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많이’의저주,
만족을모르는사람들
세살배기아들과함께레고로다리를만들고있던공학박사클로츠는구조물이불안정해지자본능적으로블록을추가하려고했다.그러나아들에즈라는생각지도못한방법으로손쉽게이문제를해결했다.그저블록몇개를뺀것이다.다리는기울기가평평해지면서더안정적인상태가되었고,빼낸블록들을활용해레고도시를더세울수있었다.
클로츠는이때의깨달음이후몇건의실험을진행했다.참가자들은레고로만든플랫폼을안정화하거나,미니어처골프코스를개선하거나,관광일정을수정하라는등의요청을받았는데,이때요소를더하거나뺄수있었다.요소를추가할때마다돈을청구한다고미리고지했지만,사람들은더하느라바빴다.어찌저찌문제를해결할수는있어도확실히비효율적이고값비싼방식이었다.빽빽한여행스케줄을‘더나쁘게’만들라는요청에는참가자대다수가일정을‘빼는’선택을했다.
얼핏단순해보일수있는이발견은우리뇌의오랜습관을드러낸다.더적은것이더나쁘고비생산적이라고여긴다는점이다.즉,인간의뇌에는‘더많이’가기본이고‘더적게’는거의안중에도없다.
생각해보자.몸에해로운걸알면서도초가공식품을계속먹고,심각한위험성을짐작하면서도마약과도박이라는강한자극에심취하고,시간낭비인걸알면서도하루종일SNS를들락날락하며‘좋아요수’를체크하고,사놓고안입고안쓰는옷과물건이쌓여있는데도불필요한소비를계속한다.우리는늘무언가부족하다고생각한다.
이상한점은더많이,더자주,더빠르게끊임없이채워도허전함은그대로라는사실이다.대체왜그런걸까?
중독,불안,과소비,자기파괴적루틴…
삶을망가뜨리는습관의뿌리는결핍의뇌에있다!
이스터는그원인을진화적뿌리에서찾는다.인간의뇌는생존에필수요소였던자원(식량,정보,힘,소유물,시간,쾌락등)이희소했던시대에진화했다.끊임없이더많은것을추구하는‘결핍의뇌’로자연스레설계된것이다.
여기에는‘기회의발견’‘예측불가능한보상’‘즉각적반복가능성’의3요소로이루어진결핍의고리(scarcityloop)라는강력한메커니즘이작동한다.과거식량탐색행위는도박과비슷했다.돌아다니면찾긴찾겠지만,언제,어디서,얼마나찾을지는늘불확실했다.저멀리사냥감이있다고가정해보자(기회의발견).이때식량을얻을확률은마구변동한다.막상다가갔는데허탕을칠수도있고,기대했던것보다더실한사냥감을얻을수도있다(예측불가능한보상).인간은생존확률과삶의질을높일기회가예측불가능한보상과함께찾아올때까지이런행동을매일,거의하루종일반복했다(즉각적반복가능성).이렇게결핍의고리에빠지는방향으로행동을강화해온것이다.
자원이풍족해진것을넘어과잉된오늘날에도결핍을채우려는우리뇌의메커니즘은여전히그대로다.오래전인간의생존을가능하게만든행동양식이이제는삶을망가뜨리는나쁜습관을형성하는비밀트리거가된셈이다.이비밀트리거는어찌나강력한지,멀쩡한비둘기도도박꾼으로만들수있을정도다.심리학박사토마스젠탈의실험에서비둘기는불빛을쪼면두번에한번,즉50퍼센트를보상받는첫번째게임과불빛을다섯번쫄때마다한번,즉20퍼센트를보상으로받는두번째게임중하나를선택할수있었다.단,조건이있었다.두번째게임은보상이간식20개로첫번째게임(15개)보다더많았지만,보상을언제받을수있을지는예측불가능했다.
최적섭식이론에따르면,동물은어떻게해서든최소한의노력으로최대한의식량을얻으려애쓴다.그런면에서더많은간식이보장된첫번째게임을하는게더합리적이다.하지만결과는예상밖이었다.불과몇라운드만에비둘기들은보상받을확률이낮은도박성게임을선호하기시작했다.무려96.9퍼센트였다.똑같은현상은다른동물들에게서도관찰되었다.
여기서더흥미로운사실은,보통작은새장에두는이비둘기들을야생과비슷한환경에서살게한다음,다시같은실험을진행했더니전혀다른결과가나왔다는것이다.그들은도박요소가없는첫번째게임을골랐다.최적자극모델에따르면,인간을비롯한동물은자신이선호하는자극수준이있는데,자극이이보다낮아지면추가로자극을찾는다고한다.비둘기는야생의삶에서접할법한형태의대체자극을받았기에도박성게임을선택할가능성이줄어든것이었다.
모든것이지나치게풍요로운지금,자원을얻는일은너무쉬워져버렸다.더이상예전처럼바깥에나가식량을탐색하기위해시간을많이쓸필요가없다.자극이부족한채로새장속에서살아가는비둘기처럼,우리도자극이부족한삶을무의미하고비생산적인소비행위로채우려고애쓰고있는건아닐까?
“결핍의고리는어디에나있다”
보이지않는설계자들
욕망하는대상을손에넣으면곧바로다음대상을욕망하는행위는그저욕심많은한개인의잘못이아니다.인간의뇌가무엇에약한지너무나잘아는기업들은이결핍의고리를마치성공공식처럼활용하여비즈니스모델을설계한다.
저자는슬롯머신디자이너,게임및자동재생기능개발자,건강추적기제작자등실제이설계에참여하는사람들은물론이메일,뉴스피드알고리즘까지탐사한다.그만큼결핍의고리는정말주변어디에나있다.멀리갈필요도없이지금당장스마트폰을켜보면된다.넷플릭스,유튜브,인스타그램,틴더,테무,알리….‘한번더’‘조금만더’‘이것만하면끝’이렇게끊임없이속삭이며사람들을현혹하는것투성이다.(정재승해제)결핍의고리로가득한지뢰밭에안빠지고배기기가더힘든지경이다.
결핍의고리가우리에게미치는영향력이지면상에밝혀지기도전에,눈밝은선동의귀재이자홍보대가인에드워드버네이스는이런말을했다.“우리일상의거의모든행동은대중심리와사회적습성을이해하는소수에의해지배받는다.우리는듣도보도못한사람들에의해정신의틀이잡히고취향이형성되고생각이주입되는등통제를받는다.대중을꼭두각시처럼쥐고흔드는건바로그들이다.”
더무서운것은첨단기술업계가날로더정교해지고있다는점이다.AI가결핍의고리를더욱강화하는날엔사람들은더은밀하고교묘하게조종당할수있다.나중에는지금우리가느끼는이불편한느낌을느낄새도없이그들이설계한완벽한새장에갇혀끝없이자극을원하는삶을살아가게될지도모른다.목적없이자동재생되는영상을보는동안소중한시간이증발해버리고,‘좋아요’수에집착하는동안내면을성장시켜줄지도모를경험이보여주기식겉치레로변모하는이삶이지속된다면말이다.
“숫자에가려진경험의가치“
결핍의고리를끊어내고충분함을되찾는법
다행히도,우리를단단히옭아매고있는강력한결핍의고리를벗어나는방법은존재한다.저자가2년간6400킬로미터를탐험하며만난사람들이그증인이다.
제라는꼭필요한것만든배낭하나를메고연중6개월간사람들발이닿지않는야생에서보낸다.원하는것을바로살수있는환경이아니다보니무언가가없으면가진것내에서창의력을발휘해야하는데,오히려그점이경험에몰입하는법을일깨워주기도한다.제라에게는지나치게많지도,적지도않은배낭속물건들이곧장비였다.
“제가가진물건에는전부나름의목적이있고그점을감사하게생각합니다.”제라가물건을대하는태도에서이스터는충동구매문제를해결할방법을발견한다.바로‘물건이아니라장비를산다’는원칙이다.물건은소유자체가목적인소유물에불과하다.물건을구매하는건이미가지고있는소유물목록에하나더추가될뿐이다.반면,장비는더고차원적인목표를달성하는데도움을준다는확실한목적이있다.이런접근법은충동구매라는결핍의고리에서벗어날수있게해준다.구매전에물건이아닌장비를사자고생각하면구매횟수자체도줄어들수밖에없다.
제라처럼당장배낭하나만메고야생으로모험을떠나라는말이아니다.결핍의고리를끊어내는방법을찾은이들이가진삶의태도에서힌트를얻자는것이다.그들은높은점수,많은돈,여러사람의인정,넘치는정보라는숫자에가려진,스스로보고듣고느끼고생각하는것의중요성을안다.즉시간을들여얻은경험의가치를안다는뜻이다.
과달루페의성모수도원,그곳의20대수도사들도마찬가지다.더많이,더자주,더빠르게즉각적인만족을주는자극찾기에몰두하는요즘청년들과달리,이곳의젊은수도사들은일찍일어나예배를드리고,식사를하고,휴식을취하고,일을하는지극히단조로운루틴을따라생활한다.그리고그무엇도소유하지않는다.끊임없이채우는데도허전한우리와달리소식하고,침묵하고,절제하고,노동하며자유를얻는다.그들은의미없는숫자가아니라자신이직접몸을움직여서들인시간과노력속에서가치를찾는다.
숫자에가려진경험의가치를발견하는일은별것아닌듯보이지만식당에가기전에,영화를보기전에다른사람들이매긴점수부터찾아보는요즘우리에겐참힘든일이되었다.숫자로검증되지않은것은시도조차하지않으려한다.하지만숫자라는기준이아닌,살아있는경험을통해비워내고덜어내면서되레충분함을얻은제라와성모원의20대수도사들처럼,생각을자극하고의미를되새기고삶을살만한가치가있게만들어주는경험은우리를변화시킨다.명상,자연속운동,느린독서,공동체활동,뜻깊은인간관계……이모든것은결핍의고리에익숙한우리에겐낯설고불편하지만,깊은만족을준다.도파민은없을지도모르지만,평온은있다.(정재승해제)꼭정답이아니더라도그과정자체가행복이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