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태권도라는 문화현상의 속성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비(非)-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말은 시간상 동시에 있을 수 없는 것들
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을 지칭한다. 예를 들면 같은 날,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지만 머릿속에 품고 있는 생각과 가치관은 완전히 다른 할아버지와 손
자의 모습처럼, 이질적인 시대적 요소들이 한 시점에 뒤섞여 나타나는 현상을 지칭한다.
오늘날 태권도는 이러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문화적 장(場)이다. 종교나 의례처럼 비교적 폐쇄적인 문화 영역과 달리, 태권도는 역사적
변천과 지역 간 교류 속에서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그 결과 태권도에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가치 규범이 켜켜이 쌓여 공존한다. 특히 핀더가 말한
‘세대의 차이’는 태권도에서 ‘지역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한국의 태권도가 최첨단 스포츠과학과 결합하여 현대적 스포츠로 진화하는 동안에도, 세계 곳곳의 수많은 태
권도장에서는 여전히 엄격한 무도적 위계와 정신 수양이 강조되며, 수십 년 전의 원형이 보존되고 있다. 이처럼 상이한 시간대의 가치들이 태권도라는 단일한 체계 안
에서 공존하고 교차하는 현상은, 태권도가 지닌 독창적이고 핵심적인 문화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국기원이 정의한 ‘무예스포츠’라는 태권도 규정은 그 자체로 이와 같은 속성을 잘 보여준다. 이 표현에는 ‘동양적 무예’라는 전근대적 가치와 ‘서구적 스포츠’라는 현대적
합리성이 중층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언뜻 형용모순처럼 보이는 이 결합이야말로 태권도 정체성의 핵심이다. 태권도복에는 전통적 복식의 원형과 현대적 기능성이 공존
하며, 사범(師範)이라는 존재에는 엄격한 ‘전통적 스승상’과 합리적인 ‘현대적 교육자상’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저자는 이처럼 복잡하고도 오묘한 문화의 층위를 학술
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이 책의 집필을 계획했다.
이와 같은 학자로서의 탐구심 못지않게 교육자로서의 책임감 또한 이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된 동기이다. 나는 2009년경부터 ‘태권도와 한국 전통문화’라는 교양 과
목을 운영해 왔다. 태권도를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태권도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그 안에 스며있는 한국 문화를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폭넓게 전달하고자 노력
해 왔다. 16주간의 강의 중 오리엔테이션과 시험 일정을 제외한 14개의 핵심 테마를 중심으로 매주 새로운 주제를 다루었고, 내가 발표한 논문과 저서들을 간추려 만
든 자료들로 학생들과 소통했다. 태권도를 낯설어하던 학생들이 태권도에 스며있는 한국의 정신적 유산을 발견하며 눈을 반짝이던 순간들은 내게 큰 보람이었다. 늘 제
대로 된 교재의 부재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여러 사정으로 집필을 미루어 왔으나, 이제 연구와 강의를 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난 세월의 강의록을 한 권의 책으로 묶
어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세 흐름으로 구성된다. 제Ⅰ부(제1장~제4장)에서는 태권도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을 이론적으로 규명한다. 태권도가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를 철학적 인간학과 동서양 신체문화 비교를 통해 살펴보고, 한국 전통 무예로서 태권도의 역사적 정통성을 ‘전통’ 개념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논증한다. 또한 수박에서 권법, 그리고 태껸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한국 맨손 무예의 뿌리를 추적한다.
제Ⅱ부(제5장~제11장)에서는 태권도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문화 요소들이 하나씩 펼쳐진다. 즉, 태권도복과 한복의 관계, 띠 색상에 담긴 음양오행 사상, 한옥 건
축 미학을 품은 국기원, 술(術)의 전수에서 도(道)로 이끌어야 할 마당(場)으로서 도장의 본질, 전통적 스승상과 현대적 교육자상 사이에서 정체성을 구축해야 하는 사
범, 한국 전통 예절의 심층, 그리고 의례(儀禮)로서 승품・단 심사의 의미와 과제를 차례로 다룬다. 이 장들은 태권도라는 몸의 언어가 얼마나 많은 한국 문화의 코드를
함축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Ⅲ부(제12장~제14장)는 더 넓은 시야로 태권도를 바라본다. 태권도정신에 깃든 홍익인간・단군 사상・불교・도교・유교의 층위를 분석하고, 1950년대 민간 주도
해외 보급부터 오늘날 정부 주도의 소프트 외교에 이르는 태권도 한류의 역사를 조망한다. 마지막으로 침입생물학이라는 독창적인 이론적 틀을 빌려, 태권도가 세계
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독특성’과 ‘필수적 다양성’이라는 두 개념으로 해명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삶의 급격한 디지털화에 따른 반작용으로 인문학적 가치에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고 신체가 소외되는 시대에, 태권도라는 몸
의 언어는 인간성 회복을 위한 강력한 실천적 도구가 된다. 태권도계 내부에서도 기술적 숙련을 넘어선 인문적 성찰에 대한 갈증이 어느 때보다 깊다. 태권도를 단순한
격투 기술이나 스포츠 종목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태권도가 한복과 한옥, 음양오행과 통과의례, 홍익인간과 소프트 외교를 하나의 몸 안
에 품은 살아있는 문화 총체임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 이 책이 태권도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지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길잡이가 되고,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범들에
게는 자신이 전하는 것의 깊이를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되며, 태권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우리 문화의 정수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유의 촉진제가 되기를 진
심으로 소망한다.
2026년 6월 15일
我山 宋亨錫
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을 지칭한다. 예를 들면 같은 날,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지만 머릿속에 품고 있는 생각과 가치관은 완전히 다른 할아버지와 손
자의 모습처럼, 이질적인 시대적 요소들이 한 시점에 뒤섞여 나타나는 현상을 지칭한다.
오늘날 태권도는 이러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문화적 장(場)이다. 종교나 의례처럼 비교적 폐쇄적인 문화 영역과 달리, 태권도는 역사적
변천과 지역 간 교류 속에서 매우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그 결과 태권도에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가치 규범이 켜켜이 쌓여 공존한다. 특히 핀더가 말한
‘세대의 차이’는 태권도에서 ‘지역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한국의 태권도가 최첨단 스포츠과학과 결합하여 현대적 스포츠로 진화하는 동안에도, 세계 곳곳의 수많은 태
권도장에서는 여전히 엄격한 무도적 위계와 정신 수양이 강조되며, 수십 년 전의 원형이 보존되고 있다. 이처럼 상이한 시간대의 가치들이 태권도라는 단일한 체계 안
에서 공존하고 교차하는 현상은, 태권도가 지닌 독창적이고 핵심적인 문화적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국기원이 정의한 ‘무예스포츠’라는 태권도 규정은 그 자체로 이와 같은 속성을 잘 보여준다. 이 표현에는 ‘동양적 무예’라는 전근대적 가치와 ‘서구적 스포츠’라는 현대적
합리성이 중층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언뜻 형용모순처럼 보이는 이 결합이야말로 태권도 정체성의 핵심이다. 태권도복에는 전통적 복식의 원형과 현대적 기능성이 공존
하며, 사범(師範)이라는 존재에는 엄격한 ‘전통적 스승상’과 합리적인 ‘현대적 교육자상’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저자는 이처럼 복잡하고도 오묘한 문화의 층위를 학술
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이 책의 집필을 계획했다.
이와 같은 학자로서의 탐구심 못지않게 교육자로서의 책임감 또한 이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된 동기이다. 나는 2009년경부터 ‘태권도와 한국 전통문화’라는 교양 과
목을 운영해 왔다. 태권도를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태권도의 역사와 철학, 그리고 그 안에 스며있는 한국 문화를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폭넓게 전달하고자 노력
해 왔다. 16주간의 강의 중 오리엔테이션과 시험 일정을 제외한 14개의 핵심 테마를 중심으로 매주 새로운 주제를 다루었고, 내가 발표한 논문과 저서들을 간추려 만
든 자료들로 학생들과 소통했다. 태권도를 낯설어하던 학생들이 태권도에 스며있는 한국의 정신적 유산을 발견하며 눈을 반짝이던 순간들은 내게 큰 보람이었다. 늘 제
대로 된 교재의 부재에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여러 사정으로 집필을 미루어 왔으나, 이제 연구와 강의를 갈무리하는 시점에서 지난 세월의 강의록을 한 권의 책으로 묶
어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 책은 크게 세 흐름으로 구성된다. 제Ⅰ부(제1장~제4장)에서는 태권도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을 이론적으로 규명한다. 태권도가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를 철학적 인간학과 동서양 신체문화 비교를 통해 살펴보고, 한국 전통 무예로서 태권도의 역사적 정통성을 ‘전통’ 개념 자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논증한다. 또한 수박에서 권법, 그리고 태껸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한국 맨손 무예의 뿌리를 추적한다.
제Ⅱ부(제5장~제11장)에서는 태권도를 구성하는 구체적인 문화 요소들이 하나씩 펼쳐진다. 즉, 태권도복과 한복의 관계, 띠 색상에 담긴 음양오행 사상, 한옥 건
축 미학을 품은 국기원, 술(術)의 전수에서 도(道)로 이끌어야 할 마당(場)으로서 도장의 본질, 전통적 스승상과 현대적 교육자상 사이에서 정체성을 구축해야 하는 사
범, 한국 전통 예절의 심층, 그리고 의례(儀禮)로서 승품・단 심사의 의미와 과제를 차례로 다룬다. 이 장들은 태권도라는 몸의 언어가 얼마나 많은 한국 문화의 코드를
함축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Ⅲ부(제12장~제14장)는 더 넓은 시야로 태권도를 바라본다. 태권도정신에 깃든 홍익인간・단군 사상・불교・도교・유교의 층위를 분석하고, 1950년대 민간 주도
해외 보급부터 오늘날 정부 주도의 소프트 외교에 이르는 태권도 한류의 역사를 조망한다. 마지막으로 침입생물학이라는 독창적인 이론적 틀을 빌려, 태권도가 세계
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독특성’과 ‘필수적 다양성’이라는 두 개념으로 해명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삶의 급격한 디지털화에 따른 반작용으로 인문학적 가치에 다시금 주목하고 있다. 모든 것이 데이터화되고 신체가 소외되는 시대에, 태권도라는 몸
의 언어는 인간성 회복을 위한 강력한 실천적 도구가 된다. 태권도계 내부에서도 기술적 숙련을 넘어선 인문적 성찰에 대한 갈증이 어느 때보다 깊다. 태권도를 단순한
격투 기술이나 스포츠 종목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태권도가 한복과 한옥, 음양오행과 통과의례, 홍익인간과 소프트 외교를 하나의 몸 안
에 품은 살아있는 문화 총체임을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 이 책이 태권도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지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길잡이가 되고, 태권도를 가르치는 사범들에
게는 자신이 전하는 것의 깊이를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되며, 태권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우리 문화의 정수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유의 촉진제가 되기를 진
심으로 소망한다.
2026년 6월 15일
我山 宋亨錫
태권도, 한국 문화를 품다
$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