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주인은법조인이아니라시민이라는
이단순한원칙에서사법개혁이시작돼야한다
나는변호사가되어서야법이나법원이란것을제대로이해할수있게되었다.법대(法臺)에앉아서도법의한계를알고그너머세계가있음을안다고생각했지만,내려와보니세상은훨씬깊고넓었다.……먼저사법과정과사법작용이사건당사자와일반국민에게어떤영향을주는지실감하게되었다.판사는오만으로망하고검사는공명심으로망하고변호사는탐욕으로망한다는언설이현실로펼쳐지는모습을보았고,판사·검사·변호사의욕망과윤리가어떻게상호작용을하는지보고듣게되었다.쟁송속에서만보던법과정의를넘어공동체전체의광의적관점에서그위치와기능을생각하게되고,나아가서법,정의,국가,권리와의무,책임과이익이얽히고작용하는기미를조금이나마알게되었다.미셀푸코가말하는‘지배도구로서감옥’이나마사누스바움의‘정의를위한사랑’을관념을넘어현장의상황으로이해하게된것도변호사가되고나서다.-머리말에서
2019년OECD37개국중사법부신뢰도최하위국가
한해평균약50만건의고소·고발이빗발치는나라
사법불신,사법과잉의사회에서올바른사법의역할은무엇인가?
법원의판결에대해신뢰한다는응답은29%에그쳤고,법원에서선고하는범죄자에대한형벌이판사에따라차이가있다는응답이86%에이르는등사법부에대한불신이매우심각한수준이었다.-한국리서치정기조사(2020년12월23일)
1월10일대검찰청이공개한형사사건동향에따르면지난달접수된고소·고발은5만545건으로집계됐다.이는월기준으로2009년12월5만1천561건을기록한뒤11년만에가장많은것이며,5만건을넘어선것도그후로처음이다.-연합뉴스(2021년1월10일)
《이상한재판의나라에서》는우리사법의현주소를진단하며사법의올바른역할을촉구하는정인진변호사의첫책이다.판사경력24년,변호사경력17년의베테랑법조인인저자는오랜시간법정을드나들며숱한재판의현장을목도했다.그곳에서사람들은밥과벌이라는인간의가장원초적인욕구를놓고목숨이라도건듯싸웠지만,재판의결과는모두를만족시키지못했다.판사들은때로는오만하고때로는냉담했고이상한사법철학을앞세워사건을판단하거나맹목적으로판례를추종했다.도대체왜판결은시민의눈높이에서미치지못하고자꾸엇나갈까?판사의사법철학은왜이리들쭉날쭉할까?판결의편차를줄이고시민들이만족할만한사법서비스를위해사법개혁은어떻게이루어져야할까?
이책은총5장으로구성되어있다.1장은판사를그만두고변호사가되어겪은이상한재판과엉터리판사이야기를담고있다.2장은법관의사법철학을주제로삼아민주주의원칙이살아있는이상적인법정의모습을그린다.3장에서는낙태죄,표현의자유,양도소득세법,위안부손해배상사건같은논쟁적인법적이슈를다루고,4장에서는사법독립과사법개혁의본의에주목하며‘사법농단사건’을어떻게평가해야하는지고민한다.5장에서는최근논란이계속되고있는검찰개혁,법관탄핵사건을비롯해중요한법률과법률가를둘러싼문제를살펴본다.이책의가장큰특징은,저자가직접보고겪은수많은경험을통해우리사법의실상을있는그대로드러내면서도,그문제의원인을법의논리와사법체계의구조에서부터법률가의내면세계에이르기까지다각도로살펴보며실질적해결방안을모색한다는데있다.
“사법권은국민에게서나온다.”
정인진변호사는‘이상한재판’을멈추려면먼저법관의사법철학이바뀌어야한다고강조한다.올바른사법철학의핵심은바로‘민주주의’에대한굳은신념이다.특히사법권은국민이필요에의해위임한것일뿐판사개인의능력으로얻은훈장이아니라는당연한진리를내면화해야한다.법정의진짜주인이누구인지안다면판사가“여자가돼가지고……”하며막말하는일도,구형도최후진술도듣지않고판결선고기일을지정하는일도,설명없이재판기일을계속미루는일도,증인은한명만신청할수있다거나증인신문시간을10분으로제한하는일도절대로없을것이다.
법관이쥐고있는권력,즉사법권은사법시험이나변호사시험에서나온것도아니고사법연수원이나로스쿨의졸업성적에서나온것도아니다.법원의조직이나법령에서나온것도아니다.사법권은국민에게서나온다.이원칙이탁상의이론이아니라법관개개인의신념으로자리잡고더나아가서내면화되고체화되어야제대로된재판이이루어진다고나는믿는다._사법철학으로서민주주의(100쪽)
적법절차,구술심리주의,공판중심주의는결국당사자가억울하지않게배려하려는법적장치다.당사자가바라는바는결론바르게내주고,지든이기든간에내가하고싶은말좀제대로들어주고,법관이보기에필요하든필요하지않든간에내가내고싶은증거는모두받아서조사해달라는것이다.이것이법정의민주주의다._사법철학으로서민주주의(101~102쪽)
법정에서필요한‘상상력’
판사에게필요한것은법령이전부가아니다.판사는바른결론을내기위해법정에서‘상상력’을발휘해야한다.여기서상상력이란법률을제멋대로해석하고적용하는소설쓰기가아니라인식의지평을여는‘공감능력’이다.판사가자리를바꾸어법대아래에서사건을보는것,사건의진실은당사자가가장많이알고판사는가장적게안다는이치를깨닫는것,프로크루스테스의침대마냥살아움직이는현실을판례에끼워맞춰재단하지않는것.가장중요하게는법대아래의사람들을타자(他者)로취급하지않는것이다.
내가당사자라고가정하여그자리에서보기,이것이법관이지녀야할상상력의요령이다.세상사람들이살아가는그눈물겨운이야기를내이야기로환치하고,그러고나서비로소어떤행위를평가하라는것이다.……현실은동태(動態)다.때로답답하고갈데없다.그런데도이미완고해진질서는고개를외로꼬고서서모든불협화음을가로막는다.그벽을뛰어넘으려는의식작용,그것이상상력이다.법이라는제도와기록이라는서물(書物)을넘어살아들끓는현실을바로보려면상상력말고기댈곳이없다._법관은재판을할때재판을받는다(84·85쪽)
사건의진실을적어도당사자는안다.물론상호간에불완전한기억이나이해관계의대립등으로인해다소의오해는있겠지만,기본적사실은쌍방당사자가다알고있다.의사와비교해보면이렇다.환자는그저증세만알뿐병명을알아내는것은의사다.법률분쟁에서는법관이사실을가장적게안다.그다음으로변호사가조금더알고,당사자는전부안다.……이렇게단순한이치를법관이모르고,그러면서도다아는양재고있을때,그것을바라보아야하는답답함은이루말할수없다.이점에서법관이겸손할수는없는일일까._편견과예단의위험성(124쪽)
적극적사법의필요성
‘사법적극주의’란법문구에얽매이지않고정치적목표나사회정의실현등을염두에두고적극적인법형성또는법창조를중시하는사법철학이다.저자는사법이시민들의신뢰를얻으려면법관이적극성을띠어야할때도있다고말한다.예를들어사회적·경제적약자나소수자의권리를옹호하는문제에서는기존법령을형식적으로추종하는데서벗어나헌법의근본가치를되새기는적극성이필요하다고강조한다.
헌법의통치구조속에서법원은본래대의정치와다수결의원리로부터개인의자유와권리를보장하는기능을수행하도록되어있으므로,이런기능을수행할때는사법적극주의의입장에서는것이옳다.예를들어양심의자유와종교의자유보장,표현의자유보장,형사사법절차의개선,인격권보호,가족제도,남녀평등,사회적소수자와약자보호,각종차별과혐오의금지등문제에서특히그렇다._사법불신의원인(217~218쪽)
누구를위한법인가?
이책의3장에서는최근우리사회의뜨거운논쟁거리인낙태죄,차별금지법,표현의자유,명예훼손죄,조세법을비롯한주요법률문제를다룬다.〈낙태는전면적비범죄화가옳다〉에서는미국의낙태죄판결의역사를돌아보며2019년헌법불합치결정이후법공백상태에놓인낙태권논의를깊이들여다본다.〈‘숨쉴공간’과메마른세계관〉에서는2020년이재명경기도지사의공직선거법위반사건판결에등장한‘숨쉴공간’이라는표현의뜻을분석하며,표현의자유의의미와포용성있는사회가어떤모습일지고민한다.〈최소한의법적안정성〉에서는부동산양도소득세비과세규정의변화무쌍한변천과정을비판적으로짚으며,시민의안정된삶을위한‘법적안정성’의중요성을강조한다.
숨쉴공간이란말그대로숨쉬어살아남을공간,생존에필요한최소한의공간이다.모든말이완벽하게사실에맞아들어가야하고,조금이라도어긋나면불호령이내리고육모방망이가춤추는사회엔숨쉴공간이없다.……변호사로서판결을읽으며답답해지는순간은판관의판단이정확성의요청을넘어무릇인간사에서늘상있게마련인사소한오류를일체용납하지않으면서맥락을무시하고메마른세계관으로사건을재단하는것을목격할때다.성인지감수성이란것도성범죄사건의피해자에게이런공간을허락하는것을뜻한다.왜성폭행을당한바로그날신고하지않았느냐,왜그사건후에도가해자를전과같이대했느냐따위의비난으로가해사실을부정하는것이옳을까.인간은기계가아니다._‘숨쉴공간’과메마른세계관(170쪽)
차별금지법안에는교회에서동성애가죄라고말하는것을금지하거나처벌하는조항이없다.이법안은고용관계,교육,재화와용역의공급관계,행정서비스등네영역에서차별행위를규제하려는것이다.성소수자를정서적으로수용하지못함은개인적성향의문제이지만,그들에대한차별금지에반대함은법적·사회적영역의문제다.양자는서로다르다._차별금지법은통과되어야한다(165쪽)
사법농단사건과사법개혁
2017년처음세상을알려진‘사법농단사건’은많은이들에게충격을주었다.사법부수뇌부가상고법원의설치라는조직의이익을위해정치권력의골칫거리인재판을관리해주는짓을저질렀기때문이다.그들은상고법원을세우면대법원은사회적파장이크거나판례를변경할필요가있는중요한사건만맡게되니,대법원의고질적문제인과도한업무량을줄이고재판의질을높일수있으리라머리를썼다.나름의‘사법개혁’을위해재판권독립의가치를스스로훼손하는사법사의유례없는일을벌인셈이다.
저자는사법농단사건의이런‘아이러니’에주목하며,사법개혁이란본래누구를위한것인지되묻는다.개혁의수혜자가조직이아니라시민이되어야함을이해한다면,사법농단사건은결코사법적단죄로끝나서는안되며,사법부전체가통렬하게반성해야하는계기로삼아,열린마음으로오늘날시민들이법과법원에진정으로바라는것이무엇인지찾아야마땅할것이다.그런데도사법농단사건의파문이후기대감속에새로구성된현대법원은그저‘농단하지않기’에안주하는것은아닌가?저자는판사수를늘리는것도,사법행정권에외부인사를참여시켜민주적통제를이루는것도제대로추진할의사가없는현대법원을비판하며,외부의비판을사법권독립의침해로치부하고귀를닫는다면진정한사법개혁의길은요원하다고역설한다.
사법농단사건은넓게보아시대적과제라는적폐청산작업의일환으로다뤄지고있는데,이사건이사법권독립과관련해사법사에서가지는중대한의미는바로그시대적상황으로인해묻혀버릴가능성이있다.……진정으로염려스러운점은집권세력의정책목표중하나라는사법개혁이하나의정치적구호로만기능하거나,사법농단사건의재판으로환치되어그결과를기다리다가결국무죄판결속에서실종되어버리는것이다._진정한사법개혁을위하여(223쪽)
오늘날법관의지평을넓히려면우선유례없이강화된재교육이필요할것이다.그리하여검사,변호사,법무사,법무관,법학교수등법률사무와법학교육에종사하는모든사람으로부터사법운영에관하여사법부에바라는것이무엇인지진정열린마음으로들어야한다.나아가사법부의문턱을드나드는당사자나일반국민으로부터오늘날그들이법과법원에진정으로바라는것이무엇인지알아보아야한다.법관은독립하여야하나고립되어서는안된다._사법권독립,양날의칼(238~2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