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원전번역으로만나는『검은피부,하얀가면』
20세기후반탈식민주의비평의고전으로자리매김한이책은오랫동안국내에서주로영어판으로소개되었다.1990년대후반에한국어번역본이처음나왔지만영어판에서옮긴중역이었다.『검은피부,하얀가면』의영어판은읽기편하고의미가비교적명료한데이는불어원문의충실한번역이라하기어렵다.(파농전기를쓴데이비드메이시도이런영문판의결함을지적한바있다.)파농이이십대에쓴이책의원문은결코친절하게쓰인글이아니다.때로는시적수사와선언적문구가툭툭튀어나오고,때로는의식의흐름을따라가는듯한복잡한심리학적서술이이어진다.『검은피부,하얀가면』에는알제리혁명기에쓰인파농의후기글들과는사뭇다른독특한문체와서정성이담겨있다.
파농은프랑스의리옹의과대학에다니던스물다섯살무렵에이책을썼다.애초에학위논문으로준비하던이책의원제목은‘흑인의탈脫소외에관한시론’이었다.이책을이루는근간은크게두가지다.하나는인종주의ㆍ식민주의에대한심리학적(정신분석적)분석이다.정신과의사가되고자했던파농은프로이트,융,아들러를비롯해당시로선널리알려져있지않던라캉의정신분석이론까지끌어와흑인을포함한유색인의심리를면밀하게분석한다.이처럼인종문제를심리학과정신분석의관점에서분석한저술은그때까지거의찾아보기어려웠다.이책이출간되기두해전에나온옥타브마노니의『식민화의심리학』(1950)이유일한사례이나,파농은4장「이른바식민지인의종속콤플렉스」에서마노니가백인/주인/식민지배자의편견에서벗어나지못했음을준엄하게비판한다.『검은피부,하얀가면』은백인문명아래서성장한흑인이흑인의시각으로흑인의실존을해체하고재구성해가며써나간최초의인종주의심리학저서이다.
이책을이루는또하나의근간은마르티니크인의혼종적정체성이다.파농은중앙아메리카서인도제도의프랑스령마르티니크섬출신이다.앙티유군도에속하는마르티니크는17세기이후줄곧프랑스식민지였다.인종적으로는흑백혼혈이대다수인이곳사람들은스스로피지배자라기보다는프랑스인으로여긴다.책에서파농이언급하는마르티니크인또는앙티유인은피부는거무스름하지만정신적으론이미‘백인’이다.그러나본토인프랑스땅에들어서는순간그들의‘하얀가면’은적나라하게벗겨진다.
그렇기에이런앙티유인의정체성은인종주의심리학을구성하기위한최적의조건이된다.앙티유인은백인을닮고싶고,백인에동화되고싶은모든유색인의자화상이다.백인은문명인이요,검둥이는야만인이라는백인중심의인종주의도식이이미그들에게체화되어있는것이다.
책의구성
『검은피부,하얀가면』은앙티유사람파농의자기비판,자기성찰에서출발한다.그것은곧백인세계에서흑인이보이는태도에대한자기반성이기도하다.
1장「흑인과언어」는앙티유인에게‘프랑스어’가갖는위상을다룬다.그들에겐정확한프랑스어가곧‘하얀가면’이다.어눌한프랑스어는검둥이의징표다.
2장「유색인여성과백인남성」과3장「유색인남성과백인여성」은백인선망,즉백색신화에물든식민지인의초상이다.파농은앙티유출신의여성작가마요트카페시아의『나는마르티니크여자』,세네갈작가압둘라예사지의『니니,세네갈의물라토여인』,앙티유출신으로아프리카식민지의관료를지낸공쿠르상수상작가르네마랑의『다른이들과똑같은한남자』같은작품들을분석해그실상을추적해나간다.이들작품에등장하는피부색에기초한인종의드라마는곧식민지현실의거울이다.유색인여자는백인남성과결혼하고싶어하고흑인남성은어찌해서라도배제한다.또유색인남자는흑인여성은멀리한채백인여성과결혼해인정받길갈망한다.
3장까지가현실진단이었다면,4장부터파농은본격적으로식민지인(흑인)에게내재된심리기제를파헤친다.4장「이른바식민지인의종속콤플렉스」에서파농은식민지배의심리학을연구한선구자인정신분석학자옥타브마노니의『식민화의심리학』을비판적으로검토한다.마노니는토착민과식민지배자의관계를지배하는심리현상을,식민지배자의권위(지도자)콤플렉스와식민지인의종속콤플렉스로풀어내는데,파농은이자체가백인중심의시각이라고질타한다.
5장「흑인의실제경험」은자신이흑인임을자각하게되는,하얀가면이벗겨지는체험을통해자신의‘흑인됨’과대면하는흑인을다룬다.이때중요하게등장하는개념이마르티니크출신시인에메세제르에게서가져온‘네그리튀드N?gritude’이다.흑인의고유한문화적주체성을표방하는네그리튀드에대해파농은그것이흑인의인식을전환하고확장하는데기여했음을인정하면서도그과거회귀성과아프리카본질주의와는분명한거리를둔다.
6장「흑인과정신병리학」은흑인심리에대한정신의학적해부이며,7장이후는스스로에게서배제되고소외된주체가소외를극복하고자기존재를실현할가능성에대한긍정이다.
‘검은피부,하얀가면’의언어
이책은서유럽형이상학의허구성,존재론의허구성을꿰뚫는과감성,시와산문을자유로이묶고푸는형식의개방성,개인적체험과객관적분석이서로갈마드는내용의도발성,낯선크레올어휘를흩뿌린문장들의이질성등이하나로만나기묘한무늬의만화경을이룬다.
파농의모든분석과이론,또선언적이념은그만의독창적언어로표상된다.파농의책은그가구술을하면누군가그것을받아쓰는방식으로초고가나왔다.그방식이처음적용된것이이책이었다.비범한리듬과호소력짙은감수성은이렇게목소리의울림으로만가능한방식에빚진것이기도하다.
파농에게언어는단순한소통의수단이아니며최상의이데올로기적도구다.파농은식민지언어환경의양면성을수차례강조한다.그는유색인이나아랍인에게검둥이식반말(프티네그르)이아닌반듯한프랑스어를써야한다고했다.전기작가들에따르면파농은일상에서대화를나눌적에는거리낌없이서인도제도특유의크레올어도구사했다.하지만공적영역에서크레올어사용은함부로해선안될행동이라보았다.식민지에밴지배의형상을지우지않고아무렇게나쓰는크레올어는존중이아니라편견이된다.식민지현실이그렇듯크레올어는분명양가적이다.크레올어는모어로주체의언어가될수있지만한편으론그가속한사회와계급을규정하는피지배의낙인이될수도있기때문이다.
인종주의와정신분석
이책에는프로이트,아들러,융,마노니에서안나프로이트,제르멘게,헬레네도이치,피에르자네까지숱한정신분석가가등장한다.파농이정신분석에얼마나진지한관심을기울였는지알수있다.게다가그는이책에서마치자신을대상으로분석수련을하듯철저하게스스로를해부했다.
파농은특히라캉에게서상당한영감을얻은것으로보인다.‘거울단계’나‘이마고Imago’같은개념의사용에서그런흔적을읽을수있다.‘거울단계’는라캉정신분석의초기이론을대표하는데,이단계에서이루어지는자아의형성과주체의소외문제는파농이식민지흑인의심리상태를이해하는데중요한근거가된다.생후6개월된유아는거울에비친자신의모습을총체적인것으로착각하고그이상적자아와자신을동일시한다.이‘상상계’의국면에서거울에비친상이곧이마고다.이를식민지상황에적용하면,식민지흑인이거울속에서마주하는대상은백인이다.흑인의이상적자아는백인인것이다.6장「검둥이와정신병리학」주25에서파농은거울단계를가지고흑백심리를길게논의하는데,이때앙티유의10~14세아이들이작문을하면서‘파리아이들’처럼이야기하는사례를든다.“나는방학을사랑해요.왜냐하면들판을가로질러달리고,맑은공기를들이마시고,두뺨이발그레해져서돌아올테니까요.”마치자신이백인아이인것처럼“뺨이발그레해진”다고표현하는것이다.
반대로,백인에게흑인은진정한‘타자’이다.그들에게흑인은이상적대상이아니라공포와두려움의대상으로존재한다.흑인은백인이라는타자의정신에결박된존재다.흑인의의식은백인이라는타자의눈길을거쳐서만자신을객관화(상대화)하게된다.흑인은제안에선흑인이아니다.그러나그는타자의눈길앞에서자신의검은피부색,흑인의신체도식을벗어날수없다.
유색인이원하는것은한가지,존재의자리로상승해어엿한사람이되는것이다.그런데사람이되는길은백인이될때뿐이다.유색인은자기로인정받기보다백인으로인정받고싶다.이책의선언과분석은유색인이흑인임을인정하는과정이기도하다.다시말해,역사적으로나사회적으로오랫동안우월적지위를누린유색인이언제든검은나락으로떨어질수도있는검둥이의정체성을당당하게인정하게되는과정,피부색편견을지닌자의특수성을극복하고흑인보편성으로나아가는길로보인다.하지만파농의진면목은인정투쟁에휘말린흑인의존재가자기정체성을인식할때거짓술수가끼어든다는것을지적하는데있다.식민지인은식민지배자가심어준형상으로자신을바라본다.따라서정교한자기해체없이는올바로자신을볼수없고여기에파농이심리학과정신분석을전유하고자했던이유가있다.
그렇다고파농이정신분석학에완전히매몰된건아니었다.오이디푸스콤플렉스에관해선날선비판을가했다.프로이트,아들러,융의정신분석이흑인을고려하고있지않다고비판한다.“프랑스령앙티유의가정가운데97퍼센트에선오이디푸스신경증이생겨날수없다는점을비교적쉽게보여줄수있다”고하면서,그와같은현상이문명화되지못해그런것이라면그렇다고치자고,자신은오히려근친의욕망이없다는것을자축하고싶다고드러내놓고비꼰다.(152쪽)
파농의탈식민주의
서구에서식민지문제에대해지식인들이비판의목소리를내놓은것은그리오래되지않았다.프랑스만해도20세기초에아나톨프랑스,펠리시앙샬레의문제제기가있었고,초현실주의도이에동참했지만,몇안되는변방의전문가들을제외하면지식인들은식민지문제에본격적인관심을두지않았다.사르트르조차식민지문제를직접언급한것은1956년에이르러서였다.서구사회의백인지식인들에게식민지또는흑인은어둠속에묻힌,절대적타자의세계였다.
파농이알제리혁명과더불어본격적인반식민투쟁에나선것은1950년대중반이후이지만,『검은피부,하얀가면』에서이미파농은정신적식민성의극복을중요한화두로삼고있었다.이책이탈식민주의논의의원점으로평가받는이유도여기에있다.파농이이문제에천착한것은마르티니크인으로서의그의정체성과밀접하게연관된다.
파농이자란섬은복잡한혼혈문화와장구한식민역사를지닌곳이었다.이곳식민지사회는전통적으로세신분,즉백인정착민,자유유색인,흑인노예가서열을이루고있었다.서인도제도어디를가나마찬가지였다.여기서는같은유색인이라도피부색이하얄수록높은사회적지위를누렸다.파농은아버지가아프리카계흑인이었지만어머니가흑백혼혈인물라토였다.
파농이이책에서예로드는다음과같은이야기에는그곳사회계급의실상이담겨있다.백인,물라토,흑인세사람이천국에갔다.베드로성인이물었다.“무엇을원하는가?”백인은“돈”이라고답했다.다음엔물라토에게물었다.물라토에게서“영광”이란답이돌아왔다.끝으로베드로가흑인쪽으로고개를돌리자흑인이잘라말했다.“저는이나리들의짐가방을나르러왔습니다.”(50~1쪽)여기서암시되는세계급의표상은경제를장악하길바라는백인지배자,사회적지위를얻어백인과동등해지길갈망하는유색인,마지막으로두계급의지배하에있으면서욕망을거세당한흑인이다.
2차대전때드골의자유프랑스군에자원했던파농은군대에서또다른차별을목격한다.오랫동안프랑스의말과글,프랑스인의정체성을안으로흡수하려했던마르티니크를비롯한서인도제도출신병사들은백인과크게다르지않은처우를받았지만,아프리카계흑인들은군대에서도차별대우를받았다.특히사하라사막이남에서모집한세네갈연대병사들은가장밑바닥이었다.정신적으론스스로‘백인’이라여기는앙티유인은세네갈병사들과똑같이검둥이취급을받으면모욕으로여긴다.아프리카흑인들은서인도제도출신처럼보이려고애써크레올어를배우기도한다.파농은앙티유인과세네갈인이보이는이런태도들이야말로자기부정이자소외라고본다.이런부조리한상황이파농으로하여금『검은피부,하얀가면』의성찰로이끌었다고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