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를 위한 투쟁 법감정의 형성에 대하여 (너는 투쟁을 통해 너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 양장본 Hardcover)

권리를 위한 투쟁 법감정의 형성에 대하여 (너는 투쟁을 통해 너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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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권리를 위한 투쟁 법감정의 형성에 대하여』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수단은 투쟁’이라는 것이다. 이 투쟁은 불법에 대한 항거에 있으며, 그것 없이는 법의 생명은 죽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존의 여러 번역본과는 다른 독일어 원본 신역으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원본과 꼼꼼히 대조해가면서 새로 번역한 정역서이다.

‘권리를 위한 투쟁’에 이어 수록한 이 글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예링이 1884년 3월 12일 빈 법률가협회에서 행한 강연의 초고이다. 제목은 ‘법감정의 형성에 관하여’다. 이 12년의 기간 동안 예링의 사상은 자신의 사고에 남아 있던 자연법적 잔재들을 완전히 청산하고, 법과 도덕 자체가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고, 발전의 동력은 사회적 효용을 증대시키는 ‘목적’에 있다는 목적사상을 정립하게 된다.
저자

루돌프폰예링

루돌프폰예링은1818년독일의서북단동프리슬란트의유복한법률가집안에서태어났다.1845년바젤대학의교수로임용된이래로스톡,킬,기센,빈대학에재직하는동안많은저작을썼다.특히기센대학에재직하던1852년에는로마법의현대적의의와연구목적을밝인대저작<로마법의정신>제1권을발표한이후13년간전4권을출간해법학계에서명성을알렸다.동료법학자게르버와함께학술지<현대로마법과독일사법의해석론을위한여보>를창간하기도했다.빈대학에서그의강의는특히인기가높았는데,수강생중하나였던러시아황태자레오갈리친은예링을일컬어'인류에게법학의불을가져다준프로메테우스'라고극찬했으며,오스트리아황제는법학발전에지대한공헌을했다는이유로그에게작위를내리기도했다.예링은4년남짓재직한빈대학을떠나면서1872년빈법조협회에서고별강연회를열었다.이강연의원고가훗날<권리를위한투쟁>으로출간된다.당시독일법학에지배적이던형이상학적추상성과개념의유희를비판하고대안을모색한그는20세기법학발전에큰공헌을남기고1892년사망했다.

목차

옮긴이서문|불법을감수하지말라!―권리를위한투쟁·7
개역판옮긴이서문|기억은현재의필요때문에기억될뿐,과거로되돌아가기위한
몸부림이아니다·13

권리를위한투쟁·23
/
법감정의형성에관하여·137

출판사 서평

이참담한세월에읽는현대법철학의영원한고전,다시우리현실을일깨우다!

“불법을감수하지말라!……투쟁은권리의영원한작업이다.
투쟁가운데서너는너의권리를발견해야한다.”


저낮은곳에서는산문에불과했던권리가,권리를위해투쟁하는이높은곳에서는시詩가된다.

‘민주공화국’이통째로도둑맞은참담한시국에현대법철학의영원한고전을
새롭게읽는다!
‘대의정치’는‘내시정치’로타락하고민주주의는‘비선실세’에철저하게농락당하고있는지금우리는권리를위한투쟁에나서야한다.
‘법치’와‘정치’자체가우리권리를지켜주지는않는다.
우리권리는우리권리를위한투쟁을통해,
즉불법을감수하지않는것을통해우리가지켜야한다.
“투쟁은권리의영원한작업이다.……
투쟁가운데서너는너의권리를발견하여야한다.”

법치가‘자본’과결탁하고권력의시녀나앞잡이가되어있는것이현재의우리
법의부끄러운자화상중의하나이다.
“법의목적은평화이며,평화를얻는수단은투쟁이다.”
우리의새로운민주주의를열어나가는길은‘법과투쟁’사이의이처럼역설적인관계를
이해하는데서출발해야할것이다.
불법과불의를감수하고관용하는비겁과무관심이야말로
가장큰죄악이다.

기존의여러번역본과는완전히다른독일어원본신역!
기왕의여러중역본이나맥락을잃은난해한판본과달리누구나쉽게읽을수있도록원본과꼼꼼히대조해가면서새로번역한정역!

권리를위한투쟁-불법을감수하지마라!
본서의내용을한마디로요약한다면,‘법의목적은평화이지만수단은투쟁’이라는것이다.이투쟁은불법에대한항거에있으며,그것없이는법의생명은죽어버리고만다는것이다.따라서예링에게서법은논리적개념이아니고힘의개념이다.그리고이힘의원천은권리이다.권리는그에게서는인간의실존적조건으로파악된다.생명권,신체권,재산권,자유권,명예권,인격권등의확보없이는인간은인간으로생존할수없다.법은이권리들을보호할목적을갖고있으며,내용은권리의객관화된‘사진’이외의아무것도아니다.법학에서권리를‘주관적법’이라고하고법을‘객관적권리’라고하는소이가바로여기있다.이양자는마치동전의표리와같은관계에놓여있다.따라서‘권리를위한투쟁’은곧‘법을위한투쟁’을의미한다.
이권리의내용은‘이익’으로파악된다.즉법에의해보호된이익이법적권리이다.그래서‘권리를위한투쟁’은동시에‘이익을위한투쟁’이기도하다.그러나여기서말하는이익은물질적ㆍ경제적이익에만국한된것이아니라오히려정신적ㆍ인격적이익에더중점을두고있다.순수한인격적권리침해는물론이고재산적권리침해의경우에서도그것의한가운데서는동시에‘인격’이침해되고있음을간과해서는안된다는것이다.따라서일체의권리침해에서궁극적으로문제되는것은인간의존엄과가치이다.이것을수호하기위해인간은자의에대해단호히맞서지않으면안된다.그러므로예링은침해된재산권의보상에서도단순한금전적가치의보상,즉금전배상만으로써는부족하며동시에정신적가치,즉손상된법감정에대한보상이따라야한다는것이다.옛날로마법에서의민사상의제재는이러한요구에만족을줄수있었으나오늘날의사법상의손해배상에서는이에대한배려가되어있지않다고주장하며,‘물질주의’의전형적형태라고비난한다.
특히그의사상에서우리가또한주목해야할것은권리를위한투쟁은개인을위해서뿐만아니라국가공동체의존립을위해서도필요불가결하다는점이다.권리의식이뚜렷하지못한백성은결국국가의권리도지킬줄모른다고한다.따라서외적으로부터국가를확고하게방어하기위해서는막대한국방예산보다백성들이투철한권리의식으로무장되어있을것이더필요하다는것이다.따라서내것을빼앗기지않고어떤일이있어도지킨다는권리의식의함양이야말로최선의정치교육이다.이관점으로부터바라볼때예링으로서는침략자보다오히려짓밟히는자를탓하게된다.
그래서그는‘불법을행하지마라!’는금지명제보다오히려‘불법을감수하지마라!!’는요구명제를우선시킨다.이요구명제에상응하는자기주장이바로‘권리를위한투쟁’으로나타나는것이다.이것은그에게서는도덕적자기보존의의무로각자에게명해지며,‘인간의자기자신에대한의무’에로까지높여진다.그리고이의무를태만히하는자는자기의도덕적실존조건을포기하는자로,그것은‘도덕적자살’이라고할수있다.권리침해를감수하는자,그럼으로써자기존재를노예나동물의간계로전락시키는자,그자가바로법의정신을좀먹는자이다.불법과불의를감수하고관용하는비겁과무관심이야말로타기唾棄할일이며용서하지못할죄를짓는것이다.“투쟁은권리의영원한작업이다.……투쟁가운데서너는너의권리를발견해야한다.”는이책의마지막구절은인간의실존조건으로서의권리라는것은공짜로주어지는것이아니라투쟁에의해비로소쟁취되어짐을알려주는진리의말이다.예링의법철학,아니더정확히말하여그의권리의철학은이마지막결론구에서가장잘표현되어있다.

법감정의형성에관하여
‘권리를위한투쟁’에이어수록한이글은국내에는처음소개되는것으로,예링이1884년3월12일빈법률가협회에서행한강연의초고이다.제목은‘법감정의형성에관하여’다.이12년의기간동안예링의사상은자신의사고에남아있던자연법적잔재들을완전히청산하고,법과도덕자체가역사적발전의산물이고,발전의동력은사회적효용을증대시키는‘목적’에있다는목적사상을정립하게된다.예링법사상에서매우중요한전환점에해당하는이강연문은강연직후〈빈법률가신문〉에실리긴했지만이후다시출간된적이없다.예링스스로도강연에서나중에이강연을책으로출간하겠다고언급하긴했지만실천에옮기지는않았다.하지만이강연은1877년에1권이출간된그의주저『법에서의목적』이어떠한이론적배경아래탄생했는지를감지할수있는중요한문헌이다.

예링의길을따라,여기한국사회에서왜“권리를위한투쟁인가?”에대한반성적성찰을고대하며

1872년3월11일월요일오전,오스트리아수도빈.

54세의대학교수예링이서재의문을열고걸어나온다.잠시,거실벽에걸린거울을보고섰다.검은정장의옷깃을여미고,넓은이마뒤로남은머리를꼼꼼매만진다.얼마뒤면독일에돌아간다.안경테를잡아살짝올리며,혼잣말을한다.지난4년간봉직한빈대학을떠나기에앞서예링은오늘빈법률가협회에서고별강연을할것이다.다소긴장되는지,예링은볼을둥글게부풀려날숨을뱉어본다.고개를돌려탁자위에놓아둔강연문에눈길을주다,어깻죽지에내려앉은새치한올을무심코집어든다.외국에서법학을가르치는자신의새하얀현재를,과거의편린들이무심히지탱하고있다는사실에,예링은새삼숙연해진다.26년전,그러니까1846년예링은독일북부에위치한로스톡대학에서로마법학자의행보를본격적으로시작했다.변호사인아버지를따라법학을전공한지10년만의일이었다.자신이세운목표와자신이가진능력사이에놓인심연을메우고자,항시초초한기색으로읽고쓰는날을반복했다.
부인헬레네가세상을떠난것은로스톡에정착하고2년뒤에일어난일이었다.아이를낳은후건강이급격히악화된탓이었다.그녀의나이23살이었고,예링은29살이었다.품안의젖먹이마저두달후어미를뒤따랐다.음악과문학에심취했던예링특유의사교성은그때부터힘을잃기시작했다.1년뒤,예링은슬픔의그림자가미치지않는곳을찾아,독일중부의작은도시기센으로자리를옮겼다.기센대학교에서예링은연구에집착적으로몰두했다.그것이슬픔을잊는방식이자,잊음을슬퍼하는방식이었다.“로마법을통하여,로마법을넘어!”를기치로,13년에걸쳐4권으로펴낸『로마법의정신』은예링의찢긴가슴에틔운싹이었다.그러나불행은1868년에도예링을찾아왔다.49세의예링은두번째부인이다와도사별하고말았다.생활의시詩는사라졌다.광막한슬픔의그림자는익숙한모든사람과사물에드리워져,예링이머물곳은어디에도없었다.예링은아예국경을넘기로작심했다.때마침오스트리아의빈대학측이예링을초빙했다.마다할이유가없었다.
빈은예링이그동안근무했던곳과는달리아주큰도시였다.그규모는놀랍게도문화와예술의공기로가득차있었다.예링은서서히그곳의이색異色에젖어들며,다시금연구와강의에매진했다.예링이머문1868년부터1872년까지그의강의실은수백명의학생들로가득찼다.오스트리아황제는법학발전에공헌한점을높이사,예링에게작위를하사했다.그리고예링은결혼을했다.
예링의눈길이다시강연문을향한다.강연문이놓인탁자로걸어가며생각한다.“너는투쟁을통해너의권리를찾아야한다”라는표어만은청중의가슴속에아로새기리라.훗날이강연문을책으로출간한다면,그표지에반드시이경구를넣으리라.옛로마를비롯한오늘날각국사람들의권리의식을뚜렷이대비시켜청중의마음에파문을일으키리라.예링의얼굴에미소가엷게번진다.셰익스피어의『베니스의상인』을절묘하게인용하고해석할때,청중들이짓게될오묘한표정을볼생각에마음이들먹인다.그러나이내만면에걱정이섞여든다.모든다툼에서권리를위해투쟁해야한다는주장으로사람들이오해하지는않을까.오로지권리의침해가인격에대한멸시까지포함하는경우에만권리를위해투쟁해야한다고주장할것인데도말이다.잠시후,예링은집을나서법률가협회로향할것이다.
그날강연에대한속기速記에따르면,예링이강연을마친뒤청중들의우레와같은박수가몇분동안이나이어졌다고한다.지금여기는예링탄생200주년을앞둔2016년의대한민국이다.당신도1872년봄의어느월요일오스트리아의빈법률가협회(이협회는지금도명맥을잇고있다)에모인사람들이받은감동을느낄수있을까.아니,옮긴이의반사실적바람을섞어묻건대,당신은과연한점의동요없이마지막장을덮을수있을까.갇혀온한국사회의패러다임전환을위해서도유용한논의를촉발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