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석문화재단음식연구소
저자풍석문화재단음식연구소
저자서유구
본관은달성(대구),경기도파주장단이고향이다.조선성리학의대가로서규장각제학,전라관찰사,수원유수,이조판서,호조판서등고위관직을두루역임했음에도경학이나경세학보다는천문·수학·농학등실용학문에심취했던서명응(조부),서호수(부),서형수(숙부)의가학(家學)에깊은영향을받아,조선시대최고의실용백과사전이자전통문화콘텐츠의보고인《임원경제지》113권을저술했다.
토갱지병(土羹紙餠),즉‘흙으로끓인국이나종이로만든떡’처럼입으로만만리장성을쌓는관념적학문에염증을느낀풍석은,사대부라면누구나즐겼던시짓기도거의하지않았다.벼슬에서물러나있는동안고향인임진강변장단에서직접농사짓고물고기잡으며,술빚고음식만드는부엌을드나들면서,임원(林園)에사는선비로서가족을건사하고덕을함양하는데필요한전반적인실용지식을집대성하는데전념했다.이를위해조선과중국,일본의온갖서적을섭렵하여실생활에필요한각종지식을체계적으로모으는한편,직접체험하고듣고관찰한내용을16분야로분류,엄밀하게편찬저술하기시작했다.
관직에복귀한뒤호남지방에기근이들자굶주린백성을위해《종저보》를지어고구마보급에힘쓰기도했던풍석은,재야나한직에머물렀던당시의여느실학자와달랐다.실현가능한개혁을추구하는조정의최고위관료였고,농부이자어부,집짓는목수이자원예가,술의장인이자요리사,악보를채록하고거문고를타는풍류선비이자전적과골동품의대가,전국시장과물목을꿰고있는가문경영자이자한의학과농학의대가였다.
늙어벼슬에서물러나그동안모으고다듬고덧붙인엄청난분량의《임원경제지》를완결한그는경기도남양주두릉에서82세의일기를다했다.시봉하던시사가연주하는거문고소리를들으며운명했다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