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한발도나아가지않는자연과함께하는'새로운삶을열다
밭에서
밭에서
토마토가온다
잘익은
토마토냄새가짙게나는토마토가온다
밭에서
가지가온다
검자줏빛으로익은
먹기에아까울만큼예쁜가지가온다
밭에서
강낭콩이온다
엷은초록빛
현자의마음과같은강낭콩이온다
밭에서생명이온다
땅속깊은곳에서부터
밝은빛으로부터
생명과생명의말없는기적이온다
야마오산세이는마흔을앞둔1977년,가족과함께낮밤없이반짝이는도쿄의빌딩숲을떠나야쿠섬시라카와강가의칠흑처럼묵묵한숲으로물러났다.그리고'풍요'를단일한잣대로재단하는사회에맞서외롭고도풍요로운자기만의'존재의길'을평생에걸쳐걸었다.
숲은그에게"진보라는숙명과동시에순환내지회귀라고하는또하나의숙명"이동시에존재할수있음을쉼없이가르쳐주는곳이기도했다.야마오산세이는낮에는농사일에힘을쏟았고,가족과저녁시간을함께보낸뒤,늦은밤에야서재에들어글을써내려갔다."한발도나아가지않는"자연으로더욱깃드는삶속에서발견한깊은진리가간결한말들속에차곡차곡담겼다.
그는"모든조용하고충실한것들의신도"로서"산을바라보며""구름을바라보며""물을바라보며""도토리가열리는모밀잣밤나무를바라보며""개여뀌의붉은꽃을바라보며"마음을씻었다."산에오르며산에잠"기듯,섬에깃들어섬의삶속으로하루하루잠겨갔다.그의일생은,그자신의말을빌리자면"거기"세상의모든곳에존재하는"조용한기쁨"을발견하며,"생명과생명의말없는기적"을끝도없이마주하는삶이었다.꽉차있으나비어있고,비어있으나누추하지않았다.
그가남긴걸작은결국삶이었다.
'지고물러난것들로부터오는불가사의한힘'을고스란히느낄수있는시집
야자잎모자를쓰고8-루이씨에게
그저별다른장식도없는
야자잎모자
아마미오섬의도산한한도매상이방출한
사람이손수
야자잎으로짠야자잎모자
그래도그것을쓰면
그순간부터
지고물러난것들로부터오는불가사의한힘이시작된다
내가나로산다는것은
반드시지고떠난자들과함께하는것-
그리고
그와동시에
기쁨이시작된다
살아있다고하는아름다운일들이시작된다-
그저별다른장식도없는
야자잎모자
야자잎모자를쓰고
천천히호미로감자를캔다
1960년대~1970년대,야쿠섬의원생림은일본정부가주도한무분별한벌목으로본래모습을잃고빠르게사라져갔다.결국몇몇주민이‘야쿠섬을지키는모임’이라는단체를만들어숲이더망가지기전에섬을구하자는운동을시작하면서,자연과생명을노래하는시를써온야마오산세이를섬으로불러들였다.섬의실상을보고,섬사람들과큰섬사람들을일깨울수있는시를써달라고청하기위해서였다.
그러나그는관찰자로구경꾼으로머물고자하지않았다.아내와세아이를데리고1977년기어이섬의버려진한산속마을로삶터를옮긴다.지극히산세이다운결정이었다.와세다대학을중퇴하고,고도성장기일본의심장도쿄에서혁명과구도의길을걷던그는,2001년위암으로돌아갈때까지아홉자녀를야쿠섬에서길러내며섬사람으로살았다.스스로"지고물러난"자를자처하며더깊이자연으로,평평범범한이웃들속으로,깃들고자했던평생이었다.
'물러섬'은새로운삶의문을활짝열었다."나에게로나에게로흙으로돌로숲으로"물러나야쿠섬의조그만산마을에깃든산세이는도시의삶이,근대문명의휘황한불빛이가져다줄수없는기쁨과만족,충만함의흔적들을여실하게기록했다.푸르던그의삶을버티던가파른열정과사상은한없이잠잠하고고요한삶속에서단정하고,간결하고,온화한시어로거듭피어났다."지고물러난것들"의자리에서'어제'의가치들사이를속속들이누비는야마오산세이의시는시작과끝이,안과밖이,너와내가,도시와섬이,중심과변방이,어제와내일이,끝내는돌고돌아맞닿아있음을깊이있게말하고있다.
일상이라는끝없는"형벌과위로의산기슭"에서서
다만하루하루를살아간이의깊은성찰과기도가담긴시집
고요함에대해
이세상에서가장중요한것은
고요함이다
산에둘러싸인작은밭에서
허리가끊어질듯아프게괭이질을하다가
때로그허리를
짙푸른산을향해쭉편다
산위에는
작은구름이몇덩이천천히흘러가고있다
이세상에서가장중요한것은
고요함이다
산은고요하다
밭은고요하다
그래서나는고향인도쿄를버리고섬에와농부로살고있다
이것은하나의의견이지만
이세상에서가장중요한것은
고요함이다
산은고요하다
구름은고요하다
땅은고요하다
벌이가되지않는것은괴롭지만
이세상에서가장중요하고또필요한것은
고요함이다
누구보다가파른사상을품고평생을굽히지않고일관했으나,그의시는온화했다.재가자로서나날이신앙의깊이를더해갔으나,그럴수록그는더욱간명하고쉬운말들로자신이건져올린깨달음을담고자했다.자연의일부로서모든생명을가름없이섬겼듯이,야마오산세이는자신이써내려간시역시모든이에게되돌리고자했다.시가특정한누군가의몫으로만남아서는안된다고여겼던그의믿음은한없이쉽고담백한시들로피어났다.'순순한역주逆走'와도같은역설로가득찬그이의삶처럼그의시도다르지않았다.
일본규슈남쪽조그만섬야쿠시마에서,야마오산세이는갑자기돌아간친구부부의아이요가와라가를포함해자녀아홉을키우고,닭·산양·돼지와같은집짐승을돌보고,낡은집채와뜰을가꾸고,개간을하거나빌린산밭에서농사를지으며,섬의이웃들과함께웃고웃었다.섬의일상또한힘들고고통스러운순간이없지는않았으나,그는인간본연의슬픔과외로움의무게를기꺼이지고,"바다의영원함을바라보며""산의고요에젖으며"다만하루하루를살았다.일상이라는끝없는"형벌과위로의산기슭"에서서평평범범하고온화한시어로그가써내려간시들은우리의가파른생각을조용히감싸안고,생채기가득한메마른마음을위로하듯두드린다.
자연에깃든풍요로움과성스러움앞에깊이고개숙인자의,
숙연한기도와같은말들의향연
하루살이
바다에가서
바다의영원함을바라보며
도시락을먹는다
조개와바다풀을조금따고
땔감으로쓸나무를주워모으며하루를산다
산에가서
산의고요에젖으며
도시락을먹는다
머위새싹과쑥을조금뜯고
땔감으로쓸죽은나무를주워모으며하루를보낸다
일생을사는것이아니다
다만하루하루
하루하루를살아가는것이다
일본사회가거품경제속에서정신없이허우적거리는사이,일본지도의축소판과도같은조그만섬야쿠시마에서세계를바라보던야마오산세이는천천히애니미즘이라는세계에가닿았다.그는자연에깃든풍요로움과성스러움앞에더욱깊이고개숙였고,숙연한기도와같은말들을거기서길어올렸다.
섬에살며그는"사람의연약함과대자연의크기를몸에사무치게느끼"며"맡기는"법을배웠다.자연앞에더욱깊이고개숙일때,그는모든것,모든곳에깃든신을발견하는기쁨으로벅차올랐다.자연과지구,우주가주가되고인간은이를섬기며겸허히종으로서살아갈때,"경계가없는깊은평화이자,인간적인고민이고,사는방식이자,죽는방식"으로서우리앞에비로소'조화로운삶'이열린다는것을야마오산세이는몸소보여주었다.
『나는숲으로물러난다』는야마오산세이가평생에걸친'자연생활'을통해"이제까지와는다른방향의진보"가가능함을끊임없이확인하며,일상에서거두어올린94편의"평화의열매"를잘갈무리해담았다.그는자신의마음속을,새로오는절기를,어려움이없지는않으나그럼에도풍요로운나날의일상을,기쁨이자또한번뇌의원천이기도한가족에대한어쩔수없는소회를,오래도록자신의형이상성의나무였던조몬삼나무를뵌기쁨을,깊은진리가담긴법어를,바쁠것없는걸음으로물끄러미응시하고,찬찬히써나갔다.기도와성찰이깊이를더할수록,그의시는가뿐해져갔다.깊은산계곡물처럼한없이청아하고,조그만봉우리를도도록내민봄꽃처럼말긋말긋한시들은마주친독자의마음을어느새말끔히비추이고씻긴다.
산문에서는드러나지않았던깊은내면의세계를펼쳐보이는
1938-2001야마오산세이의평생이담긴단한권의시선집
야마오산세이는2002년산문집『여기에사는즐거움』이나오면서한국에처음으로소개되었다.시인으로널리알려졌으나,정작그이의시는그간나온산문집여기저기에몇편이소개된것이고작이었다.여태그이의시세계를제대로가늠할수있는한국어책은한권도나온적이없었다.
이시선집은야마오산세이의시세계를상추쌈출판사가20년만에한국에처음으로소개하는것인만큼,야마오산세이가생전에발표한시집을모두구해서살핀다음,(다만,판매하지않고가까운이들과나눈사가판『약속의창約束の窓』에실린것은제외했다.)그가운데야마오산세이의삶과깨달음의알맹이가잘담긴94편을신중히가려뽑았다.그래서같은구성으로된일본어원서도없다.
산문이그의살가운외향성을선명하게보여주는자취라면,시는그의그윽한내향성을오롯이담아내는그릇이었다.그의시와산문은모두깊은자기성찰로부터비롯되었으나,산문은그거울에세상을비추어보이며성큼밖을향해나아갔고,시는존재의본질에이르기까지사유와깨달음의폭과깊이를더하며더욱내면으로침잠했다.시와산문은마주쳐야비로소소리가울리는손바닥처럼,야마오산세이의'외침'을완성하는양면이었다.야마오산세이의깊고내밀한세계가남김없이,조금의'거리두기'도없이드러나는이한권을이제서야한국독자들에게건넨다.
추천사
1970년대중반,야마오산세이는섬으로들어가서버려져있던집한채를고치고흙을만진다.일본인들이졸업장과‘스펙’으로놀라운경제성장에동원되고있을때그는숲으로들어갔다.이시집에는우리가바깥으로멀리떠나오기전,저숲안쪽의이야기가있다.저안쪽의소리가있다.우리를대지의품으로불러들여조곤조곤달이뜨는밤을보여주고골짜기의물소리를들려주는시인은누구보다행복해보인다.그행복은자본주의사회의잡다한욕망으로부터해방되기를고대했기에가능한것이었다.그는행복의범위와실체를아주작고구체적인실천속에서찾으려고했다.“괭이밥의작은황금색꽃도하나님으로보인다”는성찰은야마오산세이의눈이성스러운것에가까이있다는것을알려준다.생강나무꽃,괭이싸리,개여뀌,누리장나무꽃,산벚나무,엉겅퀴,짚신나물과같은별것아닌식물에서시인은영혼을읽는다.
일생을사는것이아니다
다만하루하루
하루하루를살아가는것이다
맡기고덜어내고그대로두니넘치고과한것이없다.신비로운일이다.
-안도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