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은타고나는가학습되는가?
폴에크먼이표정연구에뛰어든1950년대말,문화인류학의영향력이절정이던학계는‘표정은사회적으로학습되고문화마다다르다’라는견해가지배적이었다.에크먼은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일본,미국등서로다른문화권의사람들에게동일한사진을보여준후감정을판정해달라고부탁했다.대다수가동일한판정을내렸는데,이것은표정이인류보편적일수있음을시사했다.그러나피실험자들이TV나영화등을통해서양인의표정과감정의의미를배웠을가능성도있었다.그래서그는TV도잡지도없는외부와완전히고립된문화의사람들에게같은실험을해보았다.
1967년과1968년파푸아뉴기니고원지대의원시부족포레족을대상으로한그의두차례실험은표정은보편적이라는다윈의주장과일치했다.만일표정이학습될필요가있다면,선천적맹인은정상인과다른표정을지을것이다.하지만그들도같은감정을경험할때동일한표정을짓는다.많은인류학자들이발견한반례(“많은문화권의사람들이불행할때웃는다.”)에대해서에크먼은‘표시규칙’이란개념으로설명했다.즉감정과표정은보편적이지만,표정관리의규칙은사회적으로학습되고문화마다다르다는것이다.그래서혼자있을때는타고난표정이나타나지만,다른사람들이있으면관리된표정이나타날수있다.
표정을객관적으로측정하다
감정과표정의보편성을확인한에크먼은1970년대들어표정을측정하는도구를본격적으로연구하기시작했다.그과정에서자신의얼굴에침을꽂고전기자극을주어근육을수축시키기도했으며,그렇게1만개이상의표정을특정하고,얼굴움직임을해부학적으로측정하는방법을개발했다.1978년그가발표한FACS를활용하여오늘날전세계컴퓨터과학자들은인공지능을통해감정인식자동화프로그램을만들고있다.
이책은슬픔과고통,분노,놀람과두려움,혐오와경멸그리고즐거운감정의표정들을다룬다.한때에크먼은이감정들을‘기본감정’이라부르기도했으나이책에서는더이상그러한표현을고집하지않는다.에크먼은죄책감,수치심,당혹감,부러움같은다른감정들이있음을부정하지않지만,이들감정에는서로구별할수있는고유의표정이없기때문에이책에서는다루지않는다.
에크먼은또한슬픔이나분노,두려움등을‘부정적감정’이라부르며무조건제거하려는경향에대해서반대한다.이러한태도는감정들사이의차이를무시하는것이며,부정적감정이라고해서반드시불쾌하게만느껴지지는않기때문이다.오히려성난논쟁,공포영화,슬픈이야기를즐기는사람들도많다.2015년에크먼이과학자문을맡은픽사애니메이션〈인사이드아웃〉은이책이다루는주요감정들을기쁨이(즐거움),슬픔이(슬픔과고통),버럭이(분노),까칠이(혐오와경멸),소심이(놀람과두려움)로의인화하여,슬픔이라는부정적감정을무조건막으려할게아니라포용함으로써오히려감정적으로성숙할수있다는메시지를감동적으로전한다.
대표적감정들을식별하는법
에크먼은매장마다하나의감정을다루며각감정의특성과전형적표정을설명하고,그감정을스스로느껴볼수있는연습방법을제시하고,타인의얼굴에나타날경우눈,눈꺼풀,눈썹,입,입술,턱,뺨등에서관찰할수있는미세한특징들을딸이브의표정사진과함께분석한다.그표정들은우리에게너무나친숙한것이지만어떤감정이라고판정하기어려운경우가많은데,이는그표정이전형적(완전한)표정이아니라‘부분표정’이거나‘약한표정’이기때문이다.즉감정이이제막시작되었거나약하거나억눌린경우다.에크먼은‘미표정’까지를포함해이세표정을‘미세표정(subtleexpression)’이라고부르고누구나손쉽게연습할수있는SETT(미세표정훈련도구)를홈페이지(www.paulekman.com)에서제공하고있다.
에크먼은즐거운감정을이야기하며‘피에로(fiero)’‘나헤스(naches)’‘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예로드는데,피에로는자신의성취에느끼는뿌듯함을가리키는이탈리아어이고,나헤스는자녀가주는기쁨이나자랑스러움을가리키는이디시어이고,샤덴프로이데는남의불행을고소해하는마음을가리키는독일어다.에크먼은감정이란보편적이지만그것을가리키는최적의단어가특정언어에없는경우도있다고말하며,어떤언어에해당단어가없다면감정일수없다고주장하는편협한견해를반박한다.말이란감정이아니며,단지감정을표현하는도구일뿐이다.
타인에감정에대응하는법
에크먼은파푸아뉴기니원주민들과같이생활하던시절겪었던인상깊은일화를소개한다.어느날원주민여인이아픈아기를안고도시병원을찾았지만아기는안타깝게도죽고말았다.의사와에크먼은그녀를원주민마을까지태워다주었다.뒷좌석에서내내아기를안고조용히무표정으로앉아있던여인은마을에도착해서친척과친구들을보자마자마구울며괴로워했다.의사는차안에서는아무런감정을보이지않다가마을사람들을만나자의례적슬픔을드러낸그녀를가식적이라고말했다.하지만에크먼의생각은다르다.그녀는서양식병원이라는UFO와도같은비현실적인공간에서아기를잃었다.그리고돌아오는내내낯선백인남자들에둘러싸여있었다.그녀에게마을로돌아온것은마치화성에서지구로귀환한것과같았고,아는얼굴들을보자비로소그동안억눌렀던감정이폭발했다.“그의사는우리가자신의상실을나눌수있는사람이없다면,진정한의미에서고통을경험하지못할수도있다는사실을몰랐던것이다.”
에크먼은타인의미세한슬픔,분노,두려움,혐오와경멸의표정을알아보는법을알려줄뿐아니라거기에대응하는법,그정보를이용하는법도알려준다.가장명심할점은함부로내색하지않는것이다.대화상대에게분노의기미를읽고서“왜화를내지?”라고직설적으로묻는것만큼어리석은반응은없다.우리는자신의감정에공감해주길바라는만큼이나자신의감정이들키기를바라지않는다.
무엇보다이것은‘오셀로의오류’를저지르기쉽다.오셀로가부정을의심하며추궁하자데스데모나는슬픔과두려움을느낀다.오셀로는아내가정부카시오의죽음을슬퍼하고자신의배신이들켜두려워하는것이라고추측하지만,정작그녀의두려움은질투심에눈먼남편이자신을죽이려하기때문이었고,그녀의슬픔은카시오가죽어버려서자신의결백을증명할길이사라진데대한절망때문이었다.우리는타인의감정에우리가알지못하는다른원인이있을수있다는것을항상명심하고섣부른예단을경계해야한다.
거짓말과미표정
에크먼은FACS를개발하던중,우울증환자의거짓말사례를듣게된다.환자는퇴원전다나았다며밝게인터뷰했지만실은집에돌아가자살할생각이었다.에크먼은환자의인터뷰영상을프레임단위로면밀히검토하다가,장래계획을묻는의사의질문에순간멈칫하며엄청난고통의표정이섬광처럼지나가는것을발견했다.에크먼은거짓말을할때1/25초에서1/5초사이에지나가는이런매우빠른순간적얼굴움직임을‘미표정(微表情,microexpression)’이라고명명하고,그것이억압된감정이나억제된감정을‘누설’하는결정적증거라고주장한다.
에크먼은이개정증보판에새로추가한‘거짓말과감정’의장에서은폐된감정과꾸며낸표정을탐지하는다양한기법을소개하는데,얼굴의부자연스러운비대칭과불수의근의운동부재가대표적이다.후자의유명한예가‘뒤센웃음’이다(100여년전프랑스의신경학자뒤센드불로뉴가발견했다).진심으로즐거워웃을때는눈둘레근의외측부분이움직이지만(따라서눈가주름이생기고눈이가늘어지며빰이올라간다),거짓웃음에서는눈썹과눈두덩이가밑으로당겨지는것같은미세한움직임이나타나지않는다.
에크먼은이후미표정연구성과를국가안보를위해활용하는방안에주력해왔고,그가개발한‘진실성평가훈련프로그램’이FBI,CIA등여러법집행기관들의실무에서이용되고있다.세계각국에서미국으로오는여행객들의비자발급인터뷰를담당하는미국무부영사담당국(FSI)의직원교육,공항대기줄에서수상한거동을관찰하는것만으로불법이민자,밀수범죄자,테러리스트를색출하는미국교통안전청(TSA)의‘관찰기술에의한승객검색(SPOT)’등이대표적이다.표정을통한거짓말탐지전문가로서명성이높아지자그를모델로한드라마〈라이투미(LieToMe)〉가만들어져큰인기를모으기도했다.
감정의메커니즘과주의집중
에크먼에따르면,감정은우리의안녕을위협하는사태를24시간감지하는'자동평가기제'로,갑작스런교통사고의순간처럼우리의생명이걸린중요한사태에신속하게대비할수있게해준다.이자동평가기제는두가지종류의감정유발요인(유인)을경계하는데,하나는진화에의해각인된보편적‘테마’이고다른하나는후천적학습에의한특수한‘변형’이다.(가령,가해위협에두려움을느끼는것은‘테마’고,뉴기니원주민이멧돼지의습격에,현대도시인이강도의습격에두려움을느끼는것은‘변형’이다.)변형이테마에서멀어질수록우리는시간을들여일어난사태를곰곰이생각하게된다.이렇게평가과정을우리가의식적으로자각하는것을'반성적평가'라한다.
누구나감정에휘둘려행동했다가후회한경험이있을것이다.그런감정적행동을어떻게완화하거나조절할수있을까?에크먼은2000년달라이라마를만나감정에대해토론하며많은통찰을얻었다고말한다.불교의수행은파괴적감정으로부터자유로워지기위해서자동평가를반성적평가로대체하려한다.그러기위해서는먼저자동평가가일어나는찰나의순간을자각해야하는데,이를불교에서는‘알아차림(正念,mindfulness)’이라한다.오랜명상수행을통해서만얻을수있는이런자각과대비하여에크먼은일반인도할수있는방법을제시하는데,그것이바로자신이감정을느끼고있음을자각하는일종의메타의식인‘주의집중(attentiveness)’이다.즉감정이일어난직후자신이감정적임을알아차리고사건과자신의반응을재평가하는것이다.이책에서제시하는여러감정들의유인을숙지하고타인의표정에나타나는대표적신호들을잘관찰한다면이러한주의집중이비록쉽지는않지만불가능하지는않다고그는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