴홰가되고자하는인간이다.

바다를건너가는떼로부터
뒤처져버린새한마리는
따라붙을수있으리라믿고날아가면서
어느새바다그자체가될것이다

하루가작은새한마리라면
나는그긴홰이고싶다
―「난류」전문

*
시인윤동주를좋아한시인사이토마리코
윤동주를좋아한시인이바라기노리코,역시윤동주를좋아한시인사이토마리코.이바라기노리코시인을좋아한사이토마리코.

모르는사이에당신의나이를넘어있었습니다.
그것을잊은채로당신의나라에와버렸고
잊은채로당신의학교에까지와버렸습니다
팔짱을끼고독수리상을지나서좀왼쪽으로올라가면
당신의비석이서있습니다
(…)
오늘은비가지독하고
(…)
여기올때마다조그마한꽃다발이놓여있습니다
(…)
저는당신의말앞에서있습니다
―「비오는날의인사」에서

*
한편의시「눈보라」에대하여
일본어에는‘눈송이’에해당하는낱말(고유어)이없다.한자로‘설편(雪片)’이라는낱말이있긴하지만일상적으로사용하는단어는아니다.이시를쓴것은다만눈송이라는말을사용하고싶어서였다.이시를썼을때는아마실제로눈이내리는계절이었을것이다.그리고그당시의나는쓰고싶은낱말이하나있으면그것을계기로술술쓸수가있었다.낱말하나만있으면어디까지나걸어갈수있었으며또어디에서멈추면되는지도자연스럽게알았던것같다.나는눈송이라는낱말을발음할때,특히‘송이’라는부분을발음할때ㅇ에서ㅇ로공기가마찰하는듯한느낌,소리의가벼움과무게,거기에감도는눈의향기와도같은무언가가‘눈송이’를발음한순간에나타나는집합체로서눈이아닌눈송이하나하나의존재감,그하나하나모든것을좋아했다.

1
눈보라속저쪽에서사람이걸어온다.저사람역시지금‘눈보라속저쪽에서사람이걸어온다.’하고생각하고있을것이다.무릎보다높이쌓인눈.사람이가까스로빠져나갈만한좁다란길양쪽에서나와그사람은서로마주보며걸어가는거다.사람들은언제맞스치기시작하는것일까?그것은이미시작됐는가?하여튼둘은서로다가간다.지상에단둘이만남겨져버린것처럼마침내마주친그순간,한사람이빠져나가는동안또한사람은한편으로몸을비키며멈추어서서길을양보한다.그때둘이는인사를주고받는다.그것이내고향설국의오래된습관이다.
“눈보라속저멀리서사람이걸어온다.”그것을인정했을때부터이미맞스치기는시작된것이다.누가먼저길을양보하느냐는그때가와야알수가있다.
나는한때그런식으로눈보라속멀리서걸어오는조선의모습을만났다.
아직도같은눈보라속을다니고있다.

2
수업이심심하게느껴지는겨울날오후에는옆자리애랑내기하며놀았다.그것은이런식으로하는내기이다.먼저창문밖에서풀풀나는눈송이속에서각자가눈송이를하나씩뽑는다.건너편교실저창문언저리에서운명적으로뽑힌그눈송이하나만을눈으로줄곧따라간다.먼저눈송이가땅에착지해버린쪽이지는것이다.“정했어.”내가낮은소리로말하자“나도”하고그애도말한다.그애가뽑은눈송이가어느것인지나는도대체모르지만하여튼제것을따라간다.잠시후어느쪽인가말한다.“떨어졌어.”“내가이겼네.”또하나가말한다.거짓말해도절대로들킬수없는데서로속일생각하나없이선생님야단맞을때까지열중했다.놓치지않도록.딴눈송이들과헷갈리지않도록온신경을다집중시키고따라가야한다.다른모든눈송이와아주비슷하게생긴단하나의눈송이.
나는한때그런식으로사람을만났다.아직도눈보라속여전히그눈송이는지상에안닿아있다.
―「눈보라」전문

*
지금,사이토마리코시인은?
일본으로건너간뒤시인은시쓰기를멈춘다.어찌된영문인지더이상시가자신을“찾아오지”않은것이다.그맇게시간을보내던시인은최근몇해동안한국소설들을번역하기시작한다.현실에밀착해있되,개성있는문체를뽐내는작가들의작품―조세희의『난장이가쏘아올린작은공』을시작으로,박민규,한강,황정은,천명관등동시대가장핫하고개성적인작품―들을한국어에서일본어로옮긴것이다.

*
이시선집은‘봄날의책세계시인선’둘째권으로출간되었다.뒤이어이바라기노리코,앤식스턴의시집이준비중이다.‘봄날의책세계시인선’은동시대의주요한세계시인들(국내시인들포함)의시집을계속출간할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