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법현실을 이해하는 틀로서의 법문화
정부와 시민, 노동자와 경영자, 노동자와 노동자,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교사, 교사와 교사, 의사와 환자, 부모와 자식, 지식인과 지식인, 거의 모든 관계들이 갈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분열 속에서 과연 법은 어떤 작용을 하며, 시민들의 법의식과 법행동은 어떠한가?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 답변하기 위한 시도로, 법문화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풀어간다.
그렇다면 법문화란 무엇인가? 한 국가의 법체계는 실체적 법규범, 법제도, 법문화로 구성되어 있다. 법규범은 구체적 규범의 형식을 갖추었기 때문에 법의 영역에서 가장 확인하기 쉬운 대상이고, 법제도의 경우도 법규범에 의해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확인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대개 법규범이나 법제도를 제외하고 법과 관련된 사태들을 일컬을 때 법문화라는 말이 사용된다. 법문화만큼 포괄적이고 다의적인 개념도 드문데, 문제는 이렇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법문화의 영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것이다. 때로는 법문화를 법에 대한 구성원들의 의식이나 태도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이러한 의식이나 태도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론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한국의 법문화를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한다. 첫째,인식의 문제로서 법문화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둘째,구조의 문제로서 법문화가 어떻게 구조지어졌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셋째,한 사회의 경제·정치·사회구조가 변화하듯이 법문화 역시 변화한다는 관점이다. 한국의 경우, 급격한 사회변화와 함께 법문화도 급속하게 변화해왔다. 이러한 법문화의 측면은 사회학에서 탐구되는 사회변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 책에서는 사회변동을 탐구하는 데 사용되는 거시적 변동과 미시적 변동의 과정으로 법문화의 변동을 살펴본다. 거시적 분석방법으로는 주로 통계적 방법을 활용해서 한국의 사적, 공적 영역에서 한국인들의 법행동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추적하고, 미시적 분석방법으로는 구체적 분쟁사태 속에서 사람들의 법의식과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추적한다. 위의 세 가지의 관점에서 지난 50여년간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법문화의 인식적 변화, 법행동의 변화 등을 설명한다.
특히 미아 1-1 재개발지구에서 발생한 분쟁을 다룬 제9장 “집단분쟁의 발생원인과 전개과정”에서 한국인들의 권리의식이나 법의식의 변화양상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분쟁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시사한다. 첫째, 이제 사회구성원들이 집단분쟁에 연루되었다 해서 반드시 과거처럼 물리적 힘의 행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 테두리 안에서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이다. 둘째, 전통적 표현방식(시위나 집회)과 더불어 법적 수단을 동시에 강구한다는 점이다. 셋째, 우리 사회의 주민들이 이제는 ‘법대로’가 행정관청의 독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히려 ‘법대로’가 주민 자신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데 어느 수단보다 유익하다는 것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넷째, 법원의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판단이 시민들의 법의식을 고양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집단행동의 과정에서 드러난 참여자들의 법의식이나 권리 및 공적 기관들에 대한 관념의 변화를 추적함으로써, 지난 30여 년간 변화되어온 한국인들의 권리의식이나 법의식의 변화양상을 잘 보여준다.
법은 한 사회를 지탱하고 운영하는 데 매우 필수적인 요소이다. 법질서가 혼탁하면 그 사회는 혼탁할 수밖에 없고, 법질서가 건전하면 그 사회는 건전하게 지탱할 수 있다. 법문화는 그러한 법질서와 법제도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폭넓고 풍부한 주제들을 통해 한국 법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갈수록 법현실의 복잡성으로 혼란스러워지는 현상황 속에서 많은 부분을 시사한다. 게다가 법문화의 과거와 현실에 대한 탐구를 통해, 앞으로 가꾸어갈 법문화에 대한 고민을 심화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