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궁리하기』를요리책이라고속단하지말자.이제목은궁리의대상이무엇인지를밝히지않는다.그러니까부엌에서어떤요리를할까를궁리하는것이아니라,그저궁리하고있을뿐이다.굳이설명하자면‘부엌’보다는‘궁리’가더강조되는단어이고,궁리의목적어는이것저것이다.다시말해서삶에대한궁리이다.요리를하면서여러가지잡생각이많을수있지만,궁리는그런잡생각이라기보다는새로운어떤것에관한생각이다.‘사유’라는거창한말보다‘궁리’라고말하는것은매일매일에사사로운삶을이리저리새롭게기획해보는재미있는놀이의측면이있기때문이다.물론부엌에서요리를한다.그런데궁리하는공간인부엌에서저자가하는요리는반드시‘맛’을위한것이라기보다는맛과비슷하지만한획다른것인‘멋’과관련된다.그렇다고‘멋진’요리를하기위한것이라기보다는요리를하면서일상의지친삶을멋진꽃처럼피어나게하는궁리를하는것이다.이때저자가부여하고자하는멋은과하지도모자라지도않을만큼이다.마치베이킹을할때허용할수있는적당한당도를찾아내는것처럼,저자는삶을조금멋스럽게해주는적당한표현을찾아낸다.부엌에서이러저러하게궁리하는이이야기를독자에게권하는것은저자의궁리라는것이삶이란행복할수있다는믿음으로부터시작되기때문이다.‘프랑스’음식을이야기의재료로간혹삼고있는것도프랑스음식이아마도행복에대한믿음을자양분으로삼고있기때문일것이다.건강을위해서‘김떡순’에게저항하지만,저자는늘진다.저자는음식앞에서,행복한삶을위한욕망앞에서기필코자발적으로패배를선택한다.매일매일의일상이라는‘쑥과마늘’의시간에‘행복’이라는단백질을뿌리는이몽상가의부엌으로독자를초대한다.
책속에서
요즘누가“요리좀열심히하는것같던데요.”하면나는손보다머리가더고달프다고푸념을한다.진짜다.수더분한배우자같은일상의음식도애인의여우짓을보태면나름지루하지않다.반복적인것들에약간의창의적인노력이들어가면숨통이트이고재미를느끼게되는것같다.플레이팅이바로우리가할여우짓이다.궁리를해야가능한.
---p.19「연어로만든장미」중에서
가족들을한데모을수있는곳.편하게책도보고컴퓨터도켤수있는곳.부지런히수련하여망작이라도건져올리는곳.누가억지로가둔것도아닌데제발로부엌을서성인다.
---p.93「부엌은어쩌다가」중에서
세상에하나밖에없는음식은,평가를주저하게한다.꽤나고마운장점이다.
---p.133「나만의샐러드」중에서
우리만즐긴다고생각했던음식들이먼나라에서사랑받고있으면신기하고반갑다.식탁은우리가나뉘고섞이고편을먹었다가또혼자가되기도하는기묘한곳인듯하다.
---p.183「식탁위의경계」중에서
당근은여러군데겹치기출연하고도주목받지못했던조연배우같다.
---p.215「당근라테or라페」중에서
일상탈출시도에는꼬꼬의맹렬한날갯짓정도의공이든다.수피에르와은식기,이름은어렵지만맛은꽤친숙한꼬꼬뱅과함께한저녁은잠시아름답게낯설었다.
---p.224「꼬꼬와함께날기」중에서
내부엌에도낮달이많이떠있다.빗썰린실패한무조각들이다.보름달,반달,초승달이한꺼번에떴네!한번볼래?도마위의장관,모양다른달들이일렬로늘어선특별한우주쇼를보러오는이가아무도없다.쩝,서둘러어설픈달들을주워먹는다.달이달다.
---p.246「도마위의우주쇼」중에서
우리의관심과궁금함과안달은요리를향한열정의본질이다.자꾸만간을보다가끝내짜게만들고머리칼을쥐어뜯게도만든다.배가고파무언가를서둘러만들고,냉장고의묵은짐을덜기위해머리를짜내고,음식에도연지곤지찍어보는그런열심.누군가에게는영구히결여되어있거나아직개발되지않은,내안에충만했다가사그라지기도하는그런열정.불현듯찾아오는‘그분’을영접하기만한다면밀키트와맞짱뜰배짱정도는생길것이다.생각해보니요리자(요리사아님주의!)의자격은이거면충분하다.Iamstillhungry!
---p.254「요리자의자격」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