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 판사에게는 당연하지만 시민에게는 낯선 법의 진심

법정에서 못다 한 이야기 : 판사에게는 당연하지만 시민에게는 낯선 법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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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TBC 〈차이나는 클라스〉 출연,
《재판으로 본 세계사》의 저자 박형남 판사
30여 년의 판사 경험을 바탕으로
‘오늘 한국의 법정’에 선 판사의 진심을 말하다!

판사들은 왜 시민의 기대와 다르게 재판을 할까?
오랫동안 법정을 지킨 판사가 직접 전하는
판사들의 생각 방식

저자

박형남

저자:박형남
서울대학교법과대학을졸업하고서울형사지방법원판사로출발해30년넘게재판을하고있다.법정에서소송당사자의말을경청하고분쟁이면에존재하는원인을헤아리는재판을하기위해노력하고있다.2013년자살을업무상재해로인정해달라는소송에서,유가족,직장동료에대한면접과주변조사등심층분석을통해자살의원인을규명하는‘심리적부검’을사법사상처음실시하고업무상재해로인정했다.현재서울고등법원에서민사항고부재판장으로일하고있다.지은책으로《재판으로본세계사》(2018,휴머니스트)가있다.
30여년간판사로일하면서사람을먼저생각하는법률을꿈꾼다.시민의법감정과법적판단사이의공백을인문학적으로들여다보며시민과더욱가까워지기위해한달에두번씩글을썼다.법정의높은벽을조금씩낮춰누구나민주국가의시민으로서합리적이면서도인간적인삶을살아갈수있는방법을찾기위해오늘도판결문을쓰고인문학책을펼쳐본다.

목차

머리말판사는왜시민과다르게생각하는가

1장|다른사람의잘못을판단한다는것
검사는사법부가아니다
삼가고삼가는일이야말로형사재판의근본이다
무거운죄를저질렀다고꼭구속되는것은아니다
물증이없더라도유죄로선고할수있다
죄인을그리가볍게처벌하지않는다
소년법,무엇이문제인가

2장|이익과손해를따져서권리를선언한다는것
민사재판에서는사람을흥부로보지않는다
재판은판사가법정에서말을듣는절차다
법정문을여는열쇠,법리와판례
전문가아닌판사가판단하는법
판사는판결로말한다
개인파산자는새롭게출발해야한다

3장|법의이성과사람의감정을헤아린다는것
법에도눈물이있다
정의의기준을판사가정하지않는다
공정한절차가재판의알파이자오메가다
판사는법적안정성을중시한다.하지만
법치주의는권력을제한하고인권을보장한다
정치의사법화,사법의정치화

4장|세상물정에어두운판사가세상사를판단한다는것
화성에서돌아온판사
판사는핵인싸가아니다
판사에게는두개의양심이있다
열정도,무관심도아닌
판단을업으로삼은사람들

대담시인의마음으로공감하는판사가좋은재판을한다
미주

출판사 서평

1.“삼가고삼가는일이야말로형사재판의근본이다.”
―다른사람의잘못을판단한다는것

형사재판은사람의죄와벌을가늠한다는점에서그무게가결코가볍지않다.그때문에사람들의눈길을끄는큰재판이라면그에거는기대와원망도못지않게무겁다.보통사람들이재판의결과에따라판사를추켜세우거나비난을서슴지않는것도형사재판이갖고있는무게감때문일것이다.예컨대구속영장을발부했는지여부로피의자의죄를단죄했다고생각하는고정관념이시민들사이에널리퍼져있다.박형남판사는구속여부에대한시민들의기대감을충분히이해하면서도,“영장이발부되었다고다유죄로선고되는것이아니고,영장이기각되었다고처벌하지않는것이아니다.”(37쪽)라는것을강조한다.구속영장을남발할때“가족은있는돈없는돈을모아합의금을마련하고,사돈의8촌까지동원해서경찰이나검사와연줄이닿는사람을찾아다니는”(34쪽)풍경은‘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대중의편견을강하게만들뿐이다.
양형은형사재판에서특히민감한주제다.세계최초성문법인함무라비법에서규정한‘눈에는눈,이에는이’라는법칙은근대에들어서면서보다합리적이고개인의인권을보장하는쪽으로바뀌었다.현대의양형은동해보복(同害報復)의법감정을극복했지만,시민들은재판결과를보면서여전히‘솜방망이처벌’에그치고있다고생각한다.아이러니하게도무겁게처벌하면범죄가줄어들것이라는‘엄벌주의’는어떤사회에서도입증되지않았다.판사는양형위원회를거치며만들어진양형가이드를적극참고하되,디지털성범죄를비롯한성폭력범죄에더욱중한처벌을내리고범죄의충격을피해자입장에서고찰하는노력을기울일때판사에대한시민의신뢰도좀더높아질수있을것이다.
판사가재판을통해어떻게‘실체적진실’을찾느냐하는것도무척이나어려운문제다.형사재판은사건의진상을명백히밝히는게가장중요한데,그때그때바뀌는증언과범인이남긴희미한흔적만가지고처벌을한다는것은분명쉽지않다.“실체적진실이객관적으로존재하고재판을통해그대로찾아낼수있다고생각할수록판사는오판에빠질위험이있다.”(42쪽)그렇기때문에적법절차안에서실체적진실이재구성된다고생각하는것이온당하다.그러나그것이언제나진실은허구이고재구성될뿐이라는뜻은아니다.판사는“몇가지법지식보다사람과사회에대한앎이훨씬중요하고,선의로이해하는마음과올곧은결기를아울러갖추어야”(44~45쪽)실체적진실에보다더가까워질수있다.

판사는형법의이념과시민의법감정사이의괴리를고민하면서형량을정할수밖에없다.형사재판에서유무죄는판사에게익숙한사실인정과법리의영역이지만,양형은판사가잘알지못하거나꺼리는감정과윤리의영역이다.판사는피고인과피해자그리고시민의마음을섬세하게헤아리고책임주의원칙을지키면서,죗값이얼마인지성찰하고판결문에일상용어로적어서이해와소통을구하는길밖에없다.-54쪽

2.“민사재판에서는사람을흥부로보지않는다.”
―이익과손해를따져서권리를선언한다는것

법치주의국가인우리나라역시민법이매우중요하다.민법의원칙중핵심은‘사적자치의원칙’,다른말로‘계약자유의원칙’이다.그런데이원칙을악용하는사람들때문에순진한사람이거짓말에속아계약하고손해를보는경우가너무나많다.너무나안타깝지만민법은모든사람에게평등한능력이있다고가정하기때문에시민들은법을잘알고자기이익을스스로챙길수있어야한다.그러면서도민법의차가운정신은더넓은사회적관계와따듯하고인간적인삶을위한것임을잊어서는안된다.
한편이익과손해를따져서권리를선언하는데있어‘법리(法理)’와‘판례(判例)’는매우중요하다.특히판례는판결의지침이된다는점에서사실상법으로기능한다.그러나판사는대법원판결을맹목적으로따르지않고판례가제시한법리를비교하고검토하면서“옛것에토대를두되그것을변화시킬줄알고,새것을만들어가되근본을잃지않아야한다.”(86쪽)
보통사람들에게재판에서가장어렵게느껴지는것은다름아닌판결문이다.재판의결론인‘주문(主文)’과주문에도달하기까지논증과정을적은‘이유(理由)’로구분되는판결문은법치주의를실현하는데핵심적이다.우리나라판사들이일주일동안쓰는판결문은만개가넘는다.그렇게도많은판결문이만들어지건만,오랫동안법원을출입한기자는판결문을보며이렇게말한다.“판사님들을만나보면성격이나취향과생각이다다른데,어째서판결문은한틀에서나온것처럼똑같나요?”(97쪽)상당수판사가판결문을쓸때당사자보다상급법원을더의식하면서판결문의가독성과이해도가떨어진다는비판또한피하지못한다.판결문에는사람냄새가나지않는다해도,시민에게신뢰받는판결문을포기해서는안되는것은그만큼재판이시민의삶에너무나큰영향을미치기때문이다.

개인주의와자유주의에기반을둔민법은엄숙한표정으로“권리위에서잠자는사람은보호하지않는다.”라고말한다.오랫동안민사재판을해온판사로서꼭전해주고싶은말이다.판사도법에의해재판권을부여받았으므로,자기생각과가치관은어떻든법의이념과원칙을따를수밖에없다.바로그것이법치주의다.-70~71쪽

3.“판사는법적안정성을중시한다.하지만”
―법의이성과사람의감정을헤아린다는것

법은냉혹해보이지만법정은눈물과한숨이끊이지않는통속드라마다.형사법정이든민사법정이든“법에도눈물이있지않느냐.”고하소연하며판사가고통을들어주고눈물을닦아주길바라는사람들로가득하다.박형남판사는아무도알아주지않는고통과피해를법의언어와논리를통해억울함을풀어주는일이재판의근본임을믿어의심치않는다.2009년한공무원이과로로인한스트레스로목숨을끊은뒤공무원연금공단이유족에게보상금을주지않자,박형남판사는정신과교수에게‘심리적부검(psychologicalautopsy)’을의뢰해당사자가업무상스트레스와우울증으로자살했다는취지의감정서를받을수있었다.
이밖에도의사사위의뻔뻔한지참금청구소송이나방문목욕서비스를받은80대할머니에대한국민건강보험공단의부당한처우등에대해약자의입장에서서판결을내렸다.이와같은판결에는미국의법학자마사누스바움이말한‘시적정의(poeticjustice)’가스며들어있다.“억울한사람의아픔과슬픔에공감하고보듬어주는것이‘법의눈물’”(119쪽)임을잊지않고시적정의에목마른시민에게응답하는것이판사가해야할일이다.
법과정치의관계도빼놓을수없다.1987년민주헌정체제가만들어진이후헌법재판소가활성화되면서정치적·사회적으로중요한이슈(대통령탄핵,과거청산,양심에따른병역거부등)가있을때마다헌법재판소의결정이큰역할을해왔다.이와같은‘정치의사법화’는우리나라만이아니라20세기후반부터여러나라에서일반적으로나타나는현상이다.법원이정치적인쟁점을보다진보적으로이끄는면도있지만,정당이나국회가정치적인결정을법원에떠넘기는문제도발생한다.정치권력이사법부의판단을유도하거나재판이정치적쟁점으로비화하는‘사법의정치화’또한발생한다는것도고민거리다.현행제도를개선하는것은물론,법원이스스로의권한을억제하면서한국형정치의사법화와사법의정치화를줄이는노력이함께해야한다.

대법관의명칭이‘Justice(정의)’인미국에서는정의에대한에피소드가많다.어느대법관은“안녕히가세요,대법관님.정의를실천하세요.”라는인사를받자,“그것은내일이아니네.내가하는것은법을적용하는것이네.”라고답했다.다른대법관은퇴임하면서“법관으로재임중중립적이었다고생각한판결은나중에보니강자에게기울어진판결이었고,약자에게유리한판결을내렸다고한것은나중에보니중립적이었다.”라고회고했다.우리나라판사들은어떻게생각하는지궁금하다.-128쪽

4.“판사는‘핵인싸’가아니다.”
―세상물정에어두운판사가세상사를판단한다는것

우리나라판사들은‘화성에서돌아온판사들’이다.공부하느라세상과는담을쌓은채수백년전의법률가들과마찬가지로법률개념으로사람과세상을바라보고분쟁을해결하려는사람들이바로판사다.그러다보니법을공구상자처럼사용하는‘법률기술자’로만살아가기쉽다.그렇기때문에판사들에게필요한것은바로인문학과사회과학이다.시민과소통하고공감하는능력이너무나부족하기때문이다.“판결은사람에게답변하는것이기때문에,법적논증은필수적이지만감정에호소하고설득하는것도꼭갖추어야한다.재판이마음에와닿으려면왜이사람이이런일에빠져법정에올수밖에없었는지따뜻한가슴과섬세한눈으로보아야한다.”(168쪽)인문학적성찰과사회과학적분석이함께할때법정은진정한의미에서소통의장이될수있다.
실제로대부분의판사는보통사람들의생각과달리,외부사람과사교관계도없고검사나변호사와도큰교류없이조용히산다.‘판단을업으로삼은사람들’인판사들의일상은고단하기이를데없다.법원내부조사에따르면“전체판사의48퍼센트가주52시간이상일했고,60퍼센트는주말근무,50퍼센트는주3회이상야근”했으며,“‘번아웃증후군’을경험한판사도52퍼센트나되었다.”(195쪽)책상에틀어박혀한주내내판결문을쓰고잠깐법정에서는판사들은그야말로‘고슴도치형인간’이다.
바로이렇게세상과격리된판사들이세상만사를판단한다는게아이러니로보인다.그때문인지시민들도사법부에대한불신을숨기지않는다.여전히전관예우가널리퍼져있다는믿음이대표적이다.이럴때일수록판사들은개인적이고주관적인양심이아니라공정성과합리성에근거해서법을해석하는직무수행상양심,즉,‘법조적양심’을가지고판결해야한다는것이박형남판사의지론이다.언제나회의를거듭하면서법조적양심에따라세상만사를판단하려힘쓸때판사에대한시민의시선도보다긍정적으로바뀔수있을것이다.

판사는세상물정에어둡지만세상만사를판단한다.(…)사안의실체와핵심을정확히알려면세상물정에밝아야하는데,책상물림판사는대체로세상이돌아가는실정이나형편에어둡다.학자들은‘격물치지(格物致知)’와‘사물의본성’을논하지만,그말을수백번곱씹어도세상물정은손에잡히지않는다.쓰라린세상의리얼리티는장터나사무실에서,거리나지하철에서만날수있기때문이다.평범하면서도다양한세상만사를가늠하는판사는선입견없이입장을바꾸어요모조모생각하면서분쟁의한가운데로나아가는길밖에없다.-199~200쪽

5.시인의마음으로공감하는판사가좋은재판을한다
―대담_박형남판사×김현섭서울대교수

책의마지막에는박형남판사와서울대학교철학과김현섭교수(윤리학,법철학)의대담을실었다.김현섭교수는사법연수원에서박형남판사에게‘민사재판실무’를배운젊은법학도였고,판사생활을하다철학으로발길을돌려법철학자의길을걷고있다.두사람의우애어린대화는판사의실제생활,판결문에얽힌감정의문제,우리사법이주의를기울여야할점과법원의미래에이르기까지다양한이야기를폭넓게펼쳐보여준다.책에서못다한이야기가상세하게펼쳐지면서독자들은법철학적인고민을더욱풍성하게읽을수있을것이다.

《법정에서못다한이야기》는박형남판사가오랫동안법정의울타리를넘나들며해온고민을하나하나세심하게풀어낸책이다.30여년의시간동안한사람의재판관이인문학적성찰과사회과학적분석을통해법의마음과눈물을하나씩살핀성장기록이기도하다.억울한사람의눈물에공감하며보다엄정하면서도인간적인재판을기대하는독자들에게이책은판사의냉철한정신과따뜻한마음을,더나아가법의진심을알수있는소중한기회가될것이다.

가수양희은은〈그대가있음에〉에서“슬픔이슬픔을,눈물이눈물을,아픔이아픔을안아줄수있죠.”라고노래했다.《심판》을쓴작가프란츠카프카(FranzKafka,1883~1924)는“인간에대한무관심을체험하기에최적의직업이어서법학을선택했다.”라고말했다.판사는왜가슴이따뜻하지못할까?로마의어느시인은다른사람을감동시키려거든먼저울으라고읊었다.이제판사들은법정밖으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