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던 한반도 빵 이야기

궁금했던 한반도 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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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대한민국 전역에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늘어가고 쌀소비는 줄어가는 상황에서 밀가루 제조 음식인 빵은 점점 주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저자 이창호는 1800년대 중반부터 빵이 조선에 유입돼 친숙한 음식으로 자리 잡는 과정은 물론 서양 식문화의 중심인 빵이 쌀 문화권 한국과 일본에 빠르게 정착한 배경을 설명한다. 특히 개화기 인천항 개항을 시작으로 밀려오는 근대화 물결 속에서 당연히 빵도 처음 접했다고 생각하는 일반적 견해를 넘어서는 내용을 명확한 근거와 자료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당시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근거자료는 표준어 정착 이전 용어나 한자가 많아 현대인이 알기 어려워 접근이 쉽지 않으나 책을 읽으면서 자료를 보면 이해가 쉽다.
디지털 디자인을 담당한 박진만은 책에 실린 자료를 독자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편집에 많은 시간을 들여 깨끗하게 만들었다. 제빵학과 학생이 100년 전의 레시피로 제빵을 시도하고 싶어도 당시 무게 단위, 재료 등 모르는 내용도 많을뿐더러 자료의 인쇄 상태가 가독성이 매우 떨어진다. 바로 이 문제를 저자와 디자인 협업으로 해결했다.
빵에 관심 있는 독자는 물론 제빵 및 조리학과 학생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저자

이창호

저자:이창호
1989년조선대학교치과대학을졸업했다.필명김다언으로『박인환,나의생애에흐르는시간들』등3권의저서가있다.2023년부터신문사인천투데이에‘100년전의문학과빵’으로연재를시작40편의글을발표했다.서문에“2002년초판번역본『빵의역사』(하인리히E.야콥)를읽으면서식문화와역사적관계등을새롭게돌아보게됐다.”라고밝혔는데이후인천항월미도소재사단법인꿈베이커리이사를맡으면서인천에남아있는개화기빵의흔적을찾기시작해결국한반도빵의근현대사를다룬책을만들게됐다.

목차

들어가며-한반도빵의역사를찾아서

1.200년전,서구식문화‘빵’의한반도전래

2.한반도최초의상업적제빵소

3.한반도빵의대중화

4.서양빵의발달사와한반도의빵

5.일본제빵산업의발달과정

6.거친통밀빵에서부드러운하얀빵으로

7.대도시별제과소의발달과특징
1)백화점등,현대화바람이먼저분‘경성’
2)일본인비율이매우높았던‘부산’
3)북선北鮮지역의중심도시‘평양’
4)경북지역신문물과제과산업의중심지‘대구’
5)일본인이많이살던항구도시‘군산’
6)월미도관광단지가만들어진‘인천’
7)사과양갱으로유명했던‘함흥’
8)남북단절이전해상무역의중심지‘해주’
9)기차역을중심으로제과소가발달한‘대전’

8.100년전의빵들
1)고급개떡보다맛과식감좋은‘카스텔라’
2)호밀아닌밀가루에설탕첨가한‘러시아빵’
3)일제의전시체제구축목적의일반인용‘건빵’
4)크기가작아비싸게여긴‘현미빵’
5)호떡에필적한국민간식‘호빵’의역사
6)절미운동일환으로잡곡이용한‘애국빵’
7)철도국운영호텔과열차식당서판매한‘철도빵’
8)잡곡섞고호박·과일등얹어만든‘찐빵’
9)술지게미로발효시켜쪄서만든‘술빵’

9.굶주린배를채웠던여타음식들

10.빵굽는화덕

11.빵판매처의패러다임을바꾼명치제과매점

12.카페현황과특성별분류

13.‘모던’과‘퇴폐’의카페

14.빵관련산업의성장
1)제분산업
2)제당산업
3)빵과설탕,합성감미료
4)식품위생과노점상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조선후기천주교는극심한탄압속에서도순교를두려워않던신도와사제가많았기에,포도주와빵은한반도천주교집단내에서비밀스럽게제조됐을가능성이있다.종교목적으로양반과평민을포함해소규모집단에서은밀한형태로빵을제조한역사가오랫동안존재했을가능성이있다는뜻이다.조선후기를지나대한제국에들어서서는문호가넓어져은밀한빵이필요없더라도상업적측면에서보면떡과의경쟁에서우위를차지할맛과상품성있는빵이바로나오기는어려웠다.기본적으로아궁이를사용하는쌀문화권에서빵굽는화덕이부엌에있을리없고,종교적이유가아니라면빵을먹고싶을이유도없던시기였던까닭이다.-26p

중세를지나시민사회가발달하면서옛독일인이쓴시에‘시의회에제빵사가들끓는곳은주민들에게곧해가닥칠것이다’라는대목이나오고,덴마크속담은‘시장이제빵사인곳에서는빵이언제나작다’라고말한다.이러한배경을바탕으로중세에기근이들었을때사람들은빵가게를습격해제빵사를죽이기도했는데,기근의원인이방앗간주인과제빵사의악행에있다고여겼기때문이다.-38p

전통적으로유럽의방앗간주인은도둑취급을받았다는데,그이유는대형물레방아나풍차를만드는일은고급기술에속했고,농민들은속절없이당하는처지에놓여있었기때문이다.그러나밀가루처럼제분과정없이쌀이나보리의알곡만을얻는한반도농민은동네의작은물레방아나절구를이용한수작업이가능해,유럽과차이가있다.유럽의방앗간주인에대한적개심은한반도에서지주나마름에대한적개심으로대치될수있다.결과적으로는서양의농민이나동양농민의삶에차이가없음을보여준다.-39p

경성과자상조합설립신청과부산의과자상광고를보면,1910년이전부터과자상이존재했고1910년대가되면부산의과자상들이단체광고를했을정도로영업이활발했다.당시부산에는과자재료공급에특화된제분공장도있었다.특히부산과자상광고는초기과자판매상의다양한특성을보여준다는점에서의미가크다.-67~68p

1948년〈평화일보〉를보면,대전의제과소여러곳이나란히광고를냈다.사진에나온곳외에도김종철제과소와강광식제과소의광고도있다.이처럼대전역을중심으로100년전부터발달한제과소가자전거배달뿐아니라신문광고를냈던치열한경쟁의틈바구니에서찐빵을팔며조그맣게시작한성심당이대전을넘어전국적명성을얻기까지의우여곡절과성장이야기는경이롭다.-10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