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연대기 (훈민에서 계몽으로, 계몽에서 민주로)

한글 연대기 (훈민에서 계몽으로, 계몽에서 민주로)

$25.00
Description
투쟁의 기록, ‘한글 연대기’
이 책은 한글이라는 문자가 한국어를 얼마나 풍성하게 하고 그 언어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지탱해 왔는가를 그려 낸 장대한 투쟁의 기록이다. 문자는 단순한 표기의 도구가 아니다. 문자는 종종 언어의 중추를 파고들어 언어를 변혁하고, 나아가 사람들의 사유와 삶마저 바꾸어 놓는다. 한글은 그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뚜렷이 일깨워 준다. 저자가 형상화한 강인한 물음과, 누가 어떻게 고민하며 분투했는가를 짚어 낸 사실의 정교한 자리매김이 이 연대기를 이루고 있다. 그 근간에 흐르는 저자의 사상은 한국어를 살아가는 민중의 시각에 놓여 있으며, 한글이 ‘우리의 언어’를 떠받친다는 신념이 책 전편을 꿰뚫고 있다. _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추천사’ 중에서

한글은 우리가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문자요 한국어는 대부분의 동포에게 대체 불가능한 모어인 동시에 시간이 갈수록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언어인데, 저자가 주목하듯이 그 둘을 칼같이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한 우리 나름의 역사가 있다. 그 역사를 한글 창제 시기부터 오늘날까지 ‘한글의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정리한 것이 최경봉 교수의 이 책이다. 어문의 역사이자 한국어의 역사이며 일종의 사회사를 겸하고 있다. _ 백낙청 ‘추천사’ 중에서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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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경봉

저자:최경봉
국어학자.원광대학교국어국문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어휘의미론,국어사전학,국어학사,국어정책과관련한연구를하면서,『어휘의미론-의미의존재양식과실현양상에대한탐구-』,『의미따라갈래지은우리말관용어사전』,『우리말의탄생-최초의국어사전만들기50년의역사-』,『한글민주주의』,『근대국어학의논리와계보』,『민족어의양면-남북의언어정책과어문민족주의-』등을저술하였다.

목차


[1장]조선시대사람들에게한글은어떤의미였을까?―한글창제와보급의연대기
[2장]어떤글이한문을대체할수있을까?―한문해체의연대기
[3장]한글신문으로공론의장을넓히자―한글신문의연대기
[4장]세계를어떻게한글로기록할수있을까?―외래어표기의연대기
[5장]한글쓰기원칙을세우자―『한글마춤법통일안』까지맞춤법의연대기
[6장]쉬운맞춤법이진리―한글맞춤법에대한이의제기의연대기
[7장]우리말사전을만들자―국어사전편찬의연대기
[8장]세계에한글을알리자―한국어세계화의연대기
[9장]글씨쓰는기계와한글의만남―한글기계화의연대기
[10장]특수문자로서한글의재탄생―한글응용의연대기
[11장]한글을기념하다―한글날제정의연대기

출판사 서평

우리에게‘한글’과‘한국어’는같은의미다!

한글과한국어는전혀다른의미이다.하나는글,하나는말이다.이탈리아어,프랑스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그리고영어는모두라틴문자(로마자)혹은라틴문자에서파생된문자를사용한다.그런데우리만이‘한글’이라는문자로한국어를구사한다.그리고문자의이름인한글을바로한국어라고말해도전혀어색하게여기지않는다.왜그럴까?

분명중세조선만해도우리말의짝이된우리글은‘한자’였다.한자로쓰고우리말을했다.세종대왕이1443년에훈민정음을만들었지만,이문자는어디까지나글을읽지도쓰지도못하는어리석은백성들을위한‘훈민’(訓民)의글자였다.

저자최경봉교수는그의다른책에서“한글과한국어를혼동할수밖에없는우리의언어의식에는한글과한국어를분리해생각할수없었던역사적경험과상처가착종되어있다”라고말한바있다.이는우리말공동체가‘한글’에새겨온의미를근대적어문개혁이라는역사적맥락에서이해해야한다는취지의말이며,이문제의식의연장선에서이책의서술대상을정했다.

이책은한글의연대기,즉한글의탄생부터현재에이르기까지의역사를시간순으로보여주지만,단순한연대기가아니다.한글이만들어진후어떻게쓰이고어떻게변해왔는지뿐만아니라,한글이쓰이고변하는맥락을짚으면서한글을어떻게생각하고한글에어떤의미를부여해왔는지를보여준다.

이책에서의한글연대기는이렇게‘역사적사실로서한글의모습’이라는표면구조와‘역사적맥락속한글의의미’라는내면구조를함께들여다보며이야기를펼친다.‘세종이한글을창제하고세종과그를잇는조선의왕들이한글을널리보급했다’는역사적사실의연대기는‘조선왕조가성리학적이상사회건설을위해한글로백성을교화했다’는역사적맥락의연대기와겹친다.이연대기의내면구조에서한글은결국중세질서를유지하는힘으로작용하지만,중세질서를유지하는힘이었던한글은근대화의맥락에서근대개혁을추동하는힘으로전환된다.

‘훈민’의언어한글,작용에는언제나반작용이있다

1443년12월30일자『세종실록』에는다음과같은기사한대목이실렸다.
“이달에임금께서친히언문(諺文)28자를지었는데,그글자가옛전자(篆字)를모방하고,초성·중성·종성으로나누어합한뒤에야글자를이루었다.무릇문자에관한것과이어(俚語)에관한것을모두쓸수있고,글자는비록간단하고긴요하지만전환하는것이무궁하니,이것을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하였다.”

세종이친히한글을창제했다는사실과함께한글의기원과사용원리와특성을간결하게서술하고있다.‘문자’(한자)에관한것과‘이어’(항간에떠도는속된말)에관한것을모두쓸수있고,간단한28자를전환하여모든소리를기록할수있는글자,한글의특성에대한서술은곧한글의힘에대한첫평가였다.

세종은한글을창제한후“내가만일언문으로『삼강행실도』를번역하여민간에반포하면어리석은남녀가모두쉽게깨달아서충신·효자·열녀가반드시무리로나올것이다”라고하면서한글창제의의미를강조하였다.세종은교육을통해성리학적이상사회를건설할수있다고믿었고,그교육에한글이큰힘을발휘하리라믿었던것이다.

그런데한글은세종이기대했던성리학적이상사회를건설하는힘으로만작용하지는않았다.세종은성리학적원리에따라만들어진쉽고간편한한글이삼강오륜의이치를빠르게전파할수있는도구가되리라기대했겠지만,한글은삼강오륜의이치에반하는지식과사상(동학,천주교등)조차빠르게전파할수있는쉽고간편한글자였다.

한글은백성을가르칠글자이면서백성이자신의뜻을펴는글자이기도했다.한글을배운백성은자신의뜻을펴는데한글을적극적으로사용했다.한글을창제한후6년이지난시점에,한글은공론의장에등장했다.정승하연(河演)을비난하는한글벽보가나붙은것이다.

하연은까다롭게살피고또노쇠하여행사에착오가많았으므로,어떤사람이언문으로벽에다쓰기를,‘하정승아,또공사(公事)를망령되게하지말라’고하였다.(『세종실록』,1449.10.5.)

공론화를위해한글벽보를붙인것을보면,그벽보를쓴사람은한글벽보가가진파급력을계산했을것이다.그렇다면한글을읽을수있는사람이상당수였음을짐작할수있는데,그시기가한글창제후6년만이었다는건한글의보급이그만큼빠르게이루어졌음을말해준다.당시기록을보면한글벽보뿐만아니라한글투서도횡행했을것이라짐작할수있다.정조임금은민심이동요하는국면마다한글로유지를내려백성을안심시켰다.

내가매우두려워하는것은예언의서적에있지않고다만교화가시행되지않고풍속이안정되지않아갖가지이상한일이이도에서발생할까하는것이다.……그들도충성하고싶은양심을갖추고있으므로이것을들으면반드시완고히잘못을고치지않는사람이없을것이다.이비밀히유시한글한통과문인방(文仁邦)을법에따라결안한것을한문과언문으로베껴써서방면한죄수들에게주도록하라.(『정조실록』,1782.12.10.)

한글은상하계층이공유할수있는문자로사용자가가장많았기에,조선사회의체제유지를위한도구로적극활용되었다.한문을교육하는데도,과학기술의성과를보급하고교육하는데도한글은없어서는안될중요한문자였다.중세사회를유지하기위한도구로널리보급된한글은,근대화의압력이거세지는시기,근대사회를여는강력한도구로새롭게등장했다.백성에게삼강오륜을교육하는과정에서백성의문자로깊이뿌리내린한글이삼강오륜으로상징되는중세적질서를해체하고근대적질서를구축하기위한공론장의주류문자가되었던것이다.

‘계몽’의언어한글,상처입은민족의자존심을치유하다

한글의힘에대한기대가시대적상황에따라달라졌기때문일까?한글은그기대의방향에따라다른이름으로불렸다.세종은자신이창제한문자에‘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이름을붙였지만,세종을포함하여당시사람들은진서(眞書)혹은문자(文字)로불렸던한문과한자에대비하여,훈민정음을‘언문’(諺文)이라고도불렀다.‘언문’이란한문과한자가주류인세상에서한글의쓰임은비주류영역에국한됨을말해주는이름이다.

근대에오면서언문은‘국문’(國文)이되었다.비록아주짧은시기였지만,민족과국가의의미가새로워지면서우리의말과문자도새롭게인식되었고,‘속되다’를함의할수밖에없었던‘언문’을더이상용납할수없게된것이다.그러나대한제국은곧일본에병합되었고,국문과국어는일문과일본어를뜻하는이름이되었다.우리말과글이주류영역을벗어나면서조선인들은‘국문’을대신할이름을찾았고,이에‘한글’이라는이름이탄생했다.

‘한글’은대한제국의글또는문자라는뜻으로사용되던‘한문’(韓文)을풀어쓴것이었다.‘국문’에대비된비주류문자의이름이었지만,나라를빼앗긴사람들에게‘한글’은독립의의지를일깨우는이름이기도했고민족의얼을상징하는이름이기도했다.‘대한제국의문자’라는의미는새롭게다가올수밖에없었고,상처입은민족적자존심을치유하기위해‘한글’에는‘큰’,‘위대한’또는‘유일한’이라는의미가덧붙었다.
1894년,고종이“법률·칙령은모두국문을기본으로하고한문으로번역을붙이거나혹은국한문을혼용한다”는칙령을내린뒤부터한글글쓰기는무한확장되었다.

한글글쓰기는한글신문의연대기속에서구체화되었다.『독립신문』에서시작하여『대한매일신보』에서분명해진한글신문의가능성은『동아일보』와『조선일보』를거쳐『한겨레신문』에서꽃을피운다.신문독자의요구를의식하며신문의글쓰기를조정해온한글신문의연대기는그렇게한글글쓰기확장의연대기와겹친다.

한글에대한자부심을민족에대한자부심으로승화하려했던이들은조선이식민지로전락한원인을‘표기법을통일하지못하고우리말사전하나편찬하지못한현실’에서찾았다.그러니한글에대한자부심을키울수록통일된표기법과우리말사전이없는현실에대한자괴감은더깊을수밖에없었다.가장문명화된문자를가진자부심과통일된표기법과모어사전이없는자괴감의괴리에서오는고통은결국민족어운동에나서는동기이자이유가되었다.

어문규범제정의연대기는규범을둘러싼연구와논쟁의연대기이다.한글창제의원리를밝히고한글쓰기의관습을정리하는연구는어문규범을제안하고이를관철시킬논리를세우는일이었다.일관성있는또는쉬운어문규범을정립한다는목표아래양보없는논쟁이끝없이이어졌다.나라의존립이위태롭던시절에도,나라가식민지로전락한시절에도,해방후에도,심지어현재까지도이처럼치열한논쟁이계속된이유는뭘까?이논쟁을추동한동력은뭘까?

사람마다그대답은다를수있지만,이책에서는논쟁의이유와논쟁을추동한동력을한글을대하는우리의특별한마음에서찾는다.그특별한마음은우리민족의우수성을보여줄증거인한글을발전시키는것이우리민족의발전으로이어진다는어문민족주의적신념이다.우리민족의발전이절박했던만큼한글의과학성과우수성을제대로발현할수있게어문규범을세우는일은절박한문제였다.어문규범을둘러싼논쟁의내면에는이처럼절박한어문민족주의적신념이충돌하고있었고,그런점에서어문규범제정의연대기는한글과우리말과우리민족의운명적관계를내면화하는연대기이기도했다.

한글의운명이민족의운명을결정짓는다는믿음

한글을소유한민족으로서의자부심은한글이문자의모든가능성을보일수있다는믿음이기도했다.한글이세계언어의모든음성을기록할수있어야한다고생각했으며,한글은문자와관련한모든문명의이기에가장적합한문자라고믿었다.9장에서서술한한글기계화의연대기는문명의이기가출현할때마다한글의과학성을입증하기위해애썼던우리말공동체의분투기이다.1914년이원익의한글타자기를시작으로공병우의한글타자기,송계범의전자뇌를이용한‘보류식인쇄전신기’개발까지한글타자기를만들어온역사그리고천지인자판으로대표되는휴대전화자판개발역사는한글기계화의역동적인분투과정이다.

한글의과학성을입증하기위한분투는우리말을표현하는특수문자를개발하는열정으로도이어진다.10장에서는한글전신부호,한글점자,한글지문자를소개하는데,한글을소유한우리말공동체의자부심이특수문자의개발로이어졌음을보여준다.

이처럼한글의운명이민족의운명을결정짓는다는믿음은한글연대기의내면을가득채우고있다.흥미로운것은암흑의시절에도그운명론은항상낙관적이었다는사실이다.그런낙관론은한글의과학성과우수성에대한믿음,한글을통한소통의효율성에대한믿음,한글의쓰임이확대될것이라는믿음이뒷받침하고있다.

그믿음은어디에서시작하여어떻게유지되고있는것일까?11장에서서술한한글날제정의연대기는곧한글을우리민족의자부심이자운명으로받아들이는과정의연대기이다.
국어학자최현배는한글날을국경일로지정해야하는이유로,“훈민정음은정히우리배달겨레의문화독립선언이요한글은문화독립의기초”이며,“한글의탄생은다만한종류의글자의생겨남이아니라실로그것은겨레의식통일의상징이요겨레문화의영원한발달의원동력”이라했다.한글의운명을민족의운명과연결지으면서,한글에우리말을표기하는문자이상의의미를부여한것이다.

한글날이10월9일로확정된해는우리나라가해방된1945년이다.1926년에11월4일을한글반포기념일로지정한후,한글날은음력과양력의환산법을바꾸면서10월29일과28일로날짜를조정한적이있었다.해방후한글날이바뀐것은1940년에한글의제자원리와창제동기등을정리한『훈민정음』이발견되었기때문이다.이책자의말미에적힌저술완결시점이1446년9월상한인데,이를통해한글반포일의근거가된『세종실록』(1446.9.29.)의기록,즉“이달에훈민정음이완성되었다”가해례본『훈민정음』의완성을뜻하는것임을알게된것이다.음력9월29일이던한글반포일을9월상한이란기록을기준으로다시조정해,10월9일로한글날을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