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다시 찾아옵니다 (괴테 수채화 시집)

계절은 다시 찾아옵니다 (괴테 수채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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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스-위르겐 가우데크의
수채화로 담아 낸 괴테의 시집
괴테는 독일이 낳은 유명한 시인입니다. 그런데 글 쓰는 재주뿐 아니라 스케치와 수채화 솜씨도 대단했지요. 덕분에 자연을 자주 담았던 그의 그림에는 늘 문학의 향기가 어려 있었습니다. 그는 연필과 물감으로 사건과 느낌을 깃털처럼 가볍게 포착했지요. 괴테와 친했던 요한 페터 에커만은 1837년에 괴테가 자기 문학 작품보다 〈색체론〉을 더 아꼈다고 적었습니다. 그 정도로 괴테는 자연과학에도 정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제가 괴테의 시와 함께 길을떠난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그의 작품에서 자연을 관찰한 시들을 골라 실었습니다. 그가 수없이 자연을 은유로 사용했기 때문이지요. 특히 자연을 놀이나 에로틱에 비유한 시들이 제 눈에 확 들었습니다. 괴테의 시에서는 사랑과 자연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이거든요. 제가 보기에도 대단한 그 둘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우리 인생의 모든 측면에서 반영되고 있으니까요.
또 그의 시 〈소네트〉에서 저는 자연과 예술에 대한 그의 중요한 깨달음을 발견했습니다.
저자

요한볼프강폰괴테

1749년8월28일독일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태어났다.비교적넉넉한중산층인가정환경속에서아버지의각별한관심과어머니의세심한배려를받으며유복하고행복한어린시절을보냈다.8세에시를짓고13세에첫시집을낼정도로문학신동이라알려져있다.교육에열정적인아버지덕분에어려서부터그리스어,라틴어등다양한언어와문학을접했다.1759년‘7년전쟁’의결과로프랑크푸르트에도프랑스군대가주둔하는데,군정관토랑백작이2년쯤집에머물렀다.이때프랑스문학,미술,연극에깊은관심을갖게되었다.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법학을공부했고문학과미술분야에도큰흥미와소질을보였다.1770년법학공부를계속하기위해슈트라스부르크대학교에다니던시기셰익스피어문학의위대함을실감하고,혁신적문학운동인‘질풍노도운동’을이끌었다.1772년에베츨라에있는제국대법원에서법관시보로일하면서알게된샤를로테부프와사랑에빠졌는데,이때의경험을소설로옮긴것이『젊은베르테르의슬픔』이다.『젊은베르테르의슬픔』(1774)은당시젊은세대에게큰공감을불러일으키며출간되자마자세계적인베스트셀러가되었다.이후『친화력』,『시와진실』,『빌헬름마이스터의편력시대』를펴내며문단에서활약한다.1775년칼아우구스트공작의초청으로바이마르공국의국정을책임지며교육,재정,건설,군사등여러분야의행정관으로10여년을보냈다.바쁜공무중에도꾸준히작품을발표했고,식물학,광물학등과학에도관심을기울였다.1794년독일문학계의또다른거장프리드리히실러를만나돈독한우정을나누며독일바이마르고전주의를꽃피웠다.필생의대작『파우스트』(1831)를탈고한이듬해인1832년여든세살의나이로영면했다.

목차

이른봄
순조로운항해
들장미
언제어디서나
3월
뮤즈의아들
하나의비유
발견
5월
바다의고요
기쁨
같은것
물위를떠도는영혼들의노래
이른아침,골짜기와산과정원
요정의노래
꽃인사
어부
호수에서
가을기분
〈서동시집〉에서
달에게
지금
연인곁에서
구름형성
여기에있는과거
잠에게
비와무지개
색깔리본
명심
여운
그리움
5월의노래
밤
만족하는사람
나그대들에게말하는건가요?사랑하는나무여.
그치지않는사랑
줄라이카에게
정원

출판사 서평

자연과예술은서로에게서달아나는것같지만,
우리가미처생각하기도전에다시서로를찾아내지요.
내마음에서도거부감이사라져
그둘이똑같이제마음을끌어당깁니다.

큰일을하려거든정신을바짝차려야합니다.
자제할줄알아야대가가탄생하는법이지요.
그리고법만이우리에게자유를줄수있습니다.

그런중요한메시지는괴테의수채화에서도적지않게발견됩니다.저는특히1787년에그린그의그림〈폭풍우치는바다〉를좋아합니다.강렬한프러시안블루의붓터치,몇곳에남겨둔하얀백지,빠른연필스케치로괴테는폭풍우몰아치는바다를멋지게수채화로담아내었습니다.
그리하여저도들과숲으로길을나서고드넓은바다에마음을빼앗기며나의시심을그림에담기위해괴테의자연시에흠뻑빠져봅니다.

저자_요한볼프강괴테JohannWolfgangvonGoethe
1749년8월28일프랑크푸르트에서태어났다.1765년에서1768년까지라이프치히에서법학을공부하였고,1770년슈트라스부르크에서학위를받았다.그곳에서괴테는요한고트프리트헤르더를알게되었고,그를높이평가하였다.1771년에는프랑크푸르트에서변호사사무실을열었다.
1770년대초반에《초고파우스트》작업을시작하였고,1771년에서1774년까지《괴츠폰베를리힝겐》을집필하였으며,1774년에는《젊은베르테르의슬픔》을출간하여질풍노도*의상징적인물로떠올랐다.
1774년에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공국의황태자카를아우구스트가괴테를바이마르궁전으로초대하였다.1775년괴테는바이마르공국의관료가되었고,1776년에는대공의명을받고국정에참여하였다.1782년에는황제요제프2세로부터귀족작위를받았다.
1786년관직의부담과궁정생활의답답함에서벗어나기위해이탈리아여행길에올랐다.그곳에서괴테는조형예술에큰관심을기울이는한편으로다시집필에몰두하여《이피게니에》,《타소》,《파우스트》,《에그몬트》를완성하였다.
1788년괴테는다시바이마르로돌아갔고,대공은그를국정에서해방해주었다.그러나내각에는계속남아서과학과예술기관을감독하였고,1791년에서1817년까지는신설된바이마르궁정극단을이끌었다.1788년에만난실러와괴테는1794년에친구가되었다.바이마르고전주의를이끈전설적인우정의탄생이었다.1795년에는《빌헬름마이스터의수업시대》1권이나왔고,1806년에는《파우스트》1부가완성되었다.괴테는자연과학연구와색체론집필을계속이어나가1801년에논문《색체론》을끝마쳤다.1812년에는루드비히반베토벤을만났고,1816년에는《이탈리아여행기》를,1819년에는《서동시집》을발표하였다.
1829년《빌헬름마이스터의편력시대》가완성되었고《파우스트》1부가초연되었다.《파우스트》2부의작업은1831년에끝났다.
요한볼프강폰괴테는1832년3월22일바이마르에서숨을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