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모험 : 원문을 죽여야 원문이 사는 역설의 번역론

번역의 모험 : 원문을 죽여야 원문이 사는 역설의 번역론

$16.80
Description
좋은 번역, 훌륭한 번역이란 무엇인가?
두 언어를 횡단하는 베테랑 번역가의 치열하고도 경이로운 모험
《번역의 모험》은 30여 년 동안 번역 현장에 몸담으며 한국어의 개성을 살리는 독창적인 번역론을 모색해 온 저자의 숙련과 통찰이 담긴 책이다. ‘번역 바이블’이라 불리며, 번역가와 편집자뿐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필독서로 꼽는 책 《번역의 탄생》 이후 저자가 12년 만에 출간하는 후속작이다. 전작이 원문을 영어와 일본어에 물들지 않은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옮기는 법을 다루었다면 《번역의 모험》은 ‘문턱이 낮은 한국어’로 옮기는 법을 다룬다.
저자가 말하는 문턱이 낮은 글이란 독자가 편히 ‘정주행’하도록 돕는 글이다. 즉 문장에 담긴 뜻이 금방 와닿지 않는 모호한 대목에서 독자가 읽기를 멈추거나 다시 뜻을 살피려고 ‘역주행’하지 않게끔 하는 글이다. 이 책은 명료하고 간결한 우리말 문장을 짓는 데 요긴한 원칙을 ‘쉼표’ ‘모으기’ ‘찌르기’ ‘흘려보내기’ ‘맞추기’ ‘낮추기’ ‘살리기’라는 주제로 나누어 일목요연하게 짚어준다. 남발되는 쉼표 탓에 문장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문장부호를 적절히 사용하는 법, 가까이 있어야 할 말을 모으고 멀리 두어야 할 말을 떼어놓아서 문장의 모호함을 없애는 법, ‘주연’을 압도하는 문장 속 ‘조연’을 슬쩍 흘려보내 주제어를 명확히 드러내는 법을 알려준다.

저자

이희재

저자:이희재
서울대학교심리학과를졸업하고,성균관대학교독문학과대학원을수료했다.영국런던대학SOAS(아시아아프리카대학)에서영한번역을가르쳤다.지은책으로《번역의탄생》《번역전쟁》《국가부도경제학》이있다.옮긴책으로《마음의진보》《혁명극장》《히틀러》《헬렌을위한경제학》《미완의시대》《몰입의즐거움》《소유의종말》《문명의충돌》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장쉼표
“군살없는글이좋은글이다”

2장모으기
“부사가제자리에놓여야문장이안정된다”

3장찌르기
“주제조사,명료한문장의비밀”

4장흘려보내기
“원문그대로강박이문장을망친다”

5장맞추기
“운율을살린문장이독자를끌어들인다”

6장낮추기
“글의힘은허세와권위에서나오지않는다”

7장살리기
“원문에서자유로워야원문이산다”

8장사이시옷
“참을수없는사이시옷의가벼움”

9장띄어쓰기
“원칙없는띄어쓰기가글쓰기의문턱을높인다”

10장번역가와문장가
“훌륭한번역은곧훌륭한문장이다”

11장사전편찬자되기
“번역가는언어의징검다리를놓는다”

주석

출판사 서평

쉼표하나,띄어쓰기하나에이렇게깊은뜻이있다고?
고대그리스부터근대조선까지흥미로운역사와맞물려펼쳐지는번역의여정

서양에서쉼표는기독교시대가열리면서등장했다.신의말을정확히옮겨야한다고믿었던기독교인은오해의여지없이뜻을정확히담아내려고문장부호에기댔고,그덕분에글의문턱이낮아져글을눈으로빠르게읽어나갈수있게되었다.한국어의띄어쓰기는모든단어를붙여써서뜻이모호해진글의문턱을낮추려했던조선후기서양선교사들의주도로받아들여졌다.이처럼글의문턱을낮추기위해탄생한‘쉼표’와‘띄어쓰기’가오늘날에는왜되레글의문턱을높이는주범이되었을까?
저자는쉼표까지그대로살리는번역의영향을받아한국어문장을쓸때에도기계적으로쉼표를찍는사례가많아진현실을지적하며과도한쉼표와띄어쓰기사용이글의문턱을높일수있다고말한다.현행맞춤법에따르면‘싶어하다’는띄어써야하지만‘싫어하다’는붙여써야한다.‘글솜씨’와‘말솜씨’는붙여써야하지만‘요리솜씨’와‘노래솜씨’는띄어써야한다.이렇듯예외에예외가겹치면서띄어쓰기자체가족쇄가되어글쓰기를어렵게만들고있다는것이다.저자는입말을그대로옮긴글로마음을사로잡았던고대그리스인들처럼말하듯이글을써야한다고강조한다.태초에있었던것은말이지글이아니다.말하듯쓰면문장은저절로깨끗해진다.

원문에얽매이지않아야비로소원문이살아나는역설의번역론

번역은말과말을잇는일이다.다시말해원문과번역어를연결하는일이다.이때원문에충실할것이냐번역어에충실할것이냐는번역가들이가장많이하는고민이다.저자는원문을엄격하게따라야한다는강박때문에번역자가사소한대목까지옮겨놓으면독자가고통스러워한다고강조한다.이책은원문에무작정끌려가지않으면서원문을생생하게살리기위해필요한번역원칙이무엇인지자세히다룬다.주제가무엇인지찔러주는역할을하는주제조사를아껴써야하는이유,시뿐만아니라산문에서도운율을더해문장의박자감을살리는법,한국어에없는완료시제를우리말부사어로표현하는법을알려준다.

“이말과저말을잇는징검다리를놓겠다는절박감이있을때
좋은번역가가될수있다”

2018년한국고용정보원이발간한보고서<4차산업혁명시대의신(新)직업>에서는인공지능이발달하여위험해진대표적인직업중하나로통·번역가를꼽고있다.과학논문이나사건보도기사처럼문장구성이정형화돼해석의폭이좁은글은기계번역으로대체하기가쉽고,기계가사람보다더뛰어난성과를낼수있다는것이그이유였다.30여년간번역일선에서분투하며현실에서쓰이는우리말에서출발한창조적인번역관을정립해온저자는장래의번역가들에게번역의앞날을길게바라볼것을조언한다.번역가는단순히이말을저말로옮기는좁은의미의번역가로만족해서는안되며,현실을말로제대로담아내는넓은의미의번역가를지향해야한다는것이다.10년전에한번역과1년전에한번역이달라지는것.조금씩이라도나은문장을만들기위해정진하는것.그것이번역이위기에처한시대에저자가이책을통해전하고자하는번역가의덕목이다.


“문턱이낮은글이좋은글이고
문턱이낮은사회가좋은사회다.”

번역하다떠오른풀이와표현을적어두기시작한것은기억이안날때처음부터다시궁리하는데들어가는시간의낭비를피하고싶어서였다.시간은걸렸지만그런자료가쌓여2009년에《번역의탄생》을낼수있었다.《번역의탄생》이자연스러운한국어를추구했다면《번역의모험》은문턱이낮은한국어를추구한다.문턱이낮은글덕분에독자는자원을그만큼덜수있지만역자는자원을더들여야문턱이낮은글을지어낼수있다.궁리를더해야하니까말이다.하지만자동번역의시대에번역가가자기직업의존엄을조금이라도더오래지키는길은번역에더공을들이는길말고는없다.
문턱이낮은글이좋은글이고문턱이낮은사회가좋은사회다.작고한기업인김우중회장은세계는넓고할일은많다며모험정신을강조했지만세계는넓고읽어야할책,옮겨야할책은많다는생각이자꾸만든다.문턱이낮은글,문턱이낮은사회를꿈꾸는번역자의여정에《번역의모험》이작은동반자가될수있기를바란다._머리말에서




주요내용소개

원문을죽여야원문이사는역설의번역론

이책의특징은현실한국어에서출발한번역,문턱을낮추는한국어를지향한다는점이다.흔히말하는딱딱한번역체문장이아닌한국독자들이편히읽을수있는단정하고간결한번역문짓는법을열한개의주제를통해명쾌하게제시한다.

부사가제자리에놓여야문장이안정된다_‘모으기’

‘모으기’에서는부사와동사,주어와동사등제짝처럼붙어다녀야할것들을제대로모아주어야원문의내용을해치지않는정확하고명료한번역문이나올수있음을알려준다.

“로드리고두테르테필리핀대통령은6일문재인대통령과의정상회담차방한해자국교민행사에서여성에게키스한것에대한비판에‘질투하는것’이라고반격했다.”
위문장에서6일은필리핀대통령이한국대통령과정상회담을하기로한날인가요아니면방한한날인가요.필리핀교민행사가있던날인가요.……만일6일이정상회담날짜라면‘6일정상회담차’로,방한날짜라면‘6일방한해’로,교민행사날짜라면‘6일자국교민행사에서’로날짜와사건을붙여주어야합니다.부사가있어야할자리는부사가도우려는동사의바로옆자리입니다.부사가제자리에놓여야문장이안정됩니다.제대로놓인부사는글의집중도를높입니다.(45~47쪽)

주제조사,명료한문장의비밀_‘찌르기’

‘찌르기’에서는문장안에서‘주제가이것이다’하고급소를정확히찔러주는역할을하는주제조사‘-은’‘-는’을적재적소에넣어문장의모호함을없애는법을제시한다.

주제조사는말그대로문장안에서주제가이것이다하고주제를찌르는역할을합니다.그래서주제조사가나오면우리는저절로귀를쫑긋세우고눈을크게뜹니다.그런데문장안에쉼표가너무많으면흐름이끊기듯문장안에서주제조사가여기저기에서찔러대면오히려초점이흐려질수있습니다.주제조사가부각시키려는것은결국주제어입니다.문맥상주제어와의관계를분명히알수있을때는진짜주제어만남기고나머지는빼도좋습니다.(72,73쪽)

원문그대로강박이문장을망친다_‘흘려보내기’

‘흘려보내기’에서는원문을있는그대로살리기보다살릴것은살리고흘려보낼것은흘려보내한국독자들이편히정주행할수있도록잘읽히는번역문짓는법을알려준다.

미국에서1년동안코로나감염병으로죽은사람이20만명이넘고이것은충주시인구와맞먹는다는기사를한국언론사가보도했다면충주시라는비교대상은20만이라는숫자를한국독자가실감하는데도움이됩니다.이기사를미국언론에서보도하면서원문의충주시를영어번역문에서도그대로살려주면미국독자는충주시라는단어앞에서멈칫할겁니다.비교대상자체가낯설고생소하다면글에서제시하는비교대상은글의흐름을오히려끊어놓습니다.원문에담긴내용은최대한살려야한다는강박관념에서번역자가사소한대목까지있는그대로옮겨놓으면독자가고통스러워집니다.(106,107쪽)
쉼표가없어도머리에잘들어오는글이좋은글이다
_‘묵독’문화의시작과‘쉼표’의탄생

요즘한국어책을읽다보면쉼표가부쩍많이들어간문장을쉽게발견하곤한다.‘하지만,따라서,더욱이,’다음에는무조건쉼표를찍는경우가적지않다.영어에서‘however,therefore,moreover,’다음에쉼표를찍기때문이다.긴문장이아닌데도별생각없이글안에쉼표를찍는사람도많다.역시영어의영향탓으로보인다.저자는영어에서쉼표를찍는데에는그럴만한사정이있지만한국어에서불필요한쉼표는오히려글을지저분하게만든다고말한다.한국어는‘-면’‘-지만’‘-고’‘-며’처럼어미가발달해서쉼표에기대지않고도글을얼마든지길게이어갈수있다는것이다.

Althoughtheshootinghasstoppedfornowthedamageisenormous.
이영문은모호합니다.‘총격이그쳤지만당장은피해가막심하다’고볼수도있고‘당장은총격이그쳤지만피해가막심하다’고볼수도있습니다.앞의뜻이되려면fornow앞에쉼표를찍어야하고뒤의뜻이되려면fornow뒤에쉼표를찍어야합니다.
영어에서는although같은접속사가거느리는종속절이앞에오면종속절이어디에서끝나고주절이어디에서시작되는지알기어려울때가있습니다.그래서종속절과주절이갈리는곳에쉼표를찍어줍니다.하지만한국어에서는‘-지만’같은영어접속사although에해당하는어미가문장중간에서종속절을잘매듭지어주므로쉼표에크게안기대어도됩니다.(13~15쪽)

‘쉼표’는누가처음만들었고어떤이유로만들어졌을까?쉼표는글을배우는사람들에게끊어읽는곳을알리려고기원전3세기알렉산드리아도서관사서였던문법학자아리스토파네스가개발했다.하지만고대그리스-로마시대의많은저술가들은쉼표같은문장부호를하찮게생각했다.고대그리스-로마시대의글은입으로한말을그대로적어놓은입글이었고,묵독보다낭독을위한글이었다.6세기경기독교시대가열리면서사정이달라졌다.기독교인은신의말을정확히담아내야한다고믿었으므로문장부호를적극차용했고,문장부호덕분에글의문턱이낮아지다보니글은낭독하는입글이아니라묵독하는눈글로바뀌어갔다.

서양에서입으로읽는낭독문화가눈으로읽는묵독문화로바뀐것은15세기중반에일어난인쇄혁명으로책이대량으로보급되기시작하면서부터라고들말합니다.하지만서양문장부호의역사를연구한영국의서지학자맬컴파크스에따르면독서풍토를낭독에서묵독으로바꾼주역은문장부호입니다.묵독은인쇄기가없어서책이귀했던중세의수도원에서도이미지배적독서문화였습니다.문장부호는독서의진입장벽을낮추어묵독의길을터주었습니다.하지만문장부호는글을지저분하게쓰는문화도낳았습니다.쉼표는아껴야합니다.그래야꼭필요한순간에쉼표가빛을발합니다.쉼표는쉼표에둔감해지지않은사람에게만선명한이미지를남깁니다.(41,42쪽)

참을수없는‘사이시옷’의가벼움
_‘어원주의’영어,‘표음주의’에스파냐어와한국어의차이

오늘날영어맞춤법의토대가말의뿌리를드러내려는‘어원주의’로자리잡은데에는어원주의맞춤법을유지해야한다고주장했던16세기영국의교육자리처드멀커스터의영향이컸다.단어를소리나는대로적어야한다는‘표음주의’를따르면발음변화에맞추어맞춤법을수시로바꿔야하는데,현실에서북쪽방언과남쪽방언을쓰는사람이소리나는대로적는영어는매우달랐으므로소통의문턱이높아질수있다는것이그의견해였다.현실에서쓰이는글을사람들이이해하는데어려움을못느낀다면굳이라틴어어원을살리려한영어의전통주의곧어원주의맞춤법을뜯어고칠이유가없다고보았다.
영어와달리에스파냐어는‘표음주의’를토대로삼아맞춤법의토대를세웠다.13세기에갈리시아,레온,카스티야세왕국을통합한에스파냐국왕알폰소10세는카스티야를중심으로하여이슬람세력을에스파냐영토에서몰아내는국토회복운동을펼쳤다.그과정에서되찾은땅에백성들을잘정착시키기위해문턱이높은글말라틴어가아니라문턱이낮은입말이었던토착어카스티야어를행정어로삼아각종법률을반포했다.
이렇듯영어와에스파냐어의맞춤법은역사적으로서로다른길을걸었지만공통점이있었다.바로문턱이낮은글을추구했다는점이다.

영어맞춤법이어원주의원칙을기둥으로삼은것은이미어원중심으로굳어진기존의맞춤법을고수하는것이가독성을높이고글의문턱을낮추는것이라고믿어서였습니다.에스파냐어맞춤법이표음주의원칙을기둥으로삼은것은되찾은땅에서뿌리내리고살백성과소통하려면백성의입말에가까운표기를표준말로삼아글의문턱을낮추어야한다고믿어서였습니다.(237,238쪽)

한국어의사정은어떨까?대체로된소리가나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