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양장)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양장)

$18.60
Description
“슬픔을 아는 아름다움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사라지는 것들이 남긴 흔적을 더듬는 목소리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비평 에세이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산문집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 아침달에서 출간됐다. 목정원이 2013년부터 프랑스에서 6년, 한국에서 2년 동안 마주했던 예술과 사람, 여러 사라지는 것들에 관하여 쓴 책이다. 공연예술에 관해 쓰고 말한다는 건 일면 공허를 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시간예술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관객의 눈앞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그리하여 관객에게 남는 것은 점차 희미해질 기억뿐이다. 그럼에도 목정원은 사라지는 것에 관해 말하고자 하며, 오히려 자신에게조차 작품이 충분히 희미해졌을 때에 쓰고자 한다. 한 시절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은 흔적들과,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을 건네주기 위하여. 이 책은 그러한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에 보내는 비평이자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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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목정원

서울대미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하고,프랑스렌느2대학에서공연예술학박사학위를받았다.여러대학에서공연예술이론및예술학일반을가르치며,변호하고싶은아름다움을만났을때비평을쓴다.산문집『모국어는차라리침묵』이있다.

목차

뒤늦게쓰인비평05
공간에서11
봄의제전21
솔렌35
관객학교45
김동현선생님께64
비극의기원69
꽁띠뉴에83
테러와극장95
연극을끝까지보기위하여116
장끌로드아저씨127
춤을나눠드립니다153
모국어는차라리침묵175

출판사 서평

슬픔을기억하려는힘

우리는실체가있는것만을사랑할까.혹여본적없는얼굴을더욱사랑할수도있는걸까.그럼에도무언가에마음을기대야한다면,계속사랑하기위해어떤흔적이더필요할까.
―28쪽.

시간예술의특징은사라짐에있다.회화와같은공간예술이한번완성되면파괴되지않는한공간속에지속적으로존재하는것과달리,연극과같은시간예술은얼마간시공간속에발생했다가사라진다.나타났다가사라지는것이라면시간예술뿐이아니다.인간의생또한한편의공연처럼세상에머물렀다가시간속으로흘러간다.그것들은모두인간의기억속에서점점희미해지지만,그와중에어떤흔적을남기기도한다.물론흔적이남는것과존재가남는것은다른일이기에,이모두에는근본적으로슬픔이있다.
목정원은예술과삶에서마주치게되는그슬픔의흔적에관해말한다.〈봄의제전〉을통해,백년뒤의관객들은안무가니진스키의삶과한번도본적없는그의춤을떠올린다.춤이기록되지못한채원전이소실된작품을복원하려하거나다시만드는일은무엇일까.이는본적없는이의얼굴을사랑하는일이며,그가남긴흔적을그러모아그얼굴을다시그려보는일이다.
의상제작자솔렌과만난때를돌아보며저자는무대의상의특수성에관해이야기한다.무대의상은하나의공연만을위해만들어진다.그옷들은무대위에서잠시간쓰였다가이내무용해져창고에보관되거나애호가들의수집품으로남는다.따라서그옷을만드는일은발생하면서소멸하는고유함을위한일이며,이때무대의상은그자체로생의은유가된다.이는목정원에게안무가알랭플라텔의〈타우버바흐(Tauberbach)〉를떠올리게하는데,이작품에는제목소리를듣지못하는청각장애인들이부르는바흐와함께무대에는수백벌의옷이무덤처럼쌓여있기때문이다.무용수들은음악을비껴가는노래에맞추어춤을추고,옷무덤에파묻혀사라지고,무덤속에서옷을입고나온다.이어알랭플라텔의다른작품인〈아웃오브콘텍스트?피나바우쉬를위하여〉를함께회상하며,목정원은누군가는볼수없는춤을보고,누군가는들을수없는노래를듣는일에관해생각한다.누군가에게는금지되어있는,사라진것과다름없는경험에따르는슬픔에대해.

어엿한동시대인이되기에아직우리는모르는것이너무많다는생각이든다.우리는모르는것이너무많고그것은전부타인의아픔에관한일이다.그리하여우리가모르는동안,어떤이들은멀리떠나버리기도했다.남겨진편지가해독되지않을곳으로.잊히지않는것들을잊은곳으로.
―47쪽.

목정원은배삼식작가의〈먼데서오는여자〉로부터동시대인으로서목도했기에우리가아는,우리몸의역사가된죽음들을읽어내고,김동현연출가를추모하는공연을본뒤고인에게편지를쓴다.현실과작품속에서죽어간여성들을,왕명을어기고서라도오빠의죽음을애도하는안티고네에주목한다.2015년프랑스에서발생한테러이후죽음이지닌슬픔과두려움이극장을무겁게감싸고있을때,혼란스러운방식으로세계의고통을직시하고자하는앙헬리카리델과의도치않게참상을재현하는로메오카스텔루치의연극을통해여러죽은자들앞에살아있고현존한다는것이어떠한의미를지니는지를성찰한다.
이렇듯여러상실에관한기억을오래묻어뒀다가이윽고말로써남기는일은저자에게있어슬픔을해소하는방식인동시에소멸뒤에도남는것들을통한애도처럼보인다.그러한애도는어쩌면〈봄의제전〉에서처럼떠난이가남긴흔적을그러모아얼굴을다시그려보는일과유사할수도있고,오르페우스가마지막으로보고야마는에우리디케의얼굴같은것일수도있다.그렇게바라보고픈누군가의얼굴을떠올리는일이기억하는일로이어지는것이라면,그과업에는필연적으로사랑이수반되는셈이다.
사랑은소멸을넘어서무언가를기억하게하고,또한그것이개인의기억을넘어다른이들의몸에도새겨질수있도록만드는힘이다.관객을사랑한예술가장빌라르에관한일화,그리고오페라를사랑하는장끌로드아저씨와의우정이야기,그리고저자자신이사랑했던외할아버지에게보내는노랫말등을통해사랑은다른이에게많은것을전하는일임을,그러한사랑의흔적들을유산으로삼아사람들은계속해서살아갈수있음을목정원은또한말해주고있다.

나는당신에게노래를나누어준다.당신은또다른곳으로가노래의일부를나눠줄것이다.목도한슬픔을당신의몸에기입하며.당신의호흡대로춤추며.다시사랑하며.그렇게우리는비로소우리자신이되었다가,마침내우리가아닌것들로흩어진다.죽음이후에는정말로영혼만남게될까.그때도서로를사랑할수있을까.서로를비춰볼몸이없어도.모든계절을춤으로시작할수있을까.
―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