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에게 차를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예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차를 마시는 일에 대해 신성한 마음까지 지니고 있다. 향이나 술, 돌에 대해 쓴 전문 서적이 있듯이, 차에 대해서도 많은 전문서가 나와 있다. 차를 마시는 습관은 다른 어떤 습관보다도 두드러지며, 중극인의 일상생활을 대단히 풍요롭게 해준다. 유럽의 카페와 마찬가지로 중궁의 다관(茶館)은 중국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다. 다관에만 있으면 어디서건 중국인은 매우 기분이 좋아진다. - 린위탕(林語堂)
하루의 생활 속에서 가장 기쁜 순간의 하나는 오후의 산책에서부터 약간 피로해 돌아와서 홍차를 가져오는 것을 기다리는 순간이다. 제일 편안하고 느슨한 기분이 되는 것은 아마도 홍차를 마시는 시간일 것이다. 처음 한 잔에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고 다음 한 잔에 얼마나 멋스러운 맛을 느낄까. - 조지 기싱
전세계 170여 개국 몇십억 인구가 하루에 20억 컵이나 마시는 세계 제일의 마실거리 "차"
차(茶, Tea)가 인류문명사에 엄청난 재앙과 기회를 가져다준 두 건의 전쟁 ― 1773년 보스턴 티파티 사건과 너무도 유명한 1839년 아편전쟁 ― 의 도화선이 되었다면 당신들은 그 사실을 믿을 것인가. 전세계 170여 개국 몇십억 인구가 하루에 20억 컵이나 마시는 세계 제일의 마실거리 차. 그리고 지금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50여 개국에서 생산되며, 서유럽문명사에서 그토록 선취하고자 앞다투어 중국에 닻을 내리게 했던 것이 바로 차이다. 커피와 티광(狂)이던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스위프트는 언제나 같이 차를 마셨던 한 여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차는 우리를 진지하고 매력 있고 철학적이게 해줍니다. 나는 당신이 교양인, 좋은 어머니, 완벽한 주부, 그리고 훌륭한 티마니아가 되기를 바랍니다. (…) 나의 최고의 처세훈(訓)은 차와 커피를 마시는 일입니다. (…) 좋은 인생이란 재산과 건강, 그리고 차와 커피를 마시는 일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믿습니다."
이처럼 차는 우리의 실생활과 관련하여 마시는 음료의 수준을 뛰어넘어 이제 교양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 그것은 반드시 유럽적인 문화유산만이 아니었다. 차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부터 차문화는 하나의 교양인이 갖추어야 할 요소임을 분명히 했다. 다만 중국에서 전래된 차가 유럽으로 전파되어 유럽의 문화적 상황에 맞게 정착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차문화 속을 한꺼풀 뒤짚어보면 동서양의 지식인 문화는 물론 음식문화와 예절 등 다양한 문화사 전반을 탐험할 수가 있다.
'차'를 통해본 동서문명과 정신문화의 대교류사
이 책은 서양문화사·지성사를 중심으로 유럽 문화 전반에 대해 폭넓은 연구를 해오고 있는 이광주 교수의 동서양 차문화 이야기를 다룬 고품격 에세이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곳곳에서 본인이 차를 좋아할 뿐 차 전문가는 아니라고 누누이 언급하고 있지만,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면 독자들은 저자가 얼마나 차에 대해 박식하며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차에 대해 그렇게 소소한 것까지 알고 사료를 뒤져내고 그것을 하나의 고급교양서로 묶어냈는지에 대해 놀라게 된다. 더욱이 서양사학자이면서도 동양의 차문화에 대해 체계적이면서도 그 흐름을 명쾌하게 짚어내는 경지는 문화사가로서의 모든 것을 겸비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차의 본고장 중국과 차문화의 기원 육우의 <다경>(茶經)
저자는 우선 차의 본고장 중국을 여행한다. 최초의 다인(茶人)이면서 최고의 다인이었던 육우(陸羽)와 그가 남긴 차에 관한 최고의 고전 <다경>. 물론 차는 육우 이전 시기에도 사람들이 애용해왔다는 문헌들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차문화로서 차에 대한 격식과 차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고 인류문화에서 기호품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현종대(735년)에 들어와서부터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을 기록해놓은 문헌쯤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만 사실 <다경>으로부터 인류의 차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 책은 동양의 차문화에 관한 한 최고임은 중국의 송·원·명·청를 가릴 것 없이 역조(歷朝)에 걸쳐 복간되었고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에도 전해져 각 문화권에 맞는 독특한 차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동양 차문화의 본질 ― 다선일미(茶禪一味)
육우의 <다경>, 더 나아가 동양의 차문화는 다선일미로 요약할 수 있다. 비록 궁정문화에서는 격식을 차려 화려한 차문화가 나름대로 존재했지만, 그것을 곧 동양 차문화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송대(宋代)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육우를 '차 미치광이'라 읊었는데 다선(茶仙)은 분명 은일(隱逸)이었다. 그렇다고 육우가 노장사상에 기울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인도에서 전래된 선(禪) 사상이 자연스럽게 차문화와 결부되면서 풍류와 놀이를 뜻하는 무위자연적 차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명대(明代)의 다인 허차서(許車 )가 지은 <다소>(茶疏)에는 육우의 다풍(茶風)을 기리며 "차란 소박한 심성을 지닌, 서로 탈속한 이야기들을 한가롭게 나누며 즐길 수 있는 벗과 더불어 마시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한 것도 결국 다선일미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차문화를 더욱 풍류있게 만드는 도자(陶瓷) 문화의 극치
차와 더불어 우리는 도자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도기 역시 중국은 인류문화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나라였다. 유럽도자기의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마이센의 도자기나 영국의 본차이나, 웨지우드 등이 모두 중국 도자 문화의 전래에 의해 탄생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중국의 도자 문화는 세계 음식문화사와 예술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데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금기는 귀족문화가 난숙하게 꽃핀 당대(唐代, 618∼907)였다. 우리가 잘 아는 당삼채(唐三彩)가 바로 그 절정이다. 당 말기에 들어서 도자기는 실용적인 생활용기로 대량생산되었으며, 고려와 타이, 베트남에 이어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유럽에 전해졌다. 한가지 놀랄 만한 점은 도자기 역사상 최초로 정리가 잘된 문헌적 사료가 육우의 <다경>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육우와 <다경>을 빼놓고는 동양의 차문화를 거론할 수조차 없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유럽의 차에 관한 책에서도 육우의 초상과 <다경>이 크게 소개되어 있고, 중국을 본받아 육우의 초상을 간판에 내건 다상(茶商)이나 카페를 런던, 빈 등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니 육우와 <다경>은 동양문화권을 넘어서 서양 차문화에도 대단한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일본의 차문화 ― 지나친 격식과 엄숙주의가 차문화의 본질을 훼손한다
중국의 차문화는 일본에도 전해져 일본 고유의 차문화를 형성하였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선사를 세운 선사(禪僧) 에이사이(榮西, 1141∼1215)가 송나라에 갔다가 1191년 귀국하면서 차 종자를 들여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 독특하게도 일본 차문화는 선종을 신봉한 무가(武家)들 사이에 퍼지면서 형성되었는데, 무사문화 특유의 '격식 엄중'함이 다례(茶禮)의 근본이 되었다. 중세 봉건기의 막부정치를 통해 형성된 무사계급의 문화가 차문화에도 그대로 흡수되어 선(禪)의 본질을 이루는 융통무애(融通無碍)의 경지보다 법도를 받아들이는 데 급급했던 것이다. 양식에 꽉 짜인 완벽한 격식주의 속에서 일본의 차문화는 차문화 고유의 풍류와 놀이를 저버린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저명한 미술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는 일본 다도(茶道)의 역사를 공죄(功罪) 비등한 것으로 비판하며 '차'가 '도'(道)일수록 사이비 차가 된다고 하였다.
유럽문화 자체를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킨 문명충격 ― 차와 커피의 전래
이제 서양의 차문화로 넘어가보자. 미국의 <라이프>지는 1997년 새천년을 앞두고 지난 천년의 세계사적 대사건 100가지를 선정·발표하였는데, 그 가운데 차의 유럽 전래가 초래한 삶의 패턴의 변화를 28위로 올려놓았다. 그만큼 차는 서양문명 자체를 뒤흔들어 놓았던 영물(靈物)인 셈이다. 아울러 <라이프>지는 커피의 보급을 78위로 꼽았다. 에티오피아를 원산지로 한 커피도 고대로마 시인이 '젖 내음이 풍겨오는 ' 땅이라고 읊은 동방의 '행복한 아라비아'에서부터 세계를 돌고 돌아 서양세계에 전해졌다. 차와 커피. 왜 서양 사람들은 그것에 미쳤을까. 1732년 무렵 바흐의 작품 [커피 칸타타]의 한 구절을 들어보자.
"천 번의 키스보다 달콤하고
메스컷 와인보다 부드러운 커피
커피가 없으면 안 되요
저를 예뻐하시거든
오! 커피를 가져다주세요"
이처럼 커피는 유럽인들에게 17세기 중엽에 이르러서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기호품으로 자리잡았다. 사실 유럽인들에게 커피와 차 이전의 기호품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와인과 맥주였다. 그만큼 유럽인들은 항상 몽롱한 상태로 하루하루의 여가를 즐겼다. 파리의 경우 17세기 중엽에 1년 중 무려 103일이 페스티벌이었다고 하니, 남녀노소 모두가 축제에 흥청거리고 술독에 빠졌던 것이다. 이러한 일상문화에 커피의 출현은 가히 '혁명적' 사건이라고 언급한 프랑스의 저명한 역사가 미슐레는, "(커피) 혁명의 열광은 새 풍속을 창출하고 사람들의 기풍을 바꾸게 하니, 루이 14세 치하의 살롱과 선술집을 대신하여 카페가 등장하였다"고 찬탄하였다. 커피, 그것은 차와 더불어 지난날 중세적인 검과 술의 전사(戰士) 문화에 종지부를 찍고 우아함을 뽐내는 여성 중심의 사교 문화를 꽃피게 하는 한편, 만인에게 열린 자유로운 담론의 카페 문화를 개창하였다.
유럽 차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교양문화'의 탄생 ― 살롱, 아카데미, 카페
차와 커피의 등장은 흥청망청하던 유럽인들이 일순간 교양인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유교 문명권의 이상적 인간이 군자·선비이듯이, 유럽의 경우 교양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교양인들은 살롱과 아카데미, 카페 문화에서 여실히 들여볼 수 있다. 살롱의 귀부인 스탈 부인(1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