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롬 알레이헴
저자 : 살롬 알레이헴(Shalom Aleichem, 본명: Shalom Nahumovich Rabinovich, 영어 표기: Sholem Aleichem, 1859년 ~ 1916년))
유대인 작가, 극작가이자 지식인. 이디시어jida 문학 창시자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살롬 알레이헴은 1859년 3월 2일 키예프 근처 페레야슬라프의 가난한 정통파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3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15세 때 그는 『로빈슨 크루소』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자신만의 유대식 버전을 만들어냈고, 작가가 되기를 꿈꿨다. 이때 그는 유대인 전통 인사말(평화가 당신과 함께하길)에서 따온 살롬 알레이헴이라는 필명을 선택했다.
1876년, 학업을 마치고 개인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의 제자 중 한 명은 부유한 유대인 사업가의 딸인 골데 로에바 Golde Loeva였다. 3년 동안 그녀를 가르쳤고,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골데의 아버지는 가난한 교사와의 결혼을 원치 않았지만, 두 사람은 1883년에 도피하여 결혼했다. 부부는 살롬 알레이헴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살았으며, 여섯 자녀를 두었다.
비평가들은 살롬 알레이헴을 문체와 아동 문학의 유사성 때문에 "유대인 마크 트웨인"이라고 불렀다. 훗날 마크 트웨인은 자신을 "미국의 살롬 알레이헴"이라고 부르는 것이 영광이라고 인정했다.
1964년에는 그의 저서 『테비에 우유 장수』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뉴욕에서 초연되었는데, 이는 동유럽 유대인의 삶을 다룬 최초의,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어권 공연이었다. 1997년에는 키예프에, 2001년에는 모스크바에 살롬 알레이헴 기념비가 세워졌다.
주요 작품
《김나지움》 자멘호프(L.L Zamenhof) 번역 1909년: 에스페란토 문학의 고전이 됨.
소설 《우유 장수 테비에》(Tevje der miliker); 1894년; 영어로 "Tevye와 그의 딸들"로 번역됨
《Dissigitsat kaj pelitas》 (Cezajt un cesprajt), 드라마, 비극 코미디; 1903;
《대홍수(Der mabl)》, 소설;
《The Bloody Joke》(Der blutiker pas), 소설;
《유대인이 되는 것은 어렵다》(Shver cu zajn a yid), 드라마; 1914; 피 묻은 농담의 연극 제작;
《큰 이득》 (Das Grojse Gevins, Dos grojse gevins), 드라마; 1915;
《방황하는 별 》(Блондженде штерн, Blonzhende tern), 소설;
《Pejsi 선창자의 아들 》Motl(Motl Pejsi dem khazns); 1916년에 출판된 미완성 소설
Marienbad(마리엔바드, Marienbad)는 Shalom Aleichem이 사망한 후 1917년 그의 아내가 발견한 미출판 원고.
《Back from the Fair》(Funem jarid)는 1912년에서 1916년 사이에 쓰여진 미완성 자서전.
『유대인 이야기 Hebreaj Rakontoj』 국제 세계 문학 9권. 살롬 알레이헴, 페레츠 지음, 무츠니크 에스페란토역, 78쪽, 1923년.
《At the Doctor's》(1904년에 작성되었지만 1921년에 출판된 독백을 의미하는 MAN이라는 책의 일부로 출판됨), Josef Rabinovic Tajc가 에스페란토로 번역. 1932년(?) 쾰른의 헤롤도 데 에스페란토 출판사에서 출간됨.
《모두에게 동등하게 - 나의 유토피아》, 이야기, 모리스 번역
역자 : 자멘호프(L. L. Zamenhof(1859 - 1917)
에스페란토어 창안자.
1859년 러시아 제국령 폴란드 비아위스토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스페란토 기초를 마련했고, 에스페란토는 실제 사용되면서 점차 살아있는 언어, 나아가 자연어에 이르기까지 발전해 왔다.
자멘호프는 안과의사였으며 노벨 평화상 후보에 14번이나 지명되었다.
유네스코(UNESCO)는 그의 업적과 문화 간 대화 증진에 대한 헌신을 기려 2017년 그의 서거 100주년을 맞아 그를 세계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1917년 4월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별세했다.
역자 : 무츠니크(Isak Munik: 1894~1974)
이츠하크(이샤크)는 1894년 4월 5일 당시 러시아 제국 영토였고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있는 셰페티우카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대인 회계사이자 에스페란토 사용자였다. 그는 처음에는 회계사로 일했고, 나중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식민지 개척자이자 국가 재건의 선구자로 활동했다. 1910년에 에스페란토를 사용하게 된 그는 1920년까지 거주했던 루한스크 주 셰페티프카 지역에 에스페란토 모임과 강좌를 개설했고, 이후 현지 친구들(셰페티프카 개척자라고 불림)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여 갈릴리 지역, 키네레트 호수 근처에 "하르 키네레트"라는 새로운 정착촌을 세우고 농사를 지었다. 1922년 이 책을 번역 출간한 당시에 I. Munik는 에스페란토 언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에는 크파르 예호슈아에 정착했고, 1974년 4월 30일에 사망했다.
역자 : 타이츠(Josef Rabinovic-Tajc)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한 유대계 에스페란티스토이자 번역가, 문학 활동가입니다.
역자 : 장정렬 JANG Jeong-Rjeol(Ombro)
경상남도 창원 태생
부산대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원 세계경영대학원 석사.
거제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현재 번역가로 활동.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부산지부 회보
『봄 속의 가을』, 『가을 속의 봄』, 『산촌』, 『마르타』, 『구두견습공 흘라피치의 모험』 등 다수의 번역작. 세계에스페란토협회 문예콩쿠르 ‘올해의 책’ <아동 부문> 심사위원.
머리말 8
자멘호프 번역
1. 러시아 명문 학교 입학 소동 11
무츠니크 번역
2. ‘호샤나 라바’의 기적 47
3. 행복이란 없다 71
4. ‘랍칙’이라는 개 81
5. 보물 113
6. 여인 창조의 전설 115
7. 속담 117
타이츠 번역
8. 의사 선생님 앞에서 121
부록
1. 작가 소개 136
2. 에스페란토 역자 소개 138
3. 우리말 역자 소개 139
4. 우리말 역자 후기 140
5. 진달래 출판사 간행목록 144
우리말 역자 후기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만질 수도 없는 도(道)이다. (노자(老子) 『도덕경』) 그 말에 살롬 알레이헴은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것은 돈이다. 돈은 보이고, 들리고,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스페란토 번역본『Hebreaj Rakontoj』(유대인 이야기)를 구해 읽어 보다가, 이 작품에는 두 작가 - 살롬 알레이헴과 페레츠 - 의 작품이 한 책에 모여 있음을 발견하고는, 우선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에스페란토 창안자 자멘호프 박사가 직접 번역한
이 에스페란토 번역본『Hebreaj Rakontoj』(유대인 이야기)을 읽게 된 동기에는 중국 번역가 왕루얀(王魯彦:WANG Luyan: 1901-1944) 선생의 에스페란토 번역서들의 영향이 컸다는 점을 먼저 밝혀 둡니다. 왕루얀 선생은 1920년 9월부터 다음 해 12월까지의 베이징대학교 에스페란토 야간 강좌(강사: Sinpak AU(1892-1945?), 매주 3시간 강습)에서 에스페란토를 배우고는, 1922년 중국 베이징대학교 에스페란토 강좌(강사: V. 에로센코 지도)에 보조강사로 참여해 에로센코를 돕고, 중국 허난성(湖南省) 성도 장사(長沙) 등지에 에스페란토 강좌 및 에스페란토 단체를 조직하고,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에스페란토 문학 번역에 참여하면서, 번역 작가로, 또 중문학 작가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 번역가는 베이징에서는 우리나라 문학가 공초 오상순 등과 교류했고, 1926년 4월 -5월 상하이 에스페란토 통신학교 강사로 활동하며, 동시에 문학 활동을 하던 때도 당시 상하이에 거주하던 한국인들 에스페란토들과 소통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번역가는 단편소설『La Fundo de l’ Mizero』, 『Konfeso』, 『Ano de l’ Ringludo』, 『Hebreaj Rakontoj』 등 수많은 유럽 문학에서 번역된 에스페란토 판을 기반으로 중국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분의 번역작품 리스트를 보면서, 저도 『La Fundo de l’ Mizero』(빈곤의 밑바닥), 『Konfeso』(고백), 『Ano de l’ Ringludo』(고리놀이 경연자)를 한국어 번역본으로 진달래 출판사에서 출간했습니다. 그러고 나니『Hebreaj Rakontoj』가 제 손에 잡혔고, 오늘 독자 여러분이 손에 든 작품도 그분이 100년 전에 관심을 가졌던 작품 중 하나이기에, 그 에스페란토 번역본에 새로 한국어 번역본을 추가해 발간되어, 에스페란토 학습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유대인 사회의 웃음과 해학과 지혜를 선사할 기회가 되어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 에스페란토 문학 연구가인 후궈펑(Hu Guopeng: Ardo)씨가 제게 보낸 왕루얀 선생의 PPT 자료를 여기에 소개하고 싶습니다. 왕류얀 번역가에 대한 많은 자료가 있지만, 여기서는 후궈펑 씨가 언급한 결론 부분만 소개합니다.
1923년 발간된 에스페란토번역판
『Hebreaj Rakontoj>
1927년 에스페란토 번역판을 기반으로 중국어로 번역된 『猶太小說集』(王魯彦역, 上海開明書店 출판)(s-ro Ardo 제공)
왕루얀은 자멘호프와 러시아 시각장애인이자 시인인 에로센코의 "인간애, 평등, 박애, 정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아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젊은 시절 문학 애호가였던 그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여 여러 나라의 문학 작품을 꾸준히 번역했습니다. 이를 통해 서양 문화의 정수를 접하며 인생관에 영향을 받았고, 중국어 작문 실력도 향상되어 결국 명작 작가가 되었습니다.
소수 민족 문학 중에서도 폴란드의 시엔키에비치와 프루스, 러시아의 에로센코의 사상, 도덕성, 문체, 태도는 왕루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작가들의 뛰어난 업적과 독특한 문체는 왕루얀에게 은은하게 존경과 영감을 주었고, 그는 이들로부터 사상적, 예술적 양분을 흡수하여 점차 자신의 창작 활동을 풍요롭고 발전시켰습니다. 따라서 왕루얀은 단순히 에스페란토 번역가일 뿐만 아니라 에스페란토의 성공적인 수혜자이기도 합니다. 에스페란토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고, 심지어 에스페란토를 활용하여 생계를 유지할 수도 있습니다. 에스페란토의 진정한 사용자로서 뛰어난 성공을 거둔 왕루얀은 우리에게 열심히 배우고 다양한 환경에서 에스페란토를 활용하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는 문학 작품 속에서도 에스페란토의 훌륭한 활용법을 제시합니다. 이는 에스페란토가 국제 문화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후궈펑 Ardo의 왕루얀(王魯彦) 관련 PPT 자료, 2024년 6월 22일)
유대인이 이스라엘에 나라를 세우기 이전의 유대인 문학은 한 마디로 ‘디아스포라’ 문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각 나라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지혜를 자신들의 자녀를 통해, 또 책을 통해, 자신들이 가진 지헤와 재치를 작품으로 표현하면서, 그 작품을 읽는 유대인 독자들 또한 공감했으리라는 짐작을 해 봅니다.
다른 유대인 작가 페레츠(I. Perec)의 작품 『사색 등불과 강아지 네 마리』도 같은 시기에 출간되니,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역자의 번역작품을 책으로 꾸준히 발간해 주신 진달래 출판사 오태영 대표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 묵묵히 역자의 번역작업을 지켜봐 주는 우리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혹시라도 이 작품을 읽고 독후감을 보내주시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제 이메일(suflora@daum.net)로 보내주시면, 함께 그 독후감을 즐거이 읽고 싶습니다.
2026.10.03.
국립공원 금정산 자락에서
역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