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음식문화사 (무엇이 독일을 독일답게 만드는가)

독일의 음식문화사 (무엇이 독일을 독일답게 만드는가)

$32.00
Description
소시지와 감자, 맥주 말고 뭐가 더 있을까
알고 보면 복잡하고 다양한 독일 음식문화의 역사를 추적하다
독일 음식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부분은 소시지와 맥주 이상을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독일의 8,200만 인구가 매일 옥토버페스트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뜻밖에 음식에서만큼은 뚜렷한 이미지가 없는 나라가 독일이다. 과연 독일인들은 어떤 음식을 먹는가? 음식문화와 관련해서 독일적이란 어떤 의미인가?
유럽을 하나로 연결하는 중심부에 자리 잡은 독일은 오늘날 북쪽으로 덴마크와 네덜란드, 서쪽으로는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남쪽으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동쪽으로 체코와 폴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지리적 요인으로 인해 독일의 음식과 요리법은 북부와 남부가 서로 상당히 이질적이었던데다, 인접한 다양한 나라에서 지속적인 문화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조건에서 독일 요리는 특정한 전통을 고수하기보다는 전방위적으로 새로운 층을 더해가며 유연한 식문화를 마련했다. 획일적인 국민 요리나 변하지 않는 전통 요리는 없지만, 다양성과 지역성이야말로 독일 음식의 특징이다.
저자

우어줄라하인첼만

UrsulaHeinzelmann
문화와역사학의시선으로음식을해석하고연구하는음식전문인문학자이자저널리스트.《독일의음식문화사BeyondBratwurst:AHistoryofFoodinGermany》《독일음식문화FoodCultureinGermany》《뮤슈보옹:베트남요리MonsieurVuong:DasKochbuch》《요리의경험:레서피없는주방을위한선언ErlebnisKochen:ManifestfüeineKüheohneRezepte》등다수의음식문화사관련책을썼다.독일과미국을오가며《게스트로노미카Gastronomica》《슬로우푸드SlowFood》등여러매체에칼럼을기고하고있다.최근에는독일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전문소믈리에및셰프과정을공부하며,음식에관한지적관심을폭넓게확장해가고있다.

목차

서문독일음식:복잡성의진화
1장죽에서사워도우빵까지: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
2장생고기와농축우유:로마시대기원전1~5세기
3장기독교,사회적계층화,의약품:중세초기5~11세기
4장호사스러운연회와끔찍한기근:중세중기11~14세기
5장버터빵과사프란:중세말기14~15세기
6장독일음식에대한저술:근대의시작1500~1648년
7장커피,설탕,감자:1648~1815년
8장소금없는감자와무료급식소:빈곤의시대1815~1871년
9장고형육수와베이킹파우더:식품의산업화1871~1914년
10장희망과굶주림,통밀빵과스웨덴순무:1914~1949년
11장캐서롤과하와이토스트:동독과서독,전후의탐식1949~1990년
12장스파게티와룰라드:세계화속의지역성,통일독일1990년이후
주/참고문헌/도판출처

출판사 서평

독일출신음식전문저널리스트이자소믈리에이며역사학자인저자는《독일의음식문화사-무엇이독일을독일답게만드는가》에서고대부터현대에이르기까지역사적문헌과문학작품,요리책과의학서적,법령과공문서를망라하는방대한자료를섭렵해독일식문화의전통을추적한다.신석기시대부터1990년독일통일이후현재에이르기까지중요한전환점을담은12개장에는식품을얻기위한수렵,채집,농업,축산,무역과전쟁등의과정,조리기구와요리법의발달,식문화에영향을준사회적ㆍ정치적ㆍ경제적ㆍ종교적ㆍ기술적요인에대한광범위한설명이담겨있다.150여컷의도판이수록되어이해를도와주며,본문속‘당대의식탁’에는시대의단면을보여주는가장유명한먹을거리나식품점,레스토랑이소개되어있다.독일에서누가무엇을,어떻게,어디서,언제먹었는지역사적과정을추적해지금독일에사는사람들이현재의음식을먹게된이유를찾아내는이작업은곧독일을독일인답게만드는것이무엇인가를밝히는일이다.
이번신간《독일의음식문화사》는《아침식사의문화사》,《이탈리아음식의문화사》,《그때,맥주가있었다》에이은‘니케북스음식문화사시리즈’네번째책이다.니케북스음식문화시리즈는이후에도프랑스를비롯해각국의음식문화역사를꾸준히소개해나갈예정이다.
식문화를이해한다는것은한나라의지정학적특성과생활양식,민족적특성까지아우르는그나라문화의정수를이해하는일이다.지배계층과승자의기록을주로다루는일반적인역사서에서얻을수없는다채롭고풍부한정보와지식을얻을수있다는점이음식문화사를읽는가장큰재미이며의미라할수있다.독자들은이책을통해독일인의식탁을일구고발전시켜온과거와현재를면밀히살펴볼수있을것이다.

조각보처럼이어진이질적인지역들,
음식에남은다양성과지역성

지리·역사학적시각에서볼때독일은슬라브족과라틴족사이,한대기후와아열대기후사이,바다와산맥사이에있는중부유럽에자리잡은나라다.역사의과정에서독일은사방에서지속적인정치적·문화적·사회경제적영향을받아왔다.오늘날의독일지역은게르마니아,로마제국,신성로마제국으로변화를거듭하다가수많은공국이난립한이후에야독일제국이성립되었으며,물론지역의명칭이바뀔때마다국경선도바뀌었다.저자는그러한영향에대한개방성과수용성이바로오늘날독일인과독일음식의특성을규정한다고주장한다.
신성로마제국시대까지는라틴문화의영향권으로서로마음식의영향을많이받았으며,중세부터는국경을맞댄프랑스로부터도식재료부터구체적인요리법과용어까지받아들였다.보관과수송기술이발달하자네덜란드,벨기에,덴마크와의어획물거래가음식문화의한축이되었고,메밀을선호한슬라브족문화도독일의식문화에뚜렷한흔적을남겼다.아시아에서베네치아를거쳐향신료를들여왔을뿐아니라직접재배하기도했다.포도재배가활발한라인강유역은와인산지로발달했다.문제의맥주와소시지도시대와지역에따라제조법이다양하게분화했다.지방분권적사회구조가독일의약점으로지적되곤하지만,실제로는오히려수용성이나다양성을증대시킨셈이다.

음식의권력
금식과호사,빈곤과풍요사이에서

게르만족의터전에로마문화가전래되어농경과목축이발전하고식문화가개선된고대를지나5세기초반이되자,중부유럽에서로마제국의영향력은거의소멸했다.이후기독교가게르만족국가들의공식적인종교가됨으로써식문화에지대한영향력을미치는요소로부상했다.기독교는절약,검소,정직과같은일반적인미덕에기초해소박한식사를강조했고,식사와미덕의연결고리로금식이등장했다.그러나기상이변,전염병과전쟁등으로늘식량이부족하던시대에무엇을먹는가는곧사회적신분을드러내는일이었다.중세시골하층민은죽위주의식사를한데비해,도시의식사는그보다다양하고정교했으며,사냥할권리,즉사냥한짐승의고기를먹을권리는왕과최고위층에게만주어졌다.다만식량부족은정치적안정을위태롭게하고왕권을약화시킨다는사실을잘알았기때문에프랑크왕국의왕이자교황의공인을받은신성로마제국황제카를대제는칙령으로여분의식량생산에힘을쏟았다.봉건적장원제도는광대한영토의질서를유지하는데딱들어맞았다.
12세기중반까지만해도엄청난양의음식을제공해많은사람들을즐겁게하는행위는높은사회적지위를나타냈다.그러나하층계급도허기를충족시킬수있게된후귀족들은지나치게푸짐한식사를멀리하고,사회적구분을위해절제되고의례적인식사예절을고안했다.이런양상은다수의문학작품에서포착된다.이시기부터식이지침내지는의학처방전이라고할만한식품의성분을설명한기록이남아있고,14~15세기무렵에는요리사들이레서피모음집이라고할만한저술을남겨당시의식재료와조리법을구체적으로상상해볼수있게해준다.
1315~1320년대기근과대역병이인구를대폭감소시킨후15세기가되자,역설적이게도살아남은사람들의상황은크게개선되었다.결과적으로음식도양적질적측면에서향상되었다.당시지리적·사회적격차는강력한경제적주도권을쥐고있던교역을통해강화되었다.남부와의교역을장악한귀족집안들은이탈리아귀족들의세련된음식문화를모방했다.이와대조적으로북부의교역을담당한한자동맹은훨씬평등주의적인조직체였기에이지역에서는사회적신분이높아진다해도식사가현저히세련되게바뀌지는않았다.그러나주변강대국들,특히잉글랜드와네덜란드가부상하면서한자동맹의시대는종말을맞게된다.영국이나프랑스와는대조적으로독일에는아직하나의수도가없었다.1500년이후사회적·재정적압박으로인해신성로마제국황제의세력이쇠퇴하기시작하면서지역성은더욱확대되었고,음식역시마찬가지였다.

누구나음식을즐길수있도록,
식품의대중화와산업화

마르틴루터가이끈종교개혁과그뒤를이은가톨릭의반종교개혁은독일의문화적다양성을강화했다.루터의성서번역으로독일어가보편화되고요하네스구텐베르크의인쇄술덕분에도서구입이가능해지면서,가장인기있는읽을거리중하나로요리책이떠올랐다.음식의유행이라는측면에서이웃나라들보다뒤처져있었음에도독일인들은요리지침서를쓰는작업에는열성적이었다.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독립한이후독일인은대부분의유럽인과마찬가지로프랑스를문화적중심축으로선택했다.예의범절,패션과함께식습관도프랑스식겉치레를따랐고,일상대화에서도프랑스어구절이혼용되었다.그러다1618년부터1648년까지정치적·종교적이해충돌에따른30년전쟁이이어졌고,그여파로독일의식사문화에서는회복탄력성과실용주의가더욱굳건하게자리잡았다.현재까지독일인의식생활에서중요한위상을차지하는감자,설탕,커피도17~18세기에들어와모든계층에확산되었다.야외맥줏집에서맥주를마시는문화도이때자리잡았다.
한편근대에인구가급증하자통치자들은생산증대의필요성을절감하고도시지역에작은공장들을짓고생산을집중시키기시작했다.뉘른베르크나쾰른등전통적인교역중심지들이퇴보하거나정체되었던반면,베를린,슈투트가르트,뮌헨같은도시들은국가보조금과보호무역주의덕분에번성했다.해운과철도의발달에힘입은빠르고값싼수송수단개발로원자재와노동력을필요로하는새로운생산거점인도시로신속한이동이가능해졌다.새로운공장일자리가만들어지고임금이상승했다.1840년독일의경제는영국에비해50년이상뒤처져있었지만,19세기의마지막무렵독일은산업화를선도하는나라들중하나였다.
19세기에진입하면서시작된근대적인식품산업과음식에대한과학적실험은산업혁명의기반이되었다.고형육수로만든수프,마가린바른흰빵,베이킹파우더를넣은케이크,디저트용통조림과일,기차에서스낵으로먹는포장비스킷등은현대의기술,도시화와빠른수송수단이만들어낸새로운시대의산물이었으며,독일인들은예전의식습관을털어내고근대화를받아들였다.프랑스-프로이센전쟁후이른바건국시대라고하는독일의경제적호황과빌헬름2세의과시적생활방식의영향으로다양한유형의새로운호텔들과식당들이생겨났다.독일민족주의가팽배해가던빌헬름2세의통치시기에언어적순수성은그자체로목적이되었고,외래어에대한독일어화가진행되어상류층의식문화에서흔히쓰이던프랑스어와영어를독일어로대체하려는움직임이일기도했다.그러나사회가풍요로워지고누구나흰빵과고기를먹을수있으리라는전망이대두하는한편에서는통밀빵과채소를먹던과거의건강한생활방식으로돌아가자는생활개혁운동‘레벤스레포름Lebensreform’이등장해그에맞서기도했다.

나치즘과전쟁,동서독의분단이후
현대독일인은무엇을먹는가?

1914년전쟁이발발하면서독일인들은배급체제와식품부족의기나긴고통속으로끌려들어갔다.봉쇄조치로식품수입이불가능해지자,전쟁의향방은국민들이굶주림과고통을얼마동안감내할수있는가에달려있었다.당시의임시방편적인배급체계와끔찍한굶주림에대해서는많은기록이남아있다.1919년6월말평화협정에공식적으로서명하면서봉쇄가풀린이후,이른바‘황금의1920년대’동안최소한일부도시중산층은보다편안한생활방식을채택하고근대성을기꺼이포용했다.기저에깔려있던현실도피욕구덕분에오락산업이호황을누렸다.
1차대전당시의식량난으로입은정신적외상은추후나치의전략을형성하는데바탕이되었다.일부역사학자들은그때의경험이당시학생이었던한세대전체가광적인나치신봉자들로변하게했다고주장했다.생활권즉‘레벤스라움Lebensraum’을확보하기위해독일의경제를동쪽으로확장시켜야한다는나치의이론에확신을더해주었던것이다.나치정권은1차대전에서얻은교훈을바탕으로식량의수입에서벗어나자급자족을달성하기위해전방위적캠페인을전개했다.농업부문은일찍이1933년부터제국식량국의직접적인통제를받았다.나치정권은생활개혁운동의아이디어중많은것들을취해활용했다.특히아리아인지배민족은국내에서생산된자연적이고완전한음식을섭취함으로써번성하고번창한다며통밀빵을권장했고,한냄비에끓여나누어먹는음식‘아인토프Eintopf’를통해보다심리적인차원에서전국민을전쟁에동원하려했다.실제로전시에나치는무엇을먹고어떻게먹어야하며심지어무엇을욕망할지까지세세하게규정했다.
전후독일은둘로쪼개져서로대립하는정치체제하에서40년동안의실험을거치게된다.서독주민들은자신들의요리에자유롭게서구세계를접목해엄청난입맛의다원화를겪은반면,동독주민들은대개선택의폭이훨씬더좁았으며경제적문제로인해식문화는정체상태에빠져있었다.모차렐라치즈와피자,되너케밥,햄버거에길들여졌던서독인들은베를린장벽이무너진후동독인들이여전히캐서롤,겨자소스를곁들인삶은달걀,감자경단에애정을가진것을인식하게된다.최근독일음식은세계화와산업화의영향속에서그에대한반작용으로지역주의가부각되며전통요리가재발견되고있으며,새로운이민자들이가져온요리전통이새로운바람을불어넣고있다.
요컨대오늘날의독일음식은역사속수많은영향이반영된결과물인셈이다.다양한요리에대한개방성과수용성,복잡한요소간의균형과평정,이것이바로독일음식의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