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몸 (새겨진 기억은 어떻게 신체를 작동시키는가)

기억하는 몸 (새겨진 기억은 어떻게 신체를 작동시키는가)

$16.06
Description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메모 습관, 있지도 않은데 아픈 다리, 왼손의 기억이 없는 오른손…….
장애를 가진 열두 명의 이야기를 토대로 밝혀낸 기억과 몸 그리고 정체성의 관계!
몸과 마음 중 어느 쪽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더 큰 비중을 차지할까?
삶은 시간의 두께를 더해가는 여정이다. 때문에 인간의 몸은 나날이 축적되는 시간의 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무 자르듯 구분하기는 불가능하므로 맨 앞의 문장은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여기에는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다. ‘나다움’을 형성하는 요소를 고려할 때 우리는 ‘신체’의 중요성을 쉽게 간과한다는 점이다. 실은 몸이야말로 한 사람의 오롯한 특질을 밀도 있게 함축하고 있는 데이터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루어진 몸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말 더듬는 몸(どもる?)』 등을 통해 신체장애가 있는 몸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지 소개해온 이토 아사의 신간『기억하는 몸』이 국내에 출간되었다. 저자가 열두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집필한 이 책은 총 11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부의 공통점은 하나뿐이다. 바로 장애가 있는 사람의 기억을 다룬다는 점이다. 인터뷰 대상자들에게는 시각 장애, 팔다리 절단, 마비, 말더듬, 치매 등의 의학적 또는 사회적인 장애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가 관심을 쏟는 부분은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 등의 측면보다는 개별적인 신체의 고유성 그 자체다. 저자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한 명 한 명의 처지와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인생 안으로 깊이 들어간다. ‘어떠한 장애가 있는 몸’이 아니라 단지 ‘A 씨의 몸’이 지닌 능력과 가능성에 접근하는 독특한 방식은 이 책에 사려 깊은 시선을 부여한다.
저자

이토아사

1979년도쿄출생.미학과현대예술을전공했다.취미는녹취풀기.인터뷰를할때는깨닫지못했던목소리의결이나감정변화가느껴져오싹해지곤한다.원래는생물학자를꿈꾸었으나대학교3학년때전향하여도쿄대학대학원미학예술학박사과정을수료했다(문학박사).현재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객원연구원이며,도쿄공업대학리버럴아트연구교육원부교수로재직중이다.주요저서로『발레리의예술철학,혹은신체의해부』,『눈이보이지않는사람은세상을어떻게보는가』,『앞이보이지않는운동선수의신체론』,『말더듬는몸』등이있다.

목차

프롤로그|몸의고유성

에피소드1|메모하는맹인여성
갑자기앞이깜깜해지다
진공팩에보존된능력
되돌아가밑줄을칠수있다
신체와두뇌의상호작용
이미지에의한피드백
종이뿐아니라책상까지본다
그림속에서헤매다
매일관광버스단체여행중
여기저기흩어진나를되찾다

에피소드2|봉인된색깔
0=짙은분홍,1=어두운하양
점자를만지면머릿속이번쩍거린다
머릿속이미지
원하지도않았는데다가온다
색깔을할당하다
머릿속이번쩍거리는현상의원인
추상화의중단
봉인된색깔
색을섞을수없다
비밀의화원

에피소드3|요령이기능을보완한다
제어라면자신있다
자동제어에서매뉴얼제어로
하반신과잉보호의시기
다리의재발견
기억과현실의어긋남
남는것은형태가아니라운동의기억
환지발가락과발바닥
절단이후에생긴요령
잘쓰는쪽다리의변화

에피소드4|아프지않지만아픈다리
선천적장애인의몸에서일어나는일
다리의기능이팔에도있다
계단에착붙는움직임
어디까지나자동제어
온기를느끼지못하는다리
다리에의식을기울이다
오른쪽다리에게는미안하지만
아픈것같은느낌
고무손착각현상
감각을예측하는뇌

에피소드5|문화적으로설치된감각
집단적기억
‘자리가다섯’인레스토랑
경험의패턴
서로다른묘사
분위기인가추체험인가
등뒤에서느끼는기척
추리소설과보청기
후천적인귀
갓난아기같은소리
들리지않기때문에들린다

에피소드6|장애와테크놀로지
보이지않지만존재하는손
몸속에들어온환지
시시각각변하는헛통증
팔의마지막기억
거실이연구실로변하다
흥미로워지기시작했다
장애와테크놀로지
팔의기억이향하는곳

에피소드7|왼손의기억이없는오른손
기억의부재
의수와의거리감
사회적인기능
양손의감각을모른다
오른손이왼손을원하지않는다
이름같은것
변화를앞두고

에피소드8|가상현실을통한훈련
전통의상을입은구도자
목소리를내어내몸을깨우다
속세를떠나서
헛통증완화VR
딱맞아떨어지는순간
양손의감각을떠올리다
텔레비전화면한가운데하얀손
가상의손이미지를교체했다
아무도걸어본적없는길

에피소드9|저마다의고통과체념의힘
‘재일조선인3세’ב난치병’의이중소수자
저린발,가는손
샌드위치가날아가버리다
의식하지않는기술
여름에는장작불,겨울에는바늘
이것은내가아니다
몸에서빠져나올수없다
이미아픔은나누어가지고있다
‘헌신’도아니고‘밀쳐내기’도아닌
안심하고절망하기

에피소드10|말더듬의플래시백
듣기좋은말투
보는것조차두렵다
일인칭대명사를통일하다
안정적으로흔들리는법
꽃이말해주다
플래시백의공포
끌려들어가는현상
말하는시스템의취약함
기억은자신을초월한다

에피소드11|기억할수없는몸
언어화할수없는부자연스러움
도무지알수없다
감을잃어버리다
몸에맡길수없는어려움
자기자신을되찾는탐정
객관과실감의격차를메우는법

에필로그|신체의고고학

출판사 서평

한사람의몸은정말하나뿐일까?
:하이브리드신체론에관하여

바쁠때우리는종종“몸이두개였으면좋겠다”는말을한다.물리적으로는분명단하나의몸으로살아갈수밖에없기때문이다.이른바1인1몸이다.그런데인터뷰를진행하면서저자는한사람의몸이마치여러개로중첩된듯기능하는독특한현상을발견해내고,이를‘하이브리드신체’혹은‘몸의복수화(複數化)’라는개념으로제시한다.
우선,후천적장애인의몸에는종종‘장애를입기전몸의기억’과‘현재의몸’이겹쳐져,상식적으로생각하면약간불가사의해보이는갖가지현상이일어난다.예컨대성인이되면서시력을완전히잃은시각장애인레나씨는말하면서언제나메모하는습관이있다.단지필기구를사용하는데그치지않고조금전에글씨를썼던곳으로되돌아가강조하기위해동그라미를치거나밑줄도긋는다.이전에써놓은글자로되돌아갈수있다는것은메모행위가영상처럼기록되어머릿속에이미지로저장되었음을의미한다.레나씨는손의운동기억을단지재생하고있을뿐아니라종이를‘보고’있는것이다.

장애가있는사람을만나면‘이사람의몸은정말하나뿐일까?’하는생각이들때가있습니다.물리적으로는몸이하나지만실제로는두개의몸을사용하는듯보이거든요.예를들어앞에서얘기한니시지마레나씨는전맹(全盲)인데도대화를나누면서메모하는습관이있습니다.장애가없었던시절의습관이맹인이된지10년이지나서도없어지지않은것입니다.레나씨는앞이보이지않는몸으로살아가는동시에앞이보인다는전제를깔고몸을다룹니다.(중략)현재살아가는몸은장애가있다고해도기억속에는건강했던시절의경험이쌓여있습니다.비장애인의기억이새겨진몸으로장애를지니고살아가는일,이것이그들의몸이하나가아닌둘로보이는원인입니다.‘다중인격’이아니라‘다중신체’인것입니다.-본문중에서-

후천적장애인에게만몸의복수화가일어나는것은아니다.선천적장애인에게서도하이브리드신체의경향을발견할수있다.이를테면이분척추증이있는간바라겐타씨는상반신에는아무런이상이없지만감각이없는하반신은움직일수없기때문에위아래로전혀다른유형을지닌두개의몸으로살아가고있다.때때로그에게는상반신에서경험한기억이하반신으로옮겨지는일이벌어진다.예를들어통증의경험이그러한데,간바라겐타씨의발은생리적으로통증을느낄수없지만,피가나는것을보면마치아픈것처럼느껴진다고한다.
선천적인시각장애인이나청각장애인중에는독서를좋아해서책을통해비장애인의관점이나감각을몸에익히는사람도있다.생리적으로는장애가있을지언정문화적으로는비장애인의몸을획득한셈이다.또한비장애인중심인세계에이물감을느끼면서도그안에서자기만의몸을만들어가며공존시키는수많은사람들도있다.
생태심리학이나신경심리학등의분야에서는이러한현상이주목받아왔다.그러나미학을전공한저자가한영역에국한되지않은시각으로서술하는다양한사례들은오히려우리에게강렬한인상을심어준다.전문가에게만알려져있던현상을신선하고도쉬운문장으로일반독자들에게소개하며지적인탐구로이끄는책이다.

나와다른몸을가진타인을어떻게이해할수있을까?
:압도적인고유성을발견해내는일

『기억하는몸』은다소특수한사례를통해기억과몸의관계,그리고경험이만들어내는신체적지혜에대해고찰하지만,여기에담긴통찰은모든사람에게적용된다.사실상세상에특수하지않은몸이란없기때문이다.당신과똑같은순서로옷을입고똑같은보폭으로걸으며똑같은속도로호흡하고똑같은각도로컵을기울여물을마시는사람은존재할수없다.
무의식적인습관이나경험,기억이우리의몸을어떤식으로작동시키고자기만의고유성을만들어내는지,그동안보지못한매력적인방식으로풀어가는이책은또한개개인의차이에온전히집중함으로써오히려타인을섬세하게이해하려는적극적인몸짓의산물이기도하다.이런결과물이탄생할수있었던것은인터뷰어와인터뷰이사이에형성된신뢰가한몫한것으로보인다.저자의비판단적인자세는상상하기도어려웠던누군가의서사를세밀하게끄집어내며,담백한서술은의도치않은경이를불러일으킨다.이에소설가김초엽은다음과같은평을남겼다.“장애인의신체를멸시하거나낭만화하지않으면서도,그신체만이갖는‘압도적인고유성’을발견해내는저자의섬세한시선이책을덮고난이후에도긴여운을남긴다.”우리가잘알지못하는세계가있다면,앞으로는그에대해한번쯤은이렇게생각해볼수도있을것같다.단순히잘모른다기보다는,애초에알려고도하지않았던건아닐까?하고.

‘A씨의몸’은실제A씨만체험할수있습니다.진정한의미에서는본인이아니면‘A씨의몸으로살아가는일’이어떤감각인지알수없는노릇입니다.그렇지만몸의내력을알게된다면더는타자의몸이미지의대상은아닙니다.-본문중에서-

저자는말더듬이당사자들과이야기나누었던일화를언급한다.“만약눈앞에말더듬을고칠수있는약이있다면먹겠습니까?”라는질문에그자리에있던모든사람이먹지않겠다고대답한것이다.사회적으로장애는보통부정적인것으로인식된다.물론많은장애인들이어려움을겪는것도틀림없는사실이며,저자와직접대화했던당사자들도‘애쓰거나의식하지않아도말이술술나오는감각’을체험해보고싶다고말했다고한다.그런데도말더듬증상이영원히사라지는약은필요없다고한것은어떤의미일까?장애자체를자신의정체성으로받아들였기때문이라고짐작해볼수있겠지만저자는거기에서한걸음더나아간다.

중요한것은말더듬을비롯해어떤장애를가진인간으로서‘존재한다’는것이아닐까요?아니면,장애가있는몸과더불어살아가고,무수한탐색과요령을쌓음으로써,조금이라도자신에게편한몸을만들기위해분투해온기나긴시간의축적이야말로,유일무이하고무엇과도바꿀수없는몸으로그사람의몸을만들어주는것은아닐까요?한마디로○○이라는‘속성’이아니라자기몸과함께지내온‘시간’이야말로그사람의신체적아이덴티티를형성하는것이아닐까요?(287쪽)

『기억하는몸』은시간의축적을통해형성되는몸과정체성의관계에대해이야기하고있지만그렇다고해서과거의기억만이전부라고주장하는것은절대아니다.우리의몸은역동적이고유동적이다.우리는자신의몸에개입할수있다.시행착오끝에요령을발견할수도있고,다른사람의도움을받아자기몸의가능성을새로발굴해낼수도있다.내의지로어찌할수없는자연의몸이있는가하면,동시에의식적인개입이가져다주는인위적결과로서의몸이공존한다.바로그점이인간신체의무궁무진한가능성임을보여주는,놀랍고경이로운몸에관한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