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배반한 판사들 (판사들은 왜 불의와 타협하는가 | 반양장)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 (판사들은 왜 불의와 타협하는가 |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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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치 독일, 점령 치하 유럽, 남아프리카공화국,
라틴아메리카, 미국과 영국……

법치주의가 공격받는 시대,
사법부의 역할과 한계에 관한 심층 보고서
‘사법부가 과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쪽에 설까?’

2024년 12월 3일 밤, 현직 대통령이 저지른 내란 사태 와중에 우리 국민이 잠 못 이루고 노심초사하며 곱씹은 질문이다. 특수부대의 무장 헬기에서 쏟아져 나온,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국회 본회의장을 향해 들이닥치며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절박한 위기의 순간을 온 국민이 지켜봤는데도 파면 선고를 하염없이 미루는 헌법재판소와 수십 년에 걸친 법 집행의 관행을 뒤집어 내란 우두머리를 풀어주는 법원의 모습은 ‘사법부는 어느 편에 서 있는가’라는 깊은 불안과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사실 한국의 사법부는 오랫동안 이런 질문을 받아왔다. 법원은 과거 군사정권의 비상계엄 선포를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정당화했을 뿐 아니라 고문으로 얻어낸 허위자백을 증거로 인정해 정치적 반대자들을 범죄자로 만들려는 정권의 뜻을 뒷받침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유서대필’ 조작사건과 ‘사법농단’ 사태가 보여주듯 사법부는 ‘법치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임무에 충실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내란 우두머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로 큰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앞으로 내란 사태를 법적으로 수습하는 과정에서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을 벌일지, 국민이 사법부에 대해 불신과 염려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한국의 법원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수호자인가?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은 이런 의문을 품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법사회학, 행정법, 법수사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법치주의와 사법부의 역할을 연구해온 저자 한스 페터 그라베르는 나치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의 군사독재 정권, 나치 점령 시기의 유럽 국가들, 자유주의 사회인 미국과 영국 등 여러 나라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의 실상을 탐구한다. “법복 입은 사람들이, 억압적인 지도자들의 가장 악랄한 정책을 어떻게 그렇게 자주, 쉽게 실행할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탁월한 비교적 시각, 역사적 깊이, 그리고 법철학적 정교함으로 파헤친” 심층적 연구(마크 오시엘, 아이오와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라는 평가에 걸맞게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기초로 심도 있는 법철학적 연구를 담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저자는 이 책에서 “법의 자율성, 그리고 판사에게 법치주의의 핵심원칙을 거스르도록 요구하는 법률이 그 자율성을 어떻게 흔들고 공격하는지”(5쪽)를 탐구하면서 그 상황에서 판사들이 겪는 문제를 다음과 같은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첫째, 국가가 억압적으로 변하고 사법부가 그 억압에 기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둘째, 억압에 협력한 판사들을 법적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셋째, 그들의 행동을 도덕적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억압에 맞서도록 독려할 수 있는가?

역자 정연순 변호사는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본부장,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실천을 통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해온 법률가로, 그 과정에서 해온 고민과 전문성을 살려 책에서 다룬 다양한 사례와 법철학적 쟁점을 정확하고도 읽기 쉽게 번역했다.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은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중대한 질문 - 민주사회에서 사법부와 판사들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공격받을 때 판사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 를 깊게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저자

한스페터그라베르

저자:한스페터그라베르(HansPetterGraver)
노르웨이오슬로대학교법학교수.행정법,유럽법,법사회학,법의역사에관해다양한책을썼다.
최근에는『판사들의전쟁:1940-1945년독일점령과노르웨이의법치주의DerKriegderRichter:DieDeutscheBesetzung1940-1945unddernorwegischeRechtsstaat』와『용감한판사들불의한법:열세명의법의영웅들이야기ValiantJudgesIniquitousLaw:ThirteenStoriesofHeroesoftheLaw』를집필했다.
노르웨이과학·문학아카데미회장을지냈고,유럽학술원회원이다.

역자:정연순
서울대학교공법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에서행정법석사,미국미주리주립대학교에서대안적분쟁해결AlternativeDisputeResolution로법학전문석사학위를취득했다.국가인권위원회차별시정본부장과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회장을역임했고제주4·3사건희생자들을위한특별법개정운동에참여했다.법무법인경에서변호사로일하고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감사의말

1장사법의역할과법치주의
들어가는말|책의구성

1부법치주의에대한전쟁

2장국가의억압과법치주의
법치주의와사악한통치자들|법치주의에서폭정으로|법의형태로자행하는억압:진짜법인가?|법의안과밖

3장사법부에대한억압
권력의정당성추구|사법부의독립|판사숙청과법원재편|법원의관할권제한과특별법원|법적사고체계의왜곡:당근과채찍

4장억압에대한사법부의수용
권위주의정권의합법성수용|억압적목표와정책수용|인종을넘어서|자유주의사회에서이루어지는억압에대한동의

5장저항
“법의불꽃은결코꺼지지않는다”|합법성의문제|제한적해석|권위주의가쇠퇴하는시기의저항|저항과법적방법론

2부불의에대한판사들의책임

6장형사책임을둘러싼논쟁
들어가는말

7장국제법에따른위법성의조건
연합국전범재판소의법적근거|미군사재판소의법조인재판|나치판사들에대한무죄판결

8장불법적권력과위법성의조건
판사와혁명|점령치하의판사

9장전환기상황에서위법성의조건
나치이후독일의재건|동독의판사들

10장특별법원의판사들
권위주의정권과특별법원|미군사재판소와특별법원|나치이후특별법원에대한견해|특별법원참여가범죄인가?

11장사법적억압의정당화
범죄의고의|법의부지|강요|토론

12장‘판사에대한특별면책?’
의무와명령|사법면책과판사의역할|사법부의독립과면책|권력분립

13장판사에대한처벌
변치않는정의의본질|판사들은왜처벌받지않는가?|소급처벌의어려움|책임추궁은충분했나?

3부판결의도덕적측면

14장법실증주의명제
사법부의공모이유|라드브루흐와나치독일

15장어떤법실증주의인가?
정의되지않는법실증주의|법과도덕을분리하는법실증주의|형식주의인법실증주의|법실증주의의대안

16장다른방식의법해석
단순사실접근법

17장법이론을통한설명을넘어서
법이론이사법적판단을좌우하는가|심리적요인|제도적요인|도덕적정체성의함정과상실

18장차악선택의논리
홀로코스트의실행|법치주의의예외|차악선택이라는항변|사직이유일한대안인가?|현실적계산|‘미끄러운경사길’의오류피하기

19장정의를추구하는판사들
법뒤에숨지않기|헌법조항으로권위주의를막을수있는가|국제기준|법적방법론의정치학|법치주의를위한저항

역자후기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한국어판서문에서밝힌것처럼저자는이책에서“법의자율성,그리고판사에게법치주의의핵심원칙을거스르도록요구하는법률이그자율성을어떻게흔들고공격하는지”(5쪽)를탐구하면서그상황에서판사들이겪는문제를다음과같은가지질문을중심으로살펴본다.

첫째,국가가억압적으로변하고사법부가그억압에기여할때어떤일이일어나는가?둘째,억압에협력한판사들을법적관점에서어떻게평가해야하는가?셋째,그들의행동을도덕적관점에서어떻게바라보고억압에맞서도록독려할수있는가?

역자정연순변호사는국가인권위원회차별시정본부장,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회장을역임하는등다양한실천을통해민주주의와법치주의를실현하는데기여해온법률가로,그과정에서해온고민과전문성을살려책에서다룬다양한사례와법철학적쟁점을정확하고도읽기쉽게번역했다.

『정의를배반한판사들』은오늘우리사회가안고있는중대한질문?민주사회에서사법부와판사들은어떤역할을해야하는가,민주주의와법치주의가공격받을때판사들은어떤자세를가져야하는가-를깊게사유하고,성찰할수있는계기를제공한다.
‘법적창의성’을발휘해불의에앞장선판사들

사람들은사법부와판사가권위주의정권에서도정의와인권을수호하는최후의보루이길원한다.그런역할을할수있도록독립성을보장하고많은권한을부여한다.하지만현실의사법부와판사는대개그렇지않다.남아프리카공화국의진실?화해위원회는아파르트헤이트시기의사법부를이렇게평가했다.

법원과법조계는의식적으로든무의식적으로든입법부와행정부가벌인불의에일반적으로동조했다.……법률가들상당수가법원을통한아파르트헤이트의확립과옹호에적극가담했다.(48쪽)

남아프리카공화국만의이야기가아니다.많은나라에서사법부는정권의억압을정당화하고타협했다.“대부분의경우법원은억압에저항하지않음으로써그에대해합법성이라는외양을입혀주고결국권력에정당성을부여한다.”(66쪽)

권위주의정권이만든법을시행하는데그치지않고,때론‘법적창의성’을발휘해억압에앞장서기도한다.유대인과독일인의혼인과성관계를금지한뉘른베르크혈통보호법이제정되기전에도독일대법원은“민족사회주의세계관에서상정하는결혼의본질에대한합리적인이해에근거하면혼혈결혼은허용되지않는다”고판결했다.뉘른베르크혈통보호법제정후에는배우자의조부모중한명만이유대인일때도“법이특정혼인을금지하지않는다고해서그와같은혼인이인종적관점에서문제없다는결론이나오는것은아니다”라고판시해혼인금지범위를법이규정한것보다더욱확대했다.

판사가법치주의를파괴하는정부에동조하는이유는여러가지다.판사도압도적인힘에굴복할수밖에없다,판사들은엘리트계층의일원이기에계급적이해관계를위해권위주의정부를지지하는경향이있다,직업경력과승진을위해정권에협조한다등등판사들의행동에대한다양한설명이있다.모두일리가있지만,법치주의의본질을훼손하는박해와억압에판사들이가담해온상황을온전히설명하기에는부족하다.‘판사는본질적으로법의권위에복종하는존재이기에권위주의정권이만든실정법을무시할수없다’는것이핵심이라고이책은강조한다.

판사는법을적용할의무가있다.법적추론은국가가제공하는권위있는법적출처,즉법원法源에의존한다는점에서일반적인도덕적또는정치적추론과다르다.어떤법이론적접근방식을취하든판사가그러한법원法源을완전히무시하고법을집행할수는없다.즉,권력이확고해지고억압적조치가입법화되면판사로서는그억압적조치를적어도일응primafacie권위있는법원法源의하나로받아들이게됨을의미한다.그후에는법원이정권의합법성과주요권력기제같은핵심이익에거의도전하지않는방향으로사법부의역할과기본적권력관계가정리된다.(99쪽)

‘정의를배반한판사들’은어디에나있다

판사들이억압에가담하는것은독재정권에서만일어나지않는다.미국과영국같은자유주의사회에서도일어난다.국가안보를위해서또는사회적위협에대응하기위해서강력한조치가필요하다는정부의주장을받아들이면,자유주의사회의판사들도개인의자유와권리를침해하는판결을한다.

제2차세계대전중인1940년,영국내무부장관은영국방위규정18B에따라“공공안전이나국가방어에해를끼치는행위에최근관여했거나또는그러한행위를준비하거나선동했다고믿을만한합리적이유가있는사람”을대상으로1,874건의구금명령을발부했다.피구금자한명이법원에이의를제기했지만,상원은법원이이를심사할수없다고판단했다.내무부장관이구금할만한합리적이유가있다고‘믿었다’면실제로합리적이유가있는지를심사할수없다는것이다.저자는이를두고‘사실상행정부에무제한의권한을부여하고사법심사를무력화하는조치’라고비판한다.

‘명백히부적합한사람들’로부터사회를보호한다는우생학은가상의사회적위협을이유로인간의존엄성을유린한대표적사례다.지적장애인캐리벅에대한강제불임수술이정당한지를다룬재판이대표적이다.‘명백하고현존하는위험’이없는한표현의자유를보장해야한다는판결로유명한미국대법관올리버웬델홈즈는“애초에명백히부적합한사람들이자손을생산하지못하도록막을방법이있다면그것이세상을위해더낫다.바보들은3대로충분하다”라는악의적인이유를붙여강제불임수술을정당화했다.

이런사례는‘정의를배반한판사들’이나치독일이나라틴아메리카의군사독재정권처럼노골적으로억압적인나라에만나타나는예외적존재가아니라모든국가와사회에언제든나타날수있는보편적존재임을보여준다.

판사에대한형사처벌과사법면책의문제

어떻게해야판사들이정부의억압에동조하는것을막을수있을까?

저자는불의에가담한판사의형사책임을물을수있는지를폭넓게논의한다.원론적으로판사가재판을통해심각한인권침해를일으킨경우처벌하는것이맞지만,현실적으로는쉽지않다는게저자의주장이다.

판사에게는사법적면책특권이있다.판사가독립적이고공정하게법을적용하려면결과에대한두려움없이자유롭게판결할수있어야하기에,대부분의나라가판사의면책특권을인정한다.저자는“법치주의의근본을훼손한혐의를받는판사가그항변수단으로사법면책을이용하는일이있어서는안된다”(255~256쪽)라고하면서도판사의책임을광범위하게추궁하면사법부의독립을훼손할수있다는점도인정한다.

실제로도억압에동조한판사들을처벌한역사적사례가별로없다.“판사들은거의예외없이지난정권의악행과억압에가담한책임을묻는법정에서지않았다.”(185쪽)예외적으로뉘른베르크전범재판에서나치독일에동조한판사들의책임을물었지만,판사직무를수행했다는이유만으로형사처벌을받은사람은단한명에불과했다.유죄판결을받은사람은대부분법무부에서정책수립과법집행에직접관여한이들이었다.판결과관련해서는“판사로서극도로잔혹하고광적인,그리고차별적방식으로법을집행한경우”(186쪽)에만처벌받았다.억압적인실정법을적용했다는이유만으로처벌받은판사는없었다.독일통일후동독판사들을대상으로한재판을제외하면독일법원도나치시대에내린판결로판사를처벌하는일은거의없었다.

「국제형사재판소에관한로마규정」등인권보호를위한여러국제규범이있지만,여기에도한계가있다.이책이다룬여러판결이후에국제규범의해석과적용에대한판례가많이축적됐고,이를돕는기구도효과적으로작동하고있지만,국제규범이실제로개혁을촉발한사례는드물다.판사의형사책임을좁게해석하는판례가이미쌓인상황에서이를뛰어넘기힘들다는점도형사처벌을어렵게한다.

‘올바른’법적방법론은없다

특정한법적해석방식,즉‘올바른’법적방법론을선택하면판사가억압에가담하는일을막을수있다는주장도있다.그들에따르면판사와법치주의혹은폭정의관계에서핵심변수는법적방법론이다.법의도덕성이나올바름을고려하지않고규범의형식만갖추면법으로간주하는법실증주의때문에나치독일의사법제도가무너졌다는법학자구스타프?라드브루흐의주장이대표적이다.

하지만저자는“억압은다양한법적접근방식과방법론을통해정당화될수있다”(410쪽)고반박한다.사실나치독일에서는법실증주의가지배적인법적방법론이아니었고,한스켈젠같은주요법실증주의자들은나치에반대했다.오히려법실증주의가인정하지않는법적원천,즉규범의형식을갖추지못한인종이데올로기나독일민족의공동선과목적등에맞춰법률가들이법령과법개념을해석한결과독일법체제가무너졌다는것이저자의주장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나치독일의판사들은서로다른법적방법론을사용했는데도똑같이정권의억압에동조하는결과를낳았다는사실또한법적방법론이핵심쟁점이아님을보여준다.아파르트헤이트체제의남아프리카공화국판사들은입법자의목적과의도를중시하는‘단순사실접근법’을적용했고,나치독일의판사들은입법자의의도와무관하게법령을“객관적으로”해석하는방법론을사용했다.그결과,남아프리카공화국판사들은입법자의인종차별이념을최대한반영하는방향으로법을해석했고,독일판사들은바이마르공화국시기의입법의도를무시하면서법이적용되는시점,즉나치시대의이념과요구에맞게법을해석했다.

양심에따라정의를추구한판사들

불의에가담한판사들을처벌할수도없고,억압에동조하는것을막을수있는‘올바른’법적방법론도없다면판사는그저무력하게권력에동조할수밖에없는존재일까?

많은판사들이불의와타협한다음,‘차악선택의논리’를펴며자신들의행위를정당화한다.자신이협력을거부하면정부가더노골적으로법의테두리를벗어나억압을저지르거나,더순응적인판사가임명되어‘더나쁜상황’이생겼을수있다는것이다.하지만이런주장은잘못된것이다.라드브루흐는나치사법부지도자들에게내려진미군사재판소의판결을들면서이들의논리가왜틀렸는지분명하게드러냈다.

악에가담함으로써악을피할수있다고믿지말라.이는이미충분히시도했지만번번히실패했으며,비겁한공모에대한변명에불과한경우가많다.……악과연대하면필연적으로눈이멀게돼자신이가담한악의본질을더이상분명히인식하지못하게된다.(374쪽)

실제역사를살펴보아도판사들은억압적정권아래에서도일정한자율성을누리며저항할수있는공간이있다.형식적이나마‘독립적인사법부’를통해합법성과정당성을승인받을필요가있기에권위주의정권이라해도마음에들지않는판결을한판사를처벌하기는쉽지않고,실제로그런일은거의없다.정당성의외양을갖추기위해권력이사법부를필요로하는한사법부와판사는상당한재량권을행사할수있다.가령나치독일은학살과전쟁범죄,인종차별로얼룩진인류최악의정치체제이기에법자체가작동하지않았고일개판사가할수있는일이없었을거라고생각할수있지만,실상은달랐다.뮌헨대학교정치학교수인카를뢰벤슈타인은나치즘이후독일법재건에관한보고서에서이렇게말했다.

사직한판사가강제수용소에보내지거나연금까지박탈당한사례는단한건도보고된바없다.……일부판사들이공개적으로정권을비판했더라도다른지역으로전보되거나,승진에서배제되는정도였으며,경우에따라사직당해연금수령자신분으로바뀌는정도였다.그보다더무거운제재는없었다.(76쪽)

나치독일에서악법에저항한대표적사례가안락사프로그램을거부한로타크라이지히판사다.정신질환자들의후견인으로활동하던크라이지히는자신이후견한사람들이의료기관에이송된뒤살해됐음을알게된뒤,판사의사전승인없이는안락사할수없다는공문을의료기관에보냈다.법무부장관이공문을철회하라고지시했지만,크라이지히는굴복하지않았고끝내사임했다.그러나나치정권은그를더이상탄압하지않았고,크라이지히는생태농장에서종교활동에전념하며남은생을보냈다.

크라이지히처럼정신질환자를후견하는판사가당시독일에서1,400명이상이었는데크라이지히만안