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천년 떡집에서 간판 없이 예약 주문만 받는 화과자 가게까지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화과자의 세계!
화과자와 함께 떠나는 맛있는 교토 여행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일본의 도시 중 하나인 교토. 수도의 자리를 도쿄에 넘겨준 지 오래지만 여전히 ‘일본 문화의 수도’로 군림하는 교토의 여러 매력 중 하나가 달콤하고도 아름다운 일본의 전통 디저트 ‘화과자’다. 교토의 귀족 문화와 함께 발달한 다도 문화의 한 요소이자 그 자체로 일본 음식 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화과자의 아름다움과 맛이다.
도서출판 따비의 신간 《화과자 먹으며 교토 산책―달콤한 전통 디저트 속 일본 역사 여행》에서는 사진과 그 맛에 대한 묘사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아름다운 화과자의 세계가 교토의 역사와 문화, 장인들의 이야기와 함께 맛깔나게 펼쳐진다.
예뻐서 한 입, 맛있어서 한 입
먼저 화과자가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화과자의 ‘화’는 꽃이 아니라 和, 즉 ‘일본’을 뜻하는 한자다. 일본의 쇠고기를 와규(和牛), 일본 전통 음식을 와쇼쿠(和食)라 할 때처럼 말이다(화과자의 일본 발음이 ‘와가시’다). 문제는 ‘과자(菓子)’다. 우리는 과자 하면 쿠키나 케이크를 생각하지만, 일본에서 과자는 그 종류가 훨씬 다양하며 범주가 넓다.
화과자의 종류는 건조 정도에 따라 부드럽고 무른 나마가시(生菓子), 건조하고 단단한 히가시(干菓子), 그 사이의 것인 한나마가시(半生菓子)로 크게 나뉜다. 물론 이는 극히 단순한 구분으로, 재료와 제법(製法), 유래 등에 따라 모치가시(餅菓子), 나가시가시(流し菓子), 무시가시(蒸し菓子), 야키가시(焼き菓子), 우치가시(打ち菓子), 아게가시(揚げ菓子), 조나마가시(上生菓子), 난반가시(南蛮菓子) 등으로 또 나뉜다(각각이 어떤 종류의 과자인지는 책에서 확인하자). 저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과자의 종류를 책 앞머리에서 설명해놓았지만, 종류를 모르고 먹어도 화과자는 맛있다고 강조한다. 다만, 알고 먹으면 ‘재미’라는 조미료가 더해져 한결 맛있어진다.
어찌되었든 화과자는 팥 앙금에 고운 색을 입혀 꽃 모양으로 빚어내는 네리키리(練り切り)뿐 아니라 간장이나 된장을 발라 구운 찹쌀떡, 한천이나 전분을 젤리처럼 굳힌 양갱, 철판에 지진 센베, 별사탕 등 재료도, 만드는 법도, 모양도, 맛도 무궁무진하다는 것만 알고 화과자 산택을 시작하자.
천년 고도의 천년 노포
교토는 일본 왕실이 헤이안쿄에 자리 잡은 794년부터 대정봉환으로 도쿄로 옮긴 1869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다. 그래서 ‘천년 고도’다. 천년 고도에는 천 년 된 화과자 노포도 있다. 헤이안쿄 조성 당시 창궐한 역병을 물리치고 역병신을 달래려 지은 이마미야신사(今宮神社)와 역사를 함께해온 이치몬지야와스케(一文字屋和輔)의 아부리모치(あぶり餅)다. 아침마다 떡을 찧어 신께 봉헌하고 사장과 직원들이 직접 꼬치에 꿰어 정성껏 불에 굽는 모습을 보면 순식간에 천 년 전 이마미야신사의 참배객들이 이 모치를 먹는 풍경으로 들어간다.
물론 교토의 화과자 가게라고 하여 모두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몇 십 년 정도는 젊은 가게 취급받는 교토의 화과자 가게는 대부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를 상징하는 단어가 고요타시(御用達), 조가시야(上菓子屋) 등이다. 고요타시는 왕실이나 정부기관, 사찰 등에 납품하는 가게를, 조가시야는 막부로부터 설탕을 우선 조달받는 ‘고급 화과자 가게’를 의미하는데,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화과자 가게들이 바로 이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하지만 저자가 직접 촬영한 가게의 사진을 보면 그리 웅장하지도, 그리 화려한 인테리어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일본 곳곳의 번화가나 유명 백화점 지하매장에 손님들이 줄을 서는 매장을 낸 화과자 가게들인데, 정작 본점은 조용한 골목에 작게 숨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화과자 가게는 전통적으로 인근의 다도 교실 등을 단골로 두고 예약 주문을 받는 방식으로 영업한다. 그런 가게에 관광객 등 일반 손님이 줄을 서기 시작하면 정작 단골이 가게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본점은 단골을 위한 지역의 가게로 남기고, 번화가에 분점을 내는 형태가 화과자 업계에 일찍부터 정착됐다.
따라서 관광객 입장에서 가장 다양한 화과자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백화점 지하매장(데파치카デパ地下)이다. 하지만 저자가 찾아가기도 어렵고 가서도 구입하고 싶은 과자가 다 팔려버린 후일지도 모르는 화과자 가게 본점을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점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역사의 맛’ 때문이다.
화과자가 품고 있는 교토의 역사
저자는 교토를 크게 여섯 구역으로 나누어 그 지역의 화과자 노포를 소개한다. 고쇼가 있는 가미교에서 교토 궁정 문화와 함께 꽃피운 화과자를 만난 후 교토 북서부의 서민적 과자들을 살펴보고, 교토 중앙의 상업 지역 나카교에서 절정에 이른 교토의 화과자 문화를 소개한다. 그리고 남부 교토역 인근을 거쳐 전형적인 관광지로만 알려진 히가시야마의 화과자 가게들을 찾아간다. 저자의 이런 여정은 궁정을 중심으로 귀족 문화를 꽃피운 교토에서 에도 막부 시대의 경제 중심지 교토로, 그리고 왕실이 떠나간 후 공업을 중심으로 다시 일어서고, 이제 과거와 현대를 잇는 관광 수도가 된 교토의 역사를 보여주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니만큼 화과자 노포들이 내세우는 과자는 저마다 교토의 역사와 추억, 사연 한 자락씩을 품고 있다. 이를테면 가미교의 화과자점 다와라야요시토미(俵屋吉富)는 일본 말차 다도의 양대 산맥인 오모테센케(表千家)와 우라센케(裏千家)의 종가와 이웃하고 있어 화과자의 또 다른 이름이 ‘차가시(茶菓子)’임을 생각하게 한다(오모테센케는 일본 다도의 창시자 센리큐千利休의 셋째 아들이, 우라센케는 넷째 아들이 계승한 다도 유파다). 한편 교토 북부의 산속에 자리한 단풍으로 유명한 절 구라마데라 앞에 있는 화과자 가게(이자 차야茶屋인) 다몬도(多聞堂)의 명물 우시와카모치(牛若餅)는 미나모토노 요시쓰네(源義経)의 아명 ‘우시와카마루’에서 이름을 딴 과자다. 우시와카마루는 일본 최초의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배다른 동생으로 태어나 아버지 사후 어머니가 라이벌 가문의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의 첩이 되며 다이라 가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기구한 운명의 인물로, 그의 이름을 딴 과자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 속에서 요절한 인물을 애틋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피비린내 하는 역사 속 달콤한 과자가 또 하나 있는데, 막부 정권이 저무는 격동의 근대사에서 등장한 무사 집단 신센구미와 관련된 쓰루야카쿠주안(鶴屋鶴寿庵)의 돈쇼모치(屯所餅)다. 쓰루야카쿠주안은 의욕 하나만 갖고 상경한 촌뜨기 무사들을 지원한 야기(八木) 가문의 후손이 운영하는 화과자 가게이고, 돈쇼모치는 ‘신센구미 주둔지의 떡’이라는 뜻이다.
물론 교토의 화과자가 이런 무겁고 심각한 역사하고만 연관된 것은 아니고, 전국 각지에서 교토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사랑을 받은 다이코쿠야(大黒屋)의 가마모치(鎌餅)도 있고,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축제 기온마쓰리의 흥겨움을 보석처럼 비추는 가메히로나가(亀廣永)의 투명 양갱 시타타리(したたり)도 있다. 여기에, 비록 왕실과 함께 도쿄로 본점을 옮겼지만 여전히 교토 고급 화과자의 상징인 도라야(とらや)의 양갱이 일본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거래처에 사과하러 갈 때 들고 가는 선물로 자리 잡아 ‘사죄 하면 도라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는 것까지 알고 나면, 화과자만 제대로 알아도 일본 문화의 속살에 접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입으로만이 아니라 ‘뇌로도 즐기는’ 화과자의 맛이다.
저자는 학창시절 만화책에서 본 화과자가 궁금해 일본을 찾아가고, 그 화과자의 맛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전공해 통번역사가 되었다. 화과자의 맛을 교토의 역사․문화와 맛깔나게 엮어낸 솜씨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납득이 되는 이력인데, 그래서인지 저자의 문장 한 줄 한 줄에는 화과자에 대한 애정과 그 화과자를 만드는 노포와 장인들에 대한 존중이 듬뿍 배어 있다.
화과자가 차에 곁들이는 음식으로 발전해왔고 저자 자신이 화과자에서 시작해 다도까지 섭렵한 만큼, 이 책은 ‘차의 수도’ 우지(宇治)의 차와 차 가게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며 차의 종류와 그에 어울리는 화과자는 무엇인지까지 알려준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한 다양한 화과자는 주로 말차에 곁들이는 디저트이지만 센차(잎차)는 물론 커피를 마실 때 곁들여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지금 당장 녹차 한 잔, 혹은 커피 한 잔 마실 때 화과자를 곁들일 수 없다면, 책에 등장하는 화과자 사진을 보며 먼저 맛을 상상해보자. 그러고 나서 다음 교토 여행의 콘셉트는 ‘화과자’로 정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