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과 철학자들

라캉과 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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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우리가 ‘프랑스 현대철학’이라 부르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무엇보다 플라톤 이래의 진리의 담지자를 자임해온 전통적 철학에 도전하여 그것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려는 시도라는 것이고 이는 ‘반反철학의 군주’라 불린 니체의 전복적인 시도와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특징은, 1960년대 이후의 프랑스 현대철학이란 무엇보다도 프로이트 이후의 철학, 혹은 정신분석과 함께하는 철학이라는 것이다. 푸코든 들뢰즈든 데리다든, 이 시대의 창조적인 작업을 했던 철학자들은 모두 프로이트의 우수한 독자들이었다. 그런데 방금 말한 두 가지 특징은 언뜻 생각하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철학(혹은 반철학)은 정신분석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이 질문과 가장 치열히 대결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이다. 알랭 바디우가 ‘최후의 반철학자’ ‘가장 정교한 반철학자’라 부른 라캉은, 철학을 과학에 대비시킴으로써 철학의 주장을 추상적 허구라고 몰아붙이는 데 그쳤던 프로이트와 달리 철학 속으로 뛰어들어 전면적인 대결을 펼친다. 심지어 라캉은 철학이라는 행위에 감추어진 본성과 그 한계를 비판하고 무너뜨리는 것을 정신분석(가)의 책무로까지 여겼는데 그것은 왜인가? 일본의 젊은 학자 구도 겐타의 『라캉과 철학자들』은 앞서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시작으로 그러한 라캉의 철학과의 대결의 기본 맥락이 무엇이며 그것이 철학의 갱신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밝히려는 시도이다. 다르게 말하면, 라캉에게 철학은 대체 무엇이었고, 거꾸로 철학에게 라캉이 무엇이었나를 해명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러한 질문에 담긴 현대적 함의를 함께 찾자고 하는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순응주의에 대한 저항’이다. 철학은, 정신분석은 왜 필요하며 존재 이유는 어떻게 확인되어야 할까? 이러한 질문 사이에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서이다.
저자

구도겐타

1989년도쿄도출생.전공은정신분석과철학을중심으로한사상사이며,와세다대학문학부프랑스어프랑스문학코스졸업하고,일본학술진흥회특별연구원DC1,파리고등사범학교유학등을거쳐2019년2월에와세다대학대학원문학부연구과박사과정수료(문학박사).지금은일본학술진흥회특별연구원PD(교토대학인문과학연구소),와세다대학,군마현립여자대학에서비상근강사로있다.저서로는『정신분석의재발명:프로이트의신화,라캉의투쟁』(이와나미서점,2021)이있다.

목차

서론

1부데카르트를읽는라캉
1장철학은광기를어떻게바라보는가―라캉의‘데카르트로의회귀’
2장잃어버린현실을찾아서―프로이트와정신의고고학
3장의심의저편―데카르트적경험으로서의무의식
4장철학자의꿈―코기토의이면,속이는신의가설
5장언어와욕망―푸코와데리다가벌인논쟁의곁에서
6장과학에게신이란무엇인가―정신분석의시작과끝

2부정신분석적현실로
7장사랑은존재하지않는다?―「전이사랑에대한소견」을다시논하다
8장도덕인가정욕인가―칸트와또하나의이율배반
9장깨어난다는것은무엇인가―현실을다시정의하는꿈의해석
10장늑대꿈의비밀―트라우마로서의실재계(1)
11장프로이트라는사례―트라우마로서의실재계(2)
12장헤겔에저항하는라캉―정신분석적시간의발명

3부소크라테스의욕망을둘러싸고
13장기원의유혹―프로이트와소크라테스
14장사랑과은유―소년에대한사랑에서신들에게로
15장영원한사랑의이면―끊임없는딸꾹질의수수께끼
16장당신은사랑을모릅니다―분열하는소크라테스
17장귀신에홀린철학자―미美의이데아와죽음충동
18장이야기의바깥으로나가다―정신분석가의욕망이란무엇인가?

결론을대신하여
저자후기
역자후기

출판사 서평

라캉에게철학은대체무엇이었나,
거꾸로철학에게라캉은무엇이었나

“자크라캉이야말로20세기의사상계에서가장날카로운철학비판자가아니었을까?”―이번에소개하는일본소장학자구도겐타의『라캉과철학자들』은이질문을떠올리는것으로부터시작한다.1960년대프랑스를중심으로거세게일어난철학비판(반反철학)의흐름은좀더거슬러20세기첫해(1900년)의두사건과맥이연결되어있다.프로이트의『꿈의해석』의출간과니체의사망.우리가아는것처럼니체는모든가치를전도함으로써당시까지철학이범해왔던어리석음을뿌리뽑으려했다.니체가보기에철학자들은‘범죄자중의범죄자’이며그들의철학은자기기만의산물일뿐이었다.철학의어리석음은앎을자신의것으로삼으려는지배의욕망에서비롯된다.니체의열정은철학의그러한감추어진동기를파헤치는데바쳐졌다.체제의지배논리에복무하거나합리화하는철학은죽음에이르렀으며반시대적고찰로서철학이소생하기위해서는진리로간주해온전통철학에대한비판과해체작업이수행되지않으면안되었다.미셸푸코나질들뢰즈등파리를중심으로한반체제적지식인들역시니체에이어각자고유한방법으로그간앎을지배해온철학의해체작업에몰두했던것이다.철학의욕망을비판하고해체하려는그들은또한프로이트의우수한독자이기도했다.그전까지의앎과는다른‘무의식’의영토를펼쳐보인프로이트또한철학비판자였다.프로이트에따르면,철학은마치과학에반대하지않으며심지어스스로과학인것처럼행세하지만인간의지식이새로운진보를거듭할때마다붕괴될수밖에없음에도불구하고완벽하고긴밀한세계상을사람들에게제공할수있다는환상에사로잡힘으로써과학으로부터멀어진다.하지만프로이트의철학비판은여기서별로나아가지못한다.새로이등장한반철학적조류위에서생성되기시작한현대철학이정신분석을참조하지만그때까지도철학의체계안에서검토되는차원이었다.프로이트를빼고20세기사상사를이야기할수없음에도불구하고그의정신분석은정신의학의주류도못되었을뿐더러인문학의하위부분으로간주되었다.바로여기에끼어든이가라캉이었다.“프로이트로돌아가자”가그가외친슬로건이었지만,프로이트와달리라캉은‘철학속으로’적극뛰어든다.『라캉과철학자들』의저자는다시이렇게질문을던진다.“라캉은왜철학비판=반철학을정신분석의중요한,피할수없는과제로보았던것일까?”다시말해정신분석가로서어디까지나철학의타자이면서도그가철학의안쪽을파고들어가그것의본성과한계를드러내는작업을피할수없는과제로받아들인이유는무엇인가이다.프로이트는어떠한예외라도지식체계안으로포섭할수있다고믿는철학적사고를‘편집증’으로냉소했지만정작지배질서와철학의내적관계역시진화를거듭한다는사실에거리를둠으로써결과적으로자신의정신분석이정신의학의하나의방법론으로축소되는결과를예견하지못했던것이다.그러므로라캉에게프로이트정신분석의재개는사람의앎을지배하려는지식체계로서의철학과무의식이라는‘지배가불가능한앎’을지속적으로대결시키는작업이없이는불가능한것이었다.라캉에게정신분석이란철학에저항하는경험에다름아니다.철학이란그것이급진적인성격을지닌것처럼보이는순간에도지배(자)에종사하는앎의체계로전락할수있다.정신분석은또하나의앎에대해알고있는데그것이바로프로이트적인무의식,즉개인이가진욕망의방향을잡고결정하면서도본인조차알수없는마음의영역,어떠한지배자라도통제할수없는앎,지배자없는앎의영역이다.라캉의‘반철학’은이렇듯정신분석과철학에서앎이존재하는방식의근본적인차이에근거하는데,하지만무의식과욕망이라고해서정치적이고관념적인질서로부터자유로운것은아니며정신분석실천은이에대한저항과불가분의관계에놓일수밖에없는것이다.역설적으로라캉에게정신분석이일어나는장은철학적으로(이론적으로)설명할수있으리라는믿음이흔들리는공백에서이며,무의식이라는전대미문의앎이그때마다어떠한모습으로나타나는가,어떠한드라마를낳는가를끝까지따라가는과정이기때문이다.

이처럼라캉의반철학은여느현대철학처럼철학적기획이아니라정신분석적실천의과정에서피할수없는대결의산물이라고할수있겠다.라캉에게정신분석실천이일어나는장소는이론적체계로설명할수없는불확실한장소로남아있어야했다.역설적이게도바로이것이그의철학비판을다른어느현대철학자의그것보다도날카롭고근원적인것이되게했다.『라캉과철학자들』의기저에는‘재개再開’라는모티브가작동하고있다.“프로이트로돌아가자”라는모토아래프로이트의혁신성을되살리고자했던라캉의시도가우리에게알려주는것은‘재개’가기원을향해되돌아가는작업을통해비로소가능해진다는사실이다.그리고라캉은이작업을위해프로이트와는대조적으로철학이라는파트너를선택했다.이상이‘라캉에게철학은무엇이었나’에대한대략적인이해일수있다고한다면,남은하나의질문은역으로‘철학에게라캉은무엇이었나’일것이다.철학에대한라캉의독해는텍스트속에서딱히중심적이지않은부분을실마리로삼아여태껏보이지않았던철학의특징을드러내는식이다.라캉은어디까지나정신분석가이며,이는그가철학과대결할때에도바뀌지않는다.정신분석가의사명은증상을떠맡는것,즉분석주체와함께그증상을떠맡는것이다.이는주체가무의식속에가지고있는고유한이야기속에분석가가자신을새로이써넣는것이기도한데저자는라캉과철학의대결도바로이런것이아니었을까라고반문한다.이것이자신이철학의증상을떠맡는자가되어철학의아이덴티티를만드는이야기를드러나게하는라캉의기법이라는것이다.이를테면라캉의실천은철학에게이른바가장친밀한이물질이다.거꾸로말하자면라캉에게철학은정신분석에새로운과제를들이대고정신분석적사고의심화를,나아가쇄신을가져온파트너였다는것이다.『라캉과철학자들』은이러한발상아래철학을통해라캉을,라캉을통해철학을읽는작업을시도하는것이다.데카르트의‘속이는신’에게서‘타자’의욕망을발견했을때,혹은칸트의정언명령을주이상스로나아가려는욕망으로서다루었을때,그리고통상성을뛰어넘은소크라테스의행동을정신분석가의욕망과겹쳐보았을때,라캉이말하고자하는것은무엇이었을까.책은3부로구성되어있다.제1부에서는정신분석학회의최고권위인국제정신분석협회로부터‘파문’된라캉이자신의조직을새로세우고다시출발했던1964년전후의논의를다룬다.이때라캉은근대철학의기원이라불리는데카르트의철학을프로이트와대결시키는작업에매진했다.제1부의목표는이작업의의미를정면에서다시생각해보는것이다.제2부에서는칸트와헤겔이라는철학사의주류철학자들에대한라캉의언급을다룬다.여기에서는사랑과성적욕망,꿈,환상,트라우마라는정신분석의중심테마를다루면서라캉과함께각각의철학자가펼쳤던논의의이면을파헤친다.제3부에서는라캉의족적을조금더거슬러올라가1960년전후에전개되었던소크라테스론에초점을맞추고있다.철학의기원으로돌아가면서라캉은‘정신분석가란누구인가’라는근본적인질문을제기했다.이후라캉의작업을결정했다고해도좋을이질문이어떠한방식으로철학의‘재개’를준비했을까.이것이제3부의테마이다.책의말미에서역자도언급하고있듯이,라캉의삶은철학자들과의친교와결투로점철되어있는데그의지적여정이란철학으로부터제기되는비판을견뎌내고정신분석의독자성을확보하기위한투쟁그자체였다고도할수있을것이다.역자가지적하는것처럼『라캉과철학자들』의미덕은,라캉이접했던철학자들을언급하면서라캉의정신분석이그들과어디까지같이걸어갔으며어느지점부터결별하게되었는가를설명하고있다는점에있다.“접점이존재한다는사실은접하지않는것들이훨씬많이존재한다는것을암시한다.지금까지정신분석과철학을연결해서논의하는글은수없이많았지만,이들은양자의유사성을중점적으로다룰뿐무엇이다른지에대해서는비교적설명이부족했다.이책은암시적으로만존재했던‘접점이외의것’을꽤나읽기용이하게우리의앞으로끌어내기에라캉과정신분석에관심이있는이들에게상당한도움이되리라생각한다.”더불어철학의존재이유를찾고자하는이들에게도도움을줄것이라는말을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