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프롬이끝내남기지못한단한권의책
강의녹취록과미완성원고로완성된유고
『사랑의기술』,『자유로부터의도피』,『소유냐존재냐』를통해사랑,자유,소유,존재,인간소외의문제를깊이있게탐구해온에리히프롬.그러나프롬이평생가장오래몰두한영역은다름아닌정신분석치료였다.그는1920년대부터심리치료사로일했고,뉴욕과멕시코의정신분석연구소설립에참여하며정신분석가이자감독자로활동했다.사회심리학자,작가로서의명성이워낙컸기에,그가무엇보다먼저‘마음을듣는사람’이었다는사실은오랫동안가려져있었다.『듣기의기술』은바로그빈자리를채우는유고다.
이책은프롬사후에남겨진강연원고와세미나녹취록,미완성원고를바탕으로엮였다.특히1974년스위스로카르노에서뉴욕의심리학도들을대상으로진행한세미나의기록이중심을이룬다.준비된원고없이,자신의임상경험과사유를학생들앞에서자유롭게풀어놓은이기록에는이론서에서는만날수없는생생한프롬이담겨있다.
『사랑의기술』의저자는어떻게사람의마음을들었는가
프롬의임상현장과치료철학을가장가까이에서보여주는책
이책에서프롬은치료실안에서벌어지는일을구체적으로이야기한다.환자는왜자신의고통을제대로보지못하는가,분석가는어떤태도로그말을들어야하는가,꿈과저항은치료과정에서어떤의미를갖는가.프롬에게사람의마음을이해한다는것은단지그사람의어린시절이나성격만들여다보는일이아니었다.그가어떤가족안에서자랐는지,어떤사회속에서살아왔는지,어떤관계와직업과시대의압력속에놓여있었는지함께살피는일이었다.
『듣기의기술』은바로그런프롬의치료현장을가까이에서보여주는책이다.책에는환자들의사례,치료자와내담자의관계,꿈을해석하는법,마음의저항을다루는법,현대인이겪는불안과공허에대한프롬의생각이담겨있다.프롬에게좋은분석가는단순히환자의말을오래들어주는사람이아니다.말속에숨은두려움과방어,반복되는삶의방식,스스로도의식하지못하는진실을함께찾아내는사람이다.그래서이책의‘듣기’는상담기술이라기보다한사람을깊이이해하는태도에가깝다.
반세기가지나도변하지않은것들
프롬이꿰뚫어본현대인의병
이책의백미는9장과10장에있다.9장에서프롬은‘크리스티아네’라는스물여덟살여성의사례를세미나학생들앞에서직접분석한다.부모가정해준남자와결혼하고,한번도자기뜻대로살아본적없는여성.그녀가꾸는네번의꿈들을프롬은하나하나읽어나간다.꿈이어떻게우리가낮에는차마인정하지못하는진실을밤마다말해주는지,프롬의해석을따라가다보면자연스럽게이해하게된다.무엇보다이장이매력적인것은형식자체다.발표자가사례를발표하고,프롬이끼어들어질문하고,때로는발표자의표현을날카롭게교정하는세미나의현장감이그대로살아있다.
10장은한걸음더나아가현대인의신경증을치유하기위한구체적방법들을제안한다.자기문제에만몰두하지말고세상에관심을가질것,비판적으로사고할것,나르시시즘을인식할것,그리고매일자기분석을실천할것.프롬은자기문제에만갇혀사는것이야말로‘최악의치유법’이라고단언한다.풍요로운문화와사상,자연이눈앞에있는데도오직자신의고통만들여다보며앉아있는현대인의모습을그는거침없이꼬집는다.반세기전의진단이지만,스마트폰안에갇혀자기자신만들여다보는오늘날의풍경과놀라울만큼겹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