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소뜸 (역사 너머의 기억들)

길소뜸 (역사 너머의 기억들)

$15.00
Description
파국적인 전쟁에 대한 냉담한 고백
보편적 휴머니즘 이후, 임권택 영화의 분기점
한국영화사의 대표작 한 편을 아카이브와 역사의 관점하에 비평적 해석으로 집중 탐문하는 KOFA 영화비평총서의 일곱 번째 영화는 〈길소뜸〉(1985)이다. “기억은 때로 윤리가 된다.”
〈길소뜸〉은 전쟁과 이산을 다룬 대표작으로 호명되지만, 이 영화에는 우리가 상봉의 순간에 기대하는 회복의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은 복원되지 않으며, 상처는 봉합되지 않은 채 남는다. 재회의 순간은 또 다른 결핍이 시작되는 계기일 뿐이다. 상처는 해결 불가능할뿐더러 고통이 끝났다는 착각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임권택은 해답을 섣불리 제시하기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현재의 삶을 잠식하고 있는 상처와 고통을 정직하게 기록할 뿐이다. 재회한 가족이 서로의 남루한 현실 앞에서 머뭇거리는 풍경을 응시하는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역사를 다루는 새로운 태도이다. 이 영화를 기점으로 임권택은 외부의 강제나 보편적 휴머니즘이라는 거대 서사의 관성을 깨고,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진짜 발화’를 시작한다. 임권택의 독보적 위상은 역사가 결코 개인의 진실을 앞지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영화적 언어로 입증했다는 데 있다. 개인적인 상처가 가장 보편적인 역사의 얼굴이 될 수 있음을, 특히 〈길소뜸〉은 기억이 하나의 윤리가 될 수 있음을 가장 치열하게 탐문한다.
저자

오영숙

성공회대학교동아시아연구소연구교수.영화가현실을비추는거울인동시에그것을구성하는힘이라는인식아래,스크린안에새겨진시대의내면을읽어내는글을써왔다.《근현대한국영화의마인드스케이프》,《1950년대한국영화와문화담론》,《카메라가만든전쟁,편집된냉전》(공동편저)등의저서를펴냈으며,슬라보예지젝의《진짜눈물의공포》와데이비드보드웰의《영화의내레이션》을우리말로옮겼다.

목차

발간사
서문_상흔의지도를펼치다

1장-임권택의영화여정과〈길소뜸〉
〈길소뜸〉이놓인자리
‘나’를말할수없던시간들:1950-70년대
1980년대:나를응시하기시작하다

2장-국가서사의공백과남겨진고통
생방송〈이산가족을찾습니다〉의영화적재매개
국가주도의감정정치
감동의스펙터클과현실의잔여

3장-상실의기표로서의고향
그이름,‘길소뜸’
첫사랑:순수와낙원
상실의정념과죄책감

4장-장소들:“지겨워서요,이놈의땅이”
황해도연백군의해안마을
엇갈림과단절의무대,춘천
재생과유동의장,속초
망각위의번영,부산
기억의전시장,서울

5장-기억의정동지리
갯벌,흔적과망각의자리
흐름과경계의장소,수변
산,고립과생존의공간

6장-겹쳐진시간
두개의전쟁:한국전쟁과베트남전
국가의성장,개인의빈곤
1980년대의전쟁서사

7장-몸에새긴기억
배우의얼굴과‘메타‐기억’
몸,기억의아카이브
상흔의또다른얼굴,결핍

에필로그


참고문헌
크레디트

출판사 서평

‘이산가족찾기’가소환한세대의기억
영화의제목인‘길소뜸’은주인공들이자란고향마을의이름이다.실제지도에는존재하지않지만어딘지친근한이지명은주인공화영(김지미)과동진(신성일)에게고향의흔적을불러내는언어적장소이자귀향할수없는공간을상기시킨다.〈길소뜸〉은영화가곧기억의장소임을강렬하게증언한다.억눌린과거가현재와부딪히며파편적인기억으로되살아나고,개인의삶과집단의역사가한서사안에교직된다.전쟁과분단이한국사회에남긴집단적상처가어떻게기억으로치환되어지금의삶속에자리하는지,영화는그내밀한과정을집요하게응시한다.특히당시이산가족찾기라는국가적이벤트가만들어낸감상적인서사에맞서,국가가봉합하려던비극의실체를개인의서늘한현실로되돌려놓는다.이기록방식은〈길소뜸〉이제작된1980년대라는시대적조건과맞닿아있다.이시기는고속성장의그늘아래에서오랫동안억눌려왔던네이션의기억들이수면위로떠오르기시작한때이다.특히광주의비극은역사를‘지배의기록’이아닌‘저항의서사’로재편하려는실천적각성을불러일으켰다.〈길소뜸〉에서전쟁은지나간과거로박제되지않고,현재를규정하는실존적조건으로자리한다.성장기에전쟁의참화를고스란히겪어내야했던세대의기억이이산가족이라는국가적서사를통과하며현재로소환된다.그렇기에〈길소뜸〉은전쟁이후의삶을살아온‘자기세대’의감각,즉임권택이정면으로마주한‘자신의시간’을담은영화라할수있다.이영화의독보성은형식적성취를넘어,한감독이마침내자신의목소리로발화하기시작했다는사실에서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