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전,고문에못이겨간첩이라고허위자백을했다가억울한옥살이를한70대노인이38년만에재심을통해무죄확정판결을받았다는소식이전해졌다.대법원은‘양씨의자백진술을불법연행과고문·가혹행위등을통해위법하게수집된증거로인정하고,그외제출된나머지증거만으로는공소사실을유죄로인정하기어렵다’며무죄를선고했다.38년만의일이다.매우안타까운일이라할수있다.그런데,과연이런일들은과거권위주의정부시절의서글픈에피소드에불과한것일까?
흥미로운논문하나가최근주목을받고있다.해당논문(김상준,“무죄판결과법관의사실인정에관한연구”,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박사학위논문,2013)에따르면,1심에서유죄판결을받았다가2심에서는무죄판결을받아재판결과가뒤집힌강력사건10건가운데3건가량은피고인이나공범의허위자백으로인한오판때문이라는연구결과가나왔다.조사시기또한매우시사적이다.즉,1995년부터2012년까지유죄에서무죄로1·2심판결이엇갈린강력사건540건을조사한결과170건(31.5%)에서피고인또는공범의허위자백때문에판단이달라졌다는것이다.
도대체왜이런일이벌어지게되는것일까?흔히민주화이후10여년이경과한1990년대중반부터2012년까지도왜허위자백에의한유죄판결이발생하게되는것일까?여전히폭력적이고억압적인신문과정이유지되고있는것일까?민주화이후에이같은신문방식은상당부분사라진것아닌가?과학적수사가이를대체하고있는것이아닌가?그럼에도사람들은왜자신에게불리한허위자백을하게되는것일까?
미국의형사사법제도는(우리나라도상당부분채택하고있는)대립당사자구조를채택하고있다.대립당사자구조란공정한판단자인법원과배심원앞에서검찰과피의자/피고인이대등한당사자로서공격과방어를벌여진실을밝힌다는이론을전제로만든형사소송구조를말한다.검사와피의자/피고인의대등한지위를보장하기위해헌법과형사소송법은묵비권,적법한절차에대한권리,변호인의조력을받을권리등제반권리를인정하고,엄격한증거법칙을규정하고있다.그런데문제는대립당사자구조가제대로작동하기위한전제조건인경찰수사의공정성과중립성이보장되지않는다는점에서발생한다.경찰이범죄에관해정확하고객관적인정보와증거를수집해야한다는원칙에서벗어나피의자의대립당사자인검찰의대리인으로서,피의자에게적대적인입장에서자백을이끌어내고피의자를기소해서유죄판결을받을수있도록사건을만들어가려는기본적인지향성을가지고피의자신문을하는것이다.다시말해,경찰은피의자가유죄라는편견을가지고신문을시작하며,피의자의심리를조종하고속임수나억압적인방법을사용해서라도자백을받아내려고하게된다.허위자백의가능성이바로여기에서생겨난다.문제는여기서그치지않는다.범죄해결이라는조직적·사회적압력속에서이루어지는경찰의피의자신문이허위자백을유도할경우,이것은다시검사의잘못된기소와배심원단의유죄판결,그리고무고한사람을투옥하는결과로이어지며,이는경찰권력이,검사의권한과배심원의권한마저왜곡·침해하고있는것이라할수있으며,이는형사사법제도의근간을위태롭게하는결과로이어질수있는것이다.
이책은바로이같은허위자백이벌어지고이를조장하고있는(미국)경찰의피의자신문과정에대한하나의고발장이라할수있다.비록주먹이난무하고고무호수가휘둘러지는‘3급수사’관행이사실상종결되고,객관적증거와과학적수사에기반을둔피의자신문의시대가열렸다고는하지만,(미국)경찰은여전히사이비과학(대표적인것아바로거짓말탐지기이다)과심리조종및기망을통해피의자를속여허위자백을받아내는심리기법들을발전시켜오고있다는것이다.이점에서이책은무엇보다“자백만큼명확한증거는없다”혹은“두들겨맞지도않았는데허위자백을했다는것은상식적으로말이안된다”는사람들의선입견이얼마나잘못된것인지,얼마나큰착각인지를잘보여주고있다.이런구조하에서이루어지는자백이란,수사관의적극적개입을통해검사와판사,그리고배심원이보기에가장그럴듯하고설득력이있어보이도록,따라서피의자에대해유죄판결이선고될수있도록구체화된이야기라는것이다.
마지막으로이책은경찰의피의자신문과관련된핵심적인도덕적질문을제기한다.즉,우리는과연자백증거에어느정도의가치를부여해야하는가?그리고자백을얻어내기위해경찰이사용할수있는수단으로무엇을허용해야하는가가바로그것이다.이책은피의자신문과정에서경찰이행사하는무소불위의권력에대한면밀한감시와더불어,우리가너무나자명하게받아들이고있는‘자백’증거의증명력에대해더욱의심해야함을역설한다.
2.
민주화에따라국민의식이성장하고제도를개혁하면서우리나라경찰도고문과폭력으로자백을강요하는방식에서점차벗어나고있다.노무현정부의형사소송법개정으로미란다원칙을알려주는것이의무화되고,변호인의피의자신문참여가제도화되기도했다.그결과피의자들이경찰에서고문과폭력에의해허위자백을강요당할위험은상당히줄어들었다고할수있다.
그러나자신의권리,특히피의자신문에변호인을참여하게할능력이없는시민들의처지에서경찰의피의자신문관행이실제로얼마나개선되었는지,그래서허위자백을하고,잘못된유죄판결을받게될가능성이얼마나줄어들었는지는의문이다.피의자신문을시작하기전에미란다권리를알려주는것이현실적으로어떤효과가있는지,미란다원칙고지후신문과정에서피의자의인격과권리가얼마나존중되고있는지,고문과폭력은가하지않는다고하더라도심리적억압과기망,그리고조종등의수법으로자백을강요하고있지는않는지는분명하지않다.누구도관심을갖지않고연구해본바도없기때문이다.
외려,사회전반의민주화와제도개혁으로고문과폭력에의한자백강요가어느정도사라지고,변호사의참여가제도적으로인정되자,경찰의수사관행에대한관심의폭과깊이는오히려더줄어들고얕아진것처럼보이기도한다.고문과폭력으로자백을강요한사례들이실제로발생하기도했고,또강압적이고사기적인방법으로허위자백을받아내고이에다라유죄판결이내려졌다가우연히진범이잡히는바람에무고함이밝혀진사례도보고되었지만,여론도학계와실무계도이런일들이어떻게벌어지게되었는지에대해서는별다른관심을보이지않았다.
이책은미국에서벌어지는경찰피의자신문의현실과문제점,그리고제시한개혁안들을담고있다.미국사례에기반을두고있지만,우리나라에도시사하는바가매우크다.우리나라의형사절차도대립당사자구조를채택했을뿐아니라그동안주로미국을모델로삼아사법개혁을해왔기때문이다.아니오히려,우리나라의경찰피의자신문과정에는미국의경우보다도더많은문제점이있을가능성이있다.왜그런가?
첫째는제도의근본적인한계이다.미국의경우기소권을가진검찰이경찰의수사결과를독자적으로검증하고기소여부를판단하는데비해우리나라의경우검찰은수사권과기소권을독점하고경찰을지휘감독하기때문에경찰이저지른오류를객관적으로검증하고견제할수있는가능성이더적어보인다.재판과정또한판사는증거채택여부를결정하고,사실인정,즉유무죄판단은배심원이하는미국에비해증거채택여부와사실심리를모두판사가하는우리나라의경우증거능력이없는증거에의해사실판단자가선입견을가지게될가능성이더크다고할수있다.
둘째,수사기관이피의자를구속할수있는기간이모두30일로절대적으로길기때문에,구속된피의자들,특히변호인의조력을충분히받을수없는피의자들의경우매우취약한상황에빠질가능성이높다.리처드레오교수가소개한미국의허위자백사례들을보면취약한상황에있는피의자들은불과몇시간내지하루이틀정도의기간동안강압적이고사기적인신문을받고허위자백을했다.수사과정에변호인이참여할가능성이낮은한국에서무려30일동안구속된채경찰과검찰의신문을받게되는피의자들이허위자백을할가능성또한미국에비해훨씬높을것으로추측할수있다.
셋째,우리사회에는물리적폭력을당하지않는상황에서피의자가허위자백을할수있다는사실자체에대한인식이매우낮고,학계의연구도거의없는실정이다.헌법은“피고인의자백이고문·폭행·협박·구속의부당한장기화또는기망기타의방법에의하여자의로진술된것이아니라고인정될때”증거능력이없다고선언하고있음에도고문과폭행이없으면당연히증거능력이있다고간주하는실무관행이강력히뿌리내리고있다.증거능력을배제하여증거로채택하지말아야할자백들을증거로채택한후신빙성이있는지의문제로만판단하기때문에증거능력없는증거가판사의심증에영향을미치고오판을하게할위험은상대적으로더커질수있다.
넷째,경찰의피의자신문이외부의검증을받지않은채비밀리에이루어지는정도역시한국이훨씬더심각하다.경찰의문화가인권을존중하고범죄에관한객관적인정보를수집하는것을목적으로하는쪽으로바뀐것도아니다.그런가운데미국과마찬가지로과학적근거가없는심리적신문기법이수사의과학화와전문화라는이름으로피의자의심리를억압하고속이며조종하는방식으로이루어지고있을가능성이적지않다.더구나피의자신문은자백을얻어내는것을목적으로하는것이고,자백을얻어내려면어느정도억압적이고기망적인방법을사용할수밖에없다는인식이널리퍼져있는상황에서위험성은더욱커보인다.
그런점에서,한국의법학계와법조계에이책을소개하는것은의미가크다고할수있다.고문과폭력을가하지않아도,사람들이허위자백을할수있다는사실을구체적이고실증적인분석과연구를통해설득력있게일깨워준다는점만으로도큰의미가있다.대단히바람직한방향인것처럼널리인식되고있는이른바과학적피의자신문이라는것이실제로는과학적근거가없으며,사기적이고강압적인방법으로심리를조종하는것으로허위자백의가능성을높일뿐이라는지적도깊이한국경찰의피의자신문관행에대한관심을새롭게제기한다.
미란다원칙을몇줄읽어주는것만으로는피의자의권리를보호하고국가권력을견제하며,진실을밝히는목적을달성하는데별다른도움이되지않는다는사실을알려주는것도의미가있다.작게는경찰의억압과속임수에빠져허위자백을하고헤어날수없는함정에빠진힘없는피의자들과그들을도우려는사람들에게설득력있는방어수단을제공하는한편크게는그동안정부가추진한형사사법제도의개혁이마무리된것이아니라아직도더먼길을가야하는과정에있음을깨닫는데도움이될수있을것이다.
경찰의피의자신문을전면적으로녹화하여변호인과검사,법원,그리고학자들이검증할수있게하고,피의자의심리를조종하는강압적이고사기적인방법을금지하고,그런방법을사용하여얻어낸자백의증거능력을배척해야한다는저자의제안은향후우리나라에서다음단계의사법개혁작업에서반드시채택해야할과제라고할수있다.
이책의가장큰미덕은경찰피의자신문과관련된문제점이단순히형사절차에서발생하는기술적인차원의것이아니라우리가지향하는민주사회의본질적가치와깊게관련된것임을깨닫게해주는점이다.
국가권력을견제하고,인권을보호하며,범죄에관한진실발견을향상시키기위해우리는자백에어느정도의가치를부여해야하는가,그리고열린민주사회의가치와양립하기위해경찰의피의자신문은어떻게이루어져야하는가하는문제의식을토대로해서만경찰피의자신문의문제점을제대로파악하고개혁할수있을것이기때문이다.
<장별주요내용소개>
제1장에서저자인리처드레오교수는미국형사사법제도의대립당사자구조와경찰피의자신문의관계를살펴본다.대립당사자제도의배경과그에대한비판,그리고경찰의피의자신문이대립당사자적성격을갖게되는원인과현상을설명한다.저자에따르면경찰은피의자에대한일방적인선입견을토대로죄를지은것이틀림없다는확신을가지고피의자신문을한다.경찰은죄를지었음에틀림없음에도부인하는피의자를꺾고반드시승리해야하는게임처럼피의자신문에임하기때문에목적이수단을정당화한다는사고방식에빠지게된다.피의자로부터자백을받아내는과정을단계적으로분석한다음검찰의기소와플리바게닝,그리고재판과정에서미치는영향을설명한다.이렇게전개되는피의자신문이가진근본적인모순은사기적인방법을사용하며,비밀리에진행한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