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란 무엇일까? 여전히 낭만적인 사람이라면, 마음은 심장이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굳게 믿을 것이다. 그러나 낭만의 콩깍지를 벗겨낸, 객관과 근거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뇌가 만들어내는 일임을 알 것이다.
마음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뿐 아니라 자각하지 못한 채 뇌에서 처리되는 모든 일들이다.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보고, 글자 하나하나를 인식해 처리하고, 소리를 듣고 반응하며, 감각을 느끼고, 행동으로 옮기는 모든 것이 우리 마음에서 비롯된다. 사소하고 당연해 보이는 행동들도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또한 마음은 우리의 생각, 기분, 태도에 끊임없이 영향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마음은 복잡하고 동시에 매우 귀하다.
이토록 소중한 마음을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과학’ 뿐이라고 주장하는 책 《마음 실험실(심심 刊)》이 출간됐다. 저자는 ‘시간과 정서, 감각’을 주로 연구해온 젊은 인지심리학자다. 심리학자가 어째서 ‘과학’을 강조할까?
흔히 심리학을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방법’이나 ‘인간의 성격을 예측하는 능력’을 알려주는 학문으로 생각한다. 저자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전공이 심리학이면서, 사람 마음을 왜 이렇게 모르냐”는 질책을 받아왔다. 저자는 ‘심리학은 마음을 읽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라고 꼬집는다. ‘인간 심리를 간파해 행동을 예측하’는 학문은 더더욱 아니라고도 강조한다. 심리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과학을 크게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으로 나눈다면, 자연과학이 인간 이외의 지구나 자연환경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사회과학은 인간의 행동과 생각과 마음을 과학적 기법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은 납득 가능한 논리, 검증 가능한 방식을 활용해 마음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이다. 심리학을 과학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못 믿겠다는 사람을 위해, 책에서 예를 가져왔다. 사회심리학자 나오미 아이젠버거(Naomi Eisenberger)와 그의 연구팀은 뼈에 금이 갔을 때 느끼는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으로 받은 상처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우리 뇌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흥미로운 연구를 했다.(33쪽) 우리는 마음이 아플 때 ‘가슴에 멍이 든다’거나 ‘심장에 못이 박히는 것 같다’는 등 신체적 고통을 나타내는 표현을 쓰는데, 인간의 이런 언어 습관에 착안해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이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동일할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운 것이다. 연구 결과, 언어가 일치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뇌에서 신체적 고통을 처리하는 배측 전대상피질(DACC, 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과 전측 뇌섬엽(AI, anterior insula)이 사회적으로 거부당해 정신적인 고통을 겪을 때도 똑같이 활성화됐다. 신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처리하는 두뇌의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동일했던 것이다.
‘고통’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작용을 과학적 기법으로 측정한 아이젠버거의 심리실험 덕에 우리는 인간이 느끼는 고통의 의미를 조금 새로운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마음 실험실》에는 이처럼 우리가 흔히 느껴온 감정과 정서, 해온 생각과 행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심리실험과 사례가 여럿 담겨 있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주요 연구 주제인 ‘시간과 감각’에 관해 직접 진행한 심리실험뿐 아니라, 우리 삶 전반(결혼, 늙음, 죽음, 이타심, 인내심, 모성 등)과 사랑(질투, 불륜, 짝사랑, 이별 등)에 관한 대표적인 심리실험을 풀어내며 마음의 숨은 작동법에 관한 의미 있고 색다른 통찰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심리학의 효용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심리학 덕분에 어떤 마음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우리 마음이 우월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에 가장 적합하기 위해, 즉 각자에게 최적화한 방식대로 살아가기 위해 생겨났다는 것이다.
심리학 덕분에 나는, 어떤 마음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우리 마음이 우월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에 가장 적합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라는 것도 배웠다.
어떤 마음도 허투루 생긴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나의, 당신의, 그리고 우리의 마음들은 전부 타당하다. 걱정이 많은 것도, 남과 다르게 기억하는 것도, 자주 우울한 것도, 가끔은 힘든 것도 모두 이유 있는 마음이다. 지금도 내 마음은 내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능하고 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책을 먼저 읽은 뇌 과학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시종일관 객관적으로 우리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환히 밝히는 촛불 같은 책”이라고 평가하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족과 화목하길 바라며, 불안과 스트레스 없이 삶을 살아내길 꿈꾸는 모든 이에게 오래된 일기장 같은 위로를 전할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사람의 마음을 만들어내는 원료는 무엇인가
인간의 정보처리 방식과 기억의 맥락 효과에 관하여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마음 실험실》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주제는 ‘감각’이다. 우리 마음은 각 감각기관이 지닌 수용기(receptor)들이 외부 자극을 받아들여 뇌로 전달하고, 그렇게 받아들인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들이 각각의 자극을 해석하고 이해하면서 생겨난다. 즉, 인간의 마음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책은 ‘감각’과 ‘감각 작용’이 우리의 모든 마음을 출현시키는 원료가 된다고 말한다.(22쪽)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받아들인 정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책은 인간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상향처리(bottom-up processing)와 하향처리(top-down processing)로 나누어 설명한다. 간단히 말하면, 상향처리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처리하는 것이고 하향처리는 주관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낯선 얼굴과 맞닥뜨렸을 때, 눈과 코와 입이 있으므로 ‘사람’이구나 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상향처리라면, 내 친구 얼굴과 닮았다거나 이런 인상을 가진 사람은 대체로 선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하향처리다.
우리 마음이 어떤 자극을 단독 정보로 기억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등장한다.(47쪽) 당시 상황이나 기분, 경험, 느낌을 함께 기억한다는 것. 이를 기억의 ‘맥락 효과(context effect)’라고 부르는데, 소리 자극에 해당하는 ‘음악’은 감정을 유발하는 강렬한 정보라고 한다. ‘그 음악’을 회상하면 ‘그때 감정’이 함께 고개를 드는 것이다. 첫사랑과 헤어졌을 때 듣던 음악을 다시 들으면 갑자기 눈물이 난다거나, 유학 시절 듣던 음악을 다시 들으면 그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거나 하는 것이 바로 기억의 맥락 효과의 실례다.
특히 기억의 맥락 효과가 가장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가 따로 있다는 얘기는 흥미롭다. 미국 듀크대학교 심리학과 데이비드 루빈(David Rubin) 박사 연구팀의 연구 결과, 사람이 일생을 두고 기억할 수 있는 경험이 가장 많이 담긴 시기가 따로 있음이 밝혀졌다.(48쪽) 마치 노래의 클라이맥스처럼 인간의 기억 체계에도 클라이맥스가 있다는 것. 연구팀이 ‘회고절정(reminiscence bump)기’라 이름 붙인 이 시기는 바로 청소년기에서 20대까지다. 그래서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그 사람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에 즐겨들으며 좋아했던 노래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회고절정기에 좋아한 음악이 평생의 음악 취향으로까지 자리 잡는다는 이야기는 인간의 마음 기능의 신비롭고도 놀라운 단면을 알게 해준다.
어릴 때의 인내심과 절제력이
어른이 된 뒤 성공을 보장해줄까
책에는 당연하게 여겨온 심리 이론 뒤에 다른 측면이 있음을 밝히는 장면도 등장한다. 1960년대에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Walter Mischel)은 동료 연구원들과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유아는 즉각적 유혹을 얼마나 참을 수 있을까’를 알아보는 연구였다. 이들은 네다섯 살짜리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특별한 실험 방법을 고안해냈다.(56~57쪽)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를 한 명씩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 마시멜로가 하나 들어 있는 접시를 보여주고 ‘조건’을 이야기한 다음, 방에서 아이 혼자 기다리도록 했다. 그 조건이란, 언제든 원할 때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지만 선생님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15분간) 먹지 않으면 마시멜로를 하다 더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네다섯 살 남짓 아이들은 평균 512.8초 동안 기다렸는데, 이는 9분이 채 안 되는 시간이다. 연구는 당시 <유예됐지만 더욱 가치 있는 보상을 위한, 즉각적인 만족에 대한 유아원생들의 자주적 유예에 관한 연구 및 그 이론적 틀>이라는 길고 어려운 제목을 달고 발표됐다.
미셸 연구팀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미셸의 딸들은 실험을 진행한 유치원에 다니는 중이었는데, 연구 결과를 정리해 발표한 뒤에도 미셸은 딸들에게 유치원 시절 친구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듣게 됐다. 실험에서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린 아이들이 공부를 꽤 잘한다는 근황, 기다리지 못하고 바로 먹어버린 친구 몇몇은 학교 안팎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소식이었다.
1982년, 미셸은 새로운 연구를 시작한다. 예전에 마시멜로 실험에 참여한 유치원생들의 부모와 교사들을 수소문해 연락이 닿은 이들에게 설문지를 보냈다. 설문 내용은 절제력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온갖 종류의 행동 방식과 성격 특성에 관한 것이었으며, 학업 성취도를 비롯해 계획 능력과 사회성에 관한 것도 내용에 포함시켰다.
미셸 연구팀은 최초 조사 후 약 10년에 한 번꼴로 설문을 지속했다. 직업과 결혼 여부, 재정 상태, 신체 및 정신 건강 상태 등이 주요 설문 내용이었다. 네다섯 살 아이들은 점점 자라 어느새 50대 성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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