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가는 마을 -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처음 가는 마을 -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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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내가 가장 예뻤을 때」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대표작들을 모은 시선집.

단순한 언어에 깊은 뜻을 담는 일, 어렵지 않은 시어로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는 일, 그리하여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쪽으로 가게 하는 일, 이것이 이바라기 노리코가 시인으로 살면서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해온 작업이다.
저자

이바라기노리코

본현대시의걸작중하나로평가되는「내가가장예뻤을때」로유명한이바라기노리코(茨木のり子,1926~2006)는전후(戰後)일본문단을대표하는여성시인이다.이바라기는한국과특별한인연이있는시인이기도하다.한국어를직접배웠을뿐아니라동시대한국시인들의시를일본어로번역하였고,시와수필을통해한국문화를알리기도하였다.윤동주의시와생애에대해쓴수필은일본에서잔잔한반향을불러일으켰으며,「바람과별과시」라는제목으로일본의고등학교국어교과서에도수록되었다.이바라기는한국어를공부하는과정에서많은한국인들을알게되었고,한국을수차례방문하면서한국문화를몸소체험하였다.이러한경험을토대로집필한수필집『한글로의여행』(1986)은한국문화입문서로서지금도많은사람들의사랑을받고있다.

목차

전설
행방불명의시간

길모퉁이
버릇
물의별
이자카야에서
충독부에다녀올게
이웃나라언어의숲
그사람이사는나라
벗이온다고한다
내가가장예뻤을때
학교그신비로운공간
이정표
낙오자
3월의노래
6월
11월의노래
12월의노래
자기감수성정도는
질문
떠들썩함가운데
호수
처음가는마을
창문
얼굴
기대지않고
나무는여행을좋아해
목을맨남자
쉼터
벚꽃
말하고싶지않은말
안다는것
이실패에도불구하고
여자아이의행진
식탁에는커피향이흐르고
더강하게
되새깁니다
바다가까이
작은소용돌이
시인의알
그날

달의빛
부분

연가
짐승이었던
서두르지않으면
(존재)
(팬티한장차림으로)
세월

옮긴이의말
수록작품출전

출판사 서평

「내가가장예뻤을때」의시인,이바라기노리코의대표작들을모은시선집

“제시의발상은전쟁때로거슬러올라갑니다.주변에아름다운것은없고뉴스나영화도전쟁물뿐이어서살벌했습니다.모든아름다운것이터부시되는시대였어요.어린마음에도이건이상한일이라는생각이들었습니다.죽는게가장훌륭한일이라고들하는데,그럼태어나지말았어야한다는건가?애초에생명은왜태어나는걸까?그런의문이들었습니다.결국은제안에있는작은씨앗의주장이옳았습니다.각자의내면에숨쉬는좋고싫음도중요하고.제가가진감성이옳다는생각이들었습니다.”

내가가장예뻤을때
거리마다와르르무너져내려
엉뚱한곳에서
푸른하늘같은것이보이기도했다

내가가장예뻤을때
곁에있던이들이숱하게죽었다
공장에서바다에서이름모를섬에서
나는멋부릴기회를잃어버렸다

내가가장예뻤을때
아무도다정한선물을주지않았다
남자들은거수경례밖에할줄몰랐고
순진한눈빛만을남긴채모두떠나갔다

내가가장예뻤을때
나의머리는텅비고
나의마음은꽉막혀
손발만이짙은갈색으로빛났다

내가가장예뻤을때
나의나라는전쟁에서졌다
그런멍청한짓이또있을까
블라우스소매를걷어붙이고비굴한거리를마구걸었다

내가가장예뻤을때
라디오에선재즈가흘러나왔다
금연약속을어겼을때처럼비틀거리며
나는이국의달콤한음악을탐했다

내가가장예뻤을때
나는몹시도불행한사람
나는몹시도모자란사람
나는무척이나쓸쓸하였다

그래서다짐했다되도록오래살기로
나이들어아름다운그림을그린
프랑스루오할아버지처럼
그렇게
--「내가가장예뻤을때」(전문)

처음가는마을로들어설때에
나의마음은어렴풋이두근거린다
국숫집이있고
초밥집이있고
청바지가걸려있고
먼지바람이불고
타다만자전거가놓여있고
별반다를것없는마을
그래도나는충분히두근거린다

낯선산이다가오고
낯선강이흐르고
몇몇전설이잠들어있다
나는금세찾아낸다
그마을의상처를
그마을의비밀을
그마을의비명을

처음가는마을로들어설때에
나는주머니에손을찔러넣고
떠돌이처럼걷는다
설령볼일이있어왔다고해도

맑은날이면
마을하늘엔
어여쁜빛깔아련한풍선이뜬다
마을사람들은눈치채지못하지만
처음온내게는잘보인다
그것은
그마을에서나고자랐지만
멀리서죽을수밖에없었던이들의
영혼이다
서둘러흘러간풍선은
멀리시집간여자가
고향이그리워
놀러온것이다
영혼으로라도엿보려고

그렇게나는좋아진다
일본의소소한마을들이
시냇물이깨끗한마을보잘것없는마을
장국이맛있는마을고집스런마을
눈이푹푹내리는마을유채꽃이가득한마을
성난마을바다가보이는마을
남자들이으스대는마을여자들이활기찬마을
--「처음가는마을」(전문)

어딘가아름다운마을은없을까
하루일마치고흑맥주한잔기울일
괭이를세워두고바구니를내려놓고
남자고여자고큰잔을기울일

어딘가아름다운거리는없을까
주렁주렁열매맺힌과실수가
끝없이이어지고제비꽃색황혼
상냥한젊은이들열기로가득한

어딘가사람과사람을잇는아름다운힘은없을까
동시대를함께산다는
친근함즐거움그리고분노가
예리한힘이되어모습을드러낼
--「6월」(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