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약물,게임,도박,SNS...왜끊지못할까?
우리의중독에는이면이있다!
중독과회복을마주하는가장인간적인대화
★권준수(서울대의대명예교수),리단(작가),도하타가이토(작가)추천
물질이나행위에병적으로탐닉하거나의존해그것없이는견디지못하는상태를뜻하는의존증(중독).최근들어의존증의대상은넓어지고,그연령은낮아졌다.술,담배,마약,도박뿐아니라성(性),게임,SNS,숏폼,쇼핑,성형,운동,음식까지,이제중독은일상곳곳을잠식하며현대인에게가장친숙한병이자사회적현상이되었다.중독자의저연령화현상도뚜렷하다.스마트폰,마약,도박에빠진청소년은늘고있지만,상담이나치료로이어지는경우는드물다.우리는왜중독되는걸까?중독은단지의지가약한탓에빠지는것이고,끊으면해결되는문제일까?이문제를어떻게바라보아야할까?
이물음들에진솔한대화로답하는책이있다.《우리가기댄모든것》은술을끊지못하는문학연구자와담배를끊지못하는정신과의사가의존증을주제로주고받은편지를묶은책이다.일본의존증치료계에서가장권위있는정신과의사마쓰모토도시히코,그리고절도,성(性),과식,알코올등다양한중독편력과발달장애를안고서도자신을놓지않은문학연구자요코미치마코토가부끄러울수있는본인들의과거사와속내,트라우마까지드러내며의존증의심연으로들어가중독과회복에얽힌‘진짜이야기’를전한다.
당사자의경험앞에서뒤집어지는중독에대한가벼운이해와편견
현대인에게가장친숙한병,중독에관한지독히도솔직한이야기
이서신교환집이탄생한계기가흥미롭다.일본의편집자가당시담당하고있던다른책에실을원고를청탁하고자요코미치마코토에게연락을했는데,그는대낮에편집자와처음만나는자리인데도술병을들고나타났다.이후에도공적인자리에서술을마시는모습을여러차례목격한편집자는일본의존증치료계의최고권위자마쓰모토도시히코와의서신교환연재를기획했는데,그연재의결과물이바로이책이다.중독관련‘당사자’의목소리는대부분이미의료인의영역으로돌아선‘준비된당사자’인경우가많다.그런점에서“담배를끊을수없고끊고싶은생각도없는”정신과의사와“18세부터40대중반인지금까지술을마시지않은날이총30일도안되는”문학연구자가나눈이편지들은쉽게들을수없는‘현장의목소리’를담고있다.책은이렇게‘진짜당사자’의솔직한이야기로중독에대한사람들의피상적이고가벼운이해와편견을뒤집는다.
예를들어,약물의존증과관련하여자주언급되는‘쥐공원실험’이있다.우리에갇혀고독하게지내는쥐는마약에중독되고,동료들과어울려놀며지내는쥐들은마약을거들떠보지도않았다는실험이다.이실험은약물자체의중독성보다는사회적관계가더중요한중독요인임을드러내며널리알려졌다.그런데도시히코는이연구를접한환자의가족들은또다른심정에빠질수있다고지적한다.문제의원인을가족들이당사자를고립시켰기때문이라고오해하며죄책감에빠질수있다는것이다.또한,표준화된익명계열의자조모임에서강조하는‘무력감수용’이나‘종교색’에강한거부감을느끼는사람도있을수있다고이야기한다.의존증환자모두에게효과가있는표준적인치료방식이란존재하지않으며어떤치료법이본인에게맞지않다고해서회복할수없는것도아니라고강조한다.책은이밖에도시판약(일반의약품)과다복용,의존증과함께나타날수있는ADHD등동반이환(comorbidity)문제등을다루고있어,의존증을입체적이고다층적으로이해할수있다.
사람은왜무엇인가에빠지는가
중독의본질은‘쾌락추구’아닌‘고통경감’
문학연구자요코미치마코토가보내는첫편지부터강렬하다.그는자신을‘의존증환자’라소개하며초등학교시절의병적도벽부터시작된자신의중독편력을펼쳐놓는다.강박적자위를비롯한성(性)중독,평생을경도비만으로이끈과식,그리고성인이된후지금까지끊지못한알코올까지.또그는마흔에서야자폐스펙트럼장애와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진단을받은발달장애인이기도하다.이어서‘종교2세’로서겪은끔찍한트라우마까지가감없이드러내며“고통에서벗어나려할때마다의존증문제가늘가까이있었다”고고백한다.인간은대개쉽게싫증을내는데,왜어떤사람들은일상과건강,관계를무너뜨리면서까지특정물질이나행위에집착하는것일까?
정신과의사마쓰모토도시히코는이에대한답으로‘자기치료가설’을내놓는다.의존증의본질은‘쾌락추구’에있지않고,‘고통경감’에있으며,의존증은장기적으로사람을죽음에이르게할수있지만,아이러니하게도단기적으로는‘죽고싶을만큼고통스러운지금’을일시적으로견디는데도움이된다는것이다.발모광(털뽑기장애)이나손목을긋는자해와같은,언뜻보기에쾌감이나취기와는거리가먼행위도현실의고통에서일시적으로의식을돌리는데도움이된다면빠져들수있다고지적한다.이런맥락에서의존증의맹아는누구에게나있으며,의존증이나자해는곧바로죽음을택하는것보다는훨씬나은선택이니‘중독은회복의시작’이라고까지말한다.우선살아남아야회복도가능하기때문이다.
“사람은이전에경험해보지못한아찔한쾌감을얻으려약물에빠지는것이아니라,오래전부터겪어온고통이그약물로인해일시적으로사라지거나약해지기때문에빠지는것입니다.쾌감이라면질리겠지만,고통의완화는질리지않습니다.오히려내가나로존재하기위해서라도그고통의완화를놓을수없게되겠지요.”(37쪽)
소중한사람이중독에빠졌다면어떻게해야할까?
“안돼,절대안돼”보다는‘회복공동체’
바람직한지원과회복은구체적으로어떤모습일까?마쓰모토도시히코는“회복이란단순히술이나약물을끊는데그치지않고,있는그대로의자신을받아들이며애써노력하거나긴장하지않고편안히살아가는방법을익히는것”이라말한다.진정한치료와회복의핵심은당사자를고립시키지않는것이다.중독당사자는본인의문제를주치의나가족,또는비슷한문제를안고있는동료에게솔직하게털어놓을수있어야하며,의사는가족보다환자의편에서야지속적인치료가가능하다고강조한다.의사가‘당장어떻게좀해달라’는가족의요구를우선시한다면,치료는강제입원과격리와같은당사자고립으로흐를가능성이높다.그렇다면가족은어떻게해야할까?가족내에서만문제를해결하려하지않는것이무엇보다중요하다.중독에대한전문지식과비밀유지의무가있는제삼자나자조모임과연결되어함께고민하고대안을찾아보는것이핵심이다.
책에는다양한지원과회복의풍경이펼쳐지는데,모두당사자를고립시키지않는다는공통점이있다.‘익명의알코올중독자들(AA)’이나‘익명의약물중독자들(NA)’같은당사자자조모임,약물의존증에서회복한당사자가운영하는민간재활시설인다르크(DARC),의존증환자가족을위한자조모임‘알아넌(Al-Anon)’과가족지원을위해도입된‘커뮤니티강화와가족훈련(CRAFT)’,정신장애인생활공동체‘우라카와베델의집’등이소개된다.마쓰모토도시히코는이렇게‘나혼자가아니라는것을아는장소’를‘회복공동체’라부르며강조하고,요코미치마코토또한열개에달하는자조모임을직접주재하고있는당사자로서‘연결’의중요성을설파한다.읽는이가조마조마할만큼거침없는마코토의자기노출역시스스로고립되지않기위한노력의일환이었음을짐작할수있다.
“의존증이라는괴물이가장좋아하는것은비밀과고립입니다.그리고인생에서최악의경험은단순히끔찍한일을겪는것이아니라,그고통을혼자서감내하는일입니다.”(219쪽)
끊는다고문제가해결될까?
중독대응패러다임의변화,‘위해성감소’의중요성
그렇다면지금우리사회의중독대응은어떨까?구체적으로약물의존증분야를보면,공급차원에서는규제와단속,처벌강화,수요차원에서는예방교육과치료중심의정책이시행되고있다.하지만이런대응방식은약물사용자를‘절대해서는안되는짓을한사람’으로낙인찍어사회적으로고립시키는결과를낳기쉽다.게다가중독의대상은끊임없이변하는특성이있다는사실을고려하면,술이나약물을끊는것이근본적인문제해결책이될수는없다.여기서중요해지는것이바로‘위해성감소’와사회적안전망이다.중독자체를근절하기보다는중독으로인해발생하는건강,사회적,경제적폐해를줄이는데집중하자는것이다.
예를들어,약물의존증분야에서위해성감소정책은감염병확산방지를위해깨끗한주사기를무상으로배포한다거나약물을안전하게사용할수있는주사실을설치하고,비교적해가적은대체약물을투여하는방식등을포함한다.이는실제로1990년대초부터현재까지스위스에서발전,유지시켜온약물정책의핵심이기도하다.책에는이밖에도알코올의존증노숙인에게무료급식소에서영양이풍부한식사를하는조건을충족하면소량의알코올음료를제공하는정책도소개된다.중독문제가나날이심각해지는지금,우리사회에도‘끊는다/끊지않는다’는단순한이분법을넘어서는보다유연한대응방식과따뜻한시선이필요하다.중독은‘누군가의문제’가아닌,‘누구나의문제’이기때문이다.중독을통해인간의고통과회복,연결의의미를묻고‘우리가기댄모든것’을돌아볼보게만드는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