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산진 평전

로산진 평전

$16.28
Description
도자기와 서예, 전각과 칠기, 그림과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 멀티아티스트, 일본 요리를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 전설적인 요리왕 ‘20세기 최고의 망나니’로 낙인찍힌 희대의 독설가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저자

신한균,박영봉

저자신한균(申翰均)은도예가.전통사발의선구자고신정희옹의장남으로태어나현재양산통도사옆에서신정희요를운영하며사기장으로일하고있다.한국공예대전에서특선과동상,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서울시장상및우수상을수상했으며,매년일본,미국,영국을비롯한세계유명화랑에서초대전을열고있다.에세이『우리사발이야기』와역사소설『신의그릇』을펴냈으며,두책이모두일본에서번역,출간되었다.

목차

목차
프롤로그1
프롤로그2
1.홀로서기
2.거침없는주유
3.일본의진로가결정되는곳,호시가오카사료
4.거목,천하를얻다
5.도예의세계가꽃피다
6.미국과유럽으로
7.만년과죽음
8.로산진의요리왕국
에필로그
로산진연보
참고자료

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피카소와채플린이격찬한인물
만화『맛의달인』의주인공유잔의실제모델
도자기와서예,전각과칠기,그림과디자인에이르기까지
천재적인재능을발휘한멀티아티스트
일본요리를세계최고로끌어올린전설적인요리왕
‘20세기최고의망나니’로낙인찍힌희대의독설가
기타오지로산진(北大路魯山人)의모든것을알아본다.
●요리를완성하는것은그릇이다
최근요리와미식에대한관심이높아지면서부쩍이와관련한TV프로그램이인기를끌고있다.유명셰프들이요리대결을벌이는프로그램이있는가하면...
피카소와채플린이격찬한인물
만화『맛의달인』의주인공유잔의실제모델
도자기와서예,전각과칠기,그림과디자인에이르기까지
천재적인재능을발휘한멀티아티스트
일본요리를세계최고로끌어올린전설적인요리왕
‘20세기최고의망나니’로낙인찍힌희대의독설가
기타오지로산진(北大路魯山人)의모든것을알아본다.
●요리를완성하는것은그릇이다
최근요리와미식에대한관심이높아지면서부쩍이와관련한TV프로그램이인기를끌고있다.유명셰프들이요리대결을벌이는프로그램이있는가하면맛집을소개하거나미식여행을떠나는프로그램도있다.인터넷에서도요리관련블로그나맛집소개블로그는여전히인기가높다.그런데도아직우리의음식문화는합격점을받기는커녕낙제점을면하기어렵다고들한다.왜일까?무엇보다도그원인은그릇에있다.식당에서사용하는주걱과국자,뜨거운음식을담는그릇이플라스틱또는멜라민그릇이기십상이다.
요리자체의풍미도중요하지만음식과그릇의어울림,즉차림멋을신경쓰지않는다면진정한요리가될수없다.“그릇은요리의기모노다”라고하면서요리와도자기양면에서종횡무진활약해현대일본요리를완성한이가있으니바로이책에서소개하는기타오지로산진이다.로산진으로인해일본요리는세계최고의수준에오를수있었다.
●세상에내던져진아이
1883년교토에서태어난로산진은어릴때버려지다시피남의집에양자로보내진다.여러집을전전하다목판업을하는후쿠다의양자로들어간로산진은전각에눈을뜨게된다.4년제심상소학교만을다닌로산진은거리에서간판한자를보고그것을몇번이나손가락으로쓰면서기억했다가집으로돌아와아궁이앞에서부지깽이로다시그리며익혔다.그리고자신이익힌한자를신문에서찾아내음과뜻을알아나갔다.서예에대한타고난감각과틈틈이익힌실력으로양부의일을본격적으로시작한지채한달도되지않아양부의솜씨를뛰어넘게된다.로산진은스물한살때일본미술협회에서개최한천자문쓰기대회에도전해우승자다섯명가운데한명으로뽑히기도했다.
서도가오카모토가테이의내제자생활을거쳐도쿄에서자리잡은로산진은전각으로명성을얻고수입도제법늘어났지만,안정적인생활을접고예술애호가인유력자의집에서식객생활을시작한다.당시식객생활은가난한예술가에게자신의존재를세상에알릴수있는기회이기도했다.로산진은당대예술가들로부터서도와전각을인정받는한편,타고난절대미각을발휘해당대의미식가들을매료시키는요리를선보이기도했다.
●일본의요리영웅이되다
나카무라다케시로와의만남은로산진의인생에있어큰전환점이되었다.로산진의예술적인재능과미각을높이평가한그는로산진에게요리점을내자고제안했고이들은의기투합해1921년다이가도미술점2층에회원제요리점‘미식구락부’를열었다.드디어로산진은요리사로서첫발을내딛게된것이다.최고의재료와그릇을사용한미식구락부는정치가,소설가,의사,변호사등도쿄인텔리들의화젯거리가되었고,회원은귀족원의장을비롯해200여명이나되었다.그러나성황을이루던미식구락부는1923년간토대지진의여파로문을닫게된다.
미식구락부이후일본최고급요리점을향한로산진의의지는더욱커져갔다.로산진과다케시로는최고급요리에어울릴장소를빌리고3만엔(약18억원)의자금모집에들어갔다.자금모집에성공한다음에로산진은직접디자인한도자그릇을여러가마에서주문제작했는데,일본요리점역사상유래없는5천여점의식기를마련했다.그리고드디어1925년3월20일,사장나카무라다케시로,고문겸요리장기타오지로산진,요리사와그보조약20명,여종업원40명,잡무보는이10명,회원약400여명으로역사적인요정‘호시가오카사료(星岡茶寮)’의문을열게된다.“호시가오카사료의회원이아니면일본의명사가아니다”“일본의앞날은호시가오카사료에서결정된다”는말이있을정도로그곳은정치인이나경제인,예술가등저명인사를회원으로둔고급요리점으로성장했다.호시가오카사료는품격있는대화를위한공간임을표방해노래와춤은허용되지않았고따라서게이샤도없었다.여종업원은술을따를수없었고,손님에게봉사료도받지않았다.그곳은오로지요리만가지고손님을만족시켰던것이다.
●본래가지고있는재료의맛을살려라
요리를한가지씩내는방법은지금에는당연한것이지만로산진당시까지만해도그렇지않았다.예전에는서너가지요리가놓인셋정도의상이처음부터모두나왔으며그것을오늘날처럼한가지씩내도록바꾼이가바로로산진이었다.현대일본의고급요리점은기본적으로로산진이고안해낸스타일을따라하고있는것이다.
호시가오카사료는일본현대요리뿐만아니라요리인의산실이기도했다.로산진의획기적인요리철학을익힌요리사들이전국으로퍼져나갔고결국그것은오늘날의일본요리가세계최고수준에오르는계기가되었다.로산진의요리철학은“본래가지고있는재료의맛을살려라”라는것인데,이는자연의맛을그대로살리기위해요리사의과도한손길이나조미료의지나친사용을자제하라는것이었다.
●요리를빛낸도예가
로산진에게그릇은아름답고살아있는요리를위해필수적인요소였다.요리를맛으로만즐기는것이아니라그릇,인테리어,서비스등과함께하나의예술로승화시켜야한다고주장했다.로산진은요정을개업한지2년후가마를열고요정에서사용할그릇을직접제작했으며요정을그만둔이후에는본격적으로도예가의길을걸었다.그의작품은해외에서도널리알려져그의가마로채플린이찾아오기도했고,1951년프랑스파리에서열린‘현대일본도예전’에서는피카소의찬사를받기도했다.로산진의도자기작품은오늘날식기로서는상상할수없는거액에거래되며독창성과예술성을인정받고있다.
●독설가로산진
로산진은미국요리와프랑스요리를맛보고는그것들을높이평가하지않았다.미국요리는전반적으로낙제점이었고경멸한만한수준이었다.일류요리점인데도보잘것없는식기를썼고,차림멋에는아예신경도쓰지않았던것이다.특히뷔페식에서는요리의생명이라고할수있는신선함이라고는없었으며불결한느낌까지들었다.로산진이볼때프랑스요리역시식재료가빈곤했고,물이좋지않았으며,아름다움이없었고,값싼그릇까지그의마음에드는것이별로없었다.
한편로산진은『세이코(星岡)』라는잡지를창간해자신의예술철학과미학을피력했다.특히이잡지에서로산진은생활도자기를값비싸게파는민예파를신랄하게공격하고민예파의지도적인물야나기무네요시에게독설을퍼부어대기도했다.로산진은또인간국보(무형문화재기술보유자)지정을거부하는등형식과권위에도거부감을드러내‘20세기최고의망나니’로불리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